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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아트 컬렉터의 지금, 여기

김나리

몇 해 전부터 뜨거워진 미술시장의 활황 덕에 아트 컬렉팅을 향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 기세는 최근 이례적인 규모의 기증을 결정한 이건희 컬렉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을 보려는 이들로 전국 곳곳의 미술관은 여전히 북적이고 있다. 미술을 향한 국민의 문화적 열정이 이토록 높았던가 새삼 깨닫게 해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이건희 컬렉션 외에도 유명인사의 미술품 수집에 열광한다. 유명인사가 소장하고 향유하는 작가의 작품은 곧 미술시장에서 유행되어 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유행에 따라 혹은 작가의 명성만 믿고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추세에 대해 ‘얄팍하고 장식적인 작품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다만, 이런 비판에 대해 오늘날의 컬렉터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 같다. 얄팍하거나 장식적이지 않은,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진지한 작품은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가? 가치 있는 작품을 골라내는 감각과 안목이 중요하다지만, 사실 그 감각과 안목은 전문가만이 갖출 수 있는 소양이 아닌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 전경
ⓒ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실제로 과거에는 컬렉터가 전문가의 조언에 의존해서 미술품 수집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기성세대의 컬렉터는 좋은 작품이라는 정답이 있다고 가정했고, 그 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의 안목과 감각에 의존했다. 국내 미술품 수집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간송 전형필과 호암 이병철도 마찬가지였다. 간송은 수집 초기에 위창 오세창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수시로 만남을 청했고, 호암은 완벽한 컬렉션을 구축하기 위해 고고학자를 고용해서 늘 곁에 두고 조언을 구했다. 그러니 응당 사람들은 이런 컬렉션이 역사적 혹은 미적 가치가 검증된 것이라고 여겼고, 수집가는 이러한 컬렉션을 적극 참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뢰를 다진 간송과 호암의 컬렉션은 공적 컬렉션으로 환원되었고 미술관이 되었으며 오늘날 그 가치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환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품의 역사적, 미학적 가치가 곧장 미술시장에서의 화폐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생각보다 많은 작품이 그 미술사적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오늘날 미술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추세인 탓이다. 요즘 미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컬렉터는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감각과 안목을 기르거나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유행하는 작품, 다른 사람이 갖고 싶어 하는 작품, 유명한 작가의 작품, 희소가치가 높은 작품을 갈구한다. 이에 따라 작품의 가격은 더더욱 철저하게 시장논리를 따르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사적 혹은 미적 가치를 장담할 수 없는 작품이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세대 컬렉터의 감각과 안목 부족을 탓하는 것은 부당하다. 기성세대에 비해 가공한 정보력으로 무장하고 유행과 개성의 균형을 맞추어나가는 그들은 환영받아야 마땅하다. SNS를 비롯한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다양한 유행이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고 소멸하며, 그 주기는 짧아졌다. 그 속에서도 컬렉터는 다양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취합하고 분석하여 주도적으로 컬렉션을 구축해나간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가짜 정보나 교묘한 상술이 컬렉터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이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이 우선이다. 빈약한 비평, 전시, 담론, 연구의 틈을 메우고 작가의 성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풍성하고 건강한 콘텐츠의 토양을 보급해야 한다. 그 토양 위에 비로소 아트 컬렉팅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리라.




- 김나리(1984- )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석사, 동 대학원 박사 수료. 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미술경영 박사 과정. 갤러리현대, 뮤지엄 산 큐레이터 역임. 경기문화재단 주최 <옆집에 사는 예술가> 디렉터(2015-2022) 역임. 나리화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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