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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 촬영금지 타당한가

오병욱

몇년전 여름 프랑스의 한 일간지는 아침의 산보객을 찍은 ‘파리의 아침’이라는 평범한 사진을 게재했다가, 초상권 침해로 제소당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사진기자나 신문사의 불평과 우려는 작지 않았고, 앞으로는 그림자만 찍힌 사진 보도를 해야 할 판이라고 엄살을 떨었다. 사실 공공에게 널리 알리는 보도와 개인적인 사생활의 보호는 양립할 수 없는 큰 문제거리이다.

-남에게 자랑위한 전시회인데-

바캉스철 한가로운 산책로를 찍은 평범한 사진을 조용한 아침이라 보도했다고 해도, 사진기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진 안에 포착된 행인이 그가 있지 않아야 할 곳, 함께 있지 않아야 할 사람과 같이 포착되었고, 그 사진이 대중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면 당사자로서는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촬영과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분야도 있다. 올림픽 금메달이나, 좋은 연극이나 영화, 음악, 국가적 이미지 고양을 위한 행사, 신제품 출시 등등의 경우 홍보는 필수적이다. 이들의 경우 공공매체에는 물론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촬영에도 적극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있다. 미술전시회가 그러한데, 국내의 유명 미술관들의 경우 국·공립, 사립을 가리지 않고 전시품 촬영금지 팻말을 대부분 달고 있다. 물론 홍보를 해주는 신문이나 방송은 언제나 촬영 환영이지만, 개인에게는 단호하게 금지한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전시회에서 촬영금지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방침은 여러가지 경우를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술전시회를 일반인들이 관람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작품을 촬영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시각예술은 이미지이고, 이 이미지는 두뇌가 저장하기에는 파일 크기가 너무 커서 우리의 두뇌는 이를 개념의 형태로 축소시켜 저장한다. 그래서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영화 ‘양들의 침묵’의 랩터 박사처럼 피렌체 대성당을 기억으로 재생해 그려낼 수는 없다. 한편 작품과의 직접적인 대면의 감동 역시 재생될 수 없다. 다만 사진이 그 감동을 되살리는 기억의 보조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극소수의 관객은 작품을 촬영하려 한다. 미술관은 촬영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관객들을 장려해야 할 입장일 것이다. 선의의 관객은 몇점만 촬영하면 되지만, 미술교육자는 가능하면 많은 작품을 촬영해야 한다. 그런데 전시장 지킴이들의 단호한 제지를 받으면 선의의 관객은 작품에 대한 감동을 좌절감으로 대신할 것이고, 미술교육자는 ‘아니면 말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모든 손해는 사실 전시작가나 미술관의 몫이다.

-프랑스선 ‘촬영’이 홍보기법-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촬영 허용과 금지가 공존한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프랑스는 대부분 허용이고, 이탈리아는 대부분 금지이다. 그 결과 프랑스 미술품에 대한 자료는 매우 많은 데 비해, 이탈리아 미술품의 자료는 많지 않다. 필자의 학생들은 별도리없이 프랑스 미술에 더 가까워진다. 현대 서구문명의 원천인 르네상스를 열었던 이탈리아 미술에 대한 자료들이 19세기 미술에서만 상대적으로 우위인 프랑스의 미술에 대한 자료들에 밀리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예술의 도시 파리’, ‘영원한 도시 로마’,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라는 말들에서 보듯이 ‘예술’이 파리를 수식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가 자신의 예술을 ‘촬영 허용’을 통해 홍보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경향신문 < 문화로 읽는 세상 > 2003년 8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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