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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위대한 예술가, 남관

김달진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위대한 예술가


남관(南寬 NAM KWAN 1911-1990)







한국현대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남관(1911-1990)은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4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1935년 동경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구마오까(웅강)미술연구소에 머물며 동광회, 국화회 등에 작품을 출품하고 상을 수상했다. 그는 1955년에 파리로 떠났는데 이때부터 작품이 추상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하던 남관은 한국작가 최초로 살롱드메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1962년 작품 「허물어진 제단(祭壇)」은 파리시가 구입하였으며 그의 예술적 성공은 1966년 프랑스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이 대상을 수상하며 일찍 인정받았다. 


역사의 흔적 1965년


그의 작품들은 파리국립현대미술관이나 토리노국제미술관, 룩셈부르크국립미술관 등 여러 해외 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다. 파리에서 추상적 표현의 심상주의 형태를 심화시키면서 독특한 작업을 구현시켰다. 그 내면적 순수 형상은 한국전쟁의 비극적 상황 체험에서 비롯된 정신적 표현 의지의 상징성과 고대 유적 역사의 시간과 공간성을 표상을 내재시킨 것이었다. 모두 동양적 심성의 내면적 시각과 정신적 표현성의 은밀하고 매혹적인 색상 분위기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남관 작품을 미술평론가 가스통 디일은 “동서양 문화의 어느 일부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둘을 융합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예술가”라고 평가했다. 


분노 2. 1967년



작품 변모는 1960년대 중반부터 읽을 수 없는 문자성 혹은 동양적 상형문자 구성의 화면 창조 또는 콜라주 형상으로 추구되어 갔다. 나아가서 석기시대 유물 또는 고분 출토의 청동 유물을 연상시키는 조형 형상과 사람의 해골에 연관된 「마스크」 연작이 이어졌다. 인간의 희로애락, 생명의 영원성도 추구하며 또한 단순화로 인한 추상적 구도가 형상적 이미지로 대체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푸른색을 즐겨 사용했다. 



푸른반영 3. 1974년


개인전은 1948년 대구, 1954년 도불전(미도파화랑), 1981,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1984년 호암갤러리, 2011년 환기미술관 등 20여회 있었으며 1968 – 77년 홍익대교수를 역임했다. 1968년 춘곡미술상, 197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1년 은관문화훈장, 1990년 예술원상은 작고작가에게 주지않는 전통을 깨트리고 상을 주었다. 작가로 많은 풍상을 겪어 1968년 국전 심사에 사전 단합을 문제삼고 심사위원 사퇴, 1973년 이응노와 창작과 모방 논쟁, 1986년 영국초대전 사기극에 휘말려 작품 증발 사건 등이 있었다. 작가적 고집과 자존심으로 평생을 예술 창작에만 전념하였던 위대한 예술가였다.




묵상 1978년




남관 아카이브 자료


남관 1954 미도파 화랑




남관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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