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작가인데 영국 출신 50대 남자로 추정될 뿐이다. 벽에 스프레이로 작품을 그리는 그래피티로 2000년대 초에 명성을 얻었다. 작가는 자신의 신념 또는 세계관을 표현하는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데 사실 이것은 다른 많은 직업인과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연기자는 드라마, 정치인은 연설, 학자는 논문이라는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기업의 경영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영자는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경영 활동을 하지만 이것은 미술 작가나 연기자나 정치인이나 학자도 마찬가지이다. 경영자의 소통 방식도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은 기업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 뱅크시의 작품 활동은 예술의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왔다. 여기에서는 뱅크시의 사례에서 문화예술경영의 가능성을 살펴보려 한다.
뱅크시의 작품은 대체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는다고 평가된다. 〈네이팜〉에서 그는 미키마우스와 맥도날드 캐릭터가 베트남 전쟁의 비극적 소녀의 양 옆에서 달리는 이미지를 통해 자본주의와 전쟁의 참상을 극적으로 혼합한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그는 상업주의와 영합한 미술에 대해 비판한다. 한정된 관객만이 향유할 수 있는 미술관을 벗어나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거리에 그의 많은 작품들이 자리잡은 것에서도 예술의 상업화를 혐오하는 그의 철학을 볼 수 있다. 이를 보면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의 첨단에 있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뱅크시와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러나 뱅크시도 본인 작품의 진품 감정의 문제가 계속되자 ‘페스트 컨트롤’이라는 저작권 관리 회사를 설립했다. 상업주의를 배격했지만 상업주의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부조리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꾸준히 사회공헌활동이나 공유가치창출, 그리고 ESG 경영 등을 추구하면서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지 않는 기업 경영 방식을 선택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탐욕에 가득 찬 경영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뱅크시는 비판적인 작품만 남긴 것은 아니다. 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원숭이로 묘사한 〈원숭이 여왕〉에서 왕실의 권위에 대해, 그리고 두 남성 경찰관이 키스를 하는 모습을 담은 〈키스하는 경찰〉에서 보수적인 사회적 관념에 대해 신랄하게 저항하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COVID-19 당시 제작되었던 〈게임 체인저〉에서는 간호사 인형을 히어로로 등장시켜서 역경을 극복하는 공동체에 대해 한없이 따뜻한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경영의 세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권위와 규율을 강조하는 엄숙한 경영 방식도 존재하지만, 직원의 행복과 복지를 위한 새로운 경영 방식을 실천하는 경영자들에 대해 주목하고 경의를 표하는 관례도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사우스웨스트 창업자인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 1931-2019)는 평생 직원의 행복을 위한 경영 방식인 ‘펀 경영’을 추구했고 그 결과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는 저비용 항공사의 신화를 만들었다.
《리얼뱅크시》 5.10-10.20, 그라운드서울
뱅크시는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의 폐해를 비판했지만 역설적으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대중 작가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담긴 예술적 요소에 공감하고 감동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회를 위해 공유가치를 창출하고 직원의 복지를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경영자의 진정성이 대중을 감동시킬 때 그 기업의 경제적 성공이 따라올 듯하다. 특히 예술 작가를 후원하고 직원 복지에 예술적 요소를 활용하는 문화예술경영은 그 효과를 배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