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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장소 상실의 시대, 뮤지엄 산책자의 경험

김옥진

장소 상실의 시대, 뮤지엄 산책자의 경험1)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이 시작된 후 몇 번의 계절을 지나며, 뮤지엄은 닫혔던 문을 활짝 열고, 관람객들에게 각각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다양한 컨텐츠로 소통하고 있다. 진행 중인 전시를 소개하거나,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펜데믹 시절 관람객들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한 뮤지엄들의 노력은 디지털 세상을 기반으로 계속되고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제는 NFT(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토큰)기반의 창작물들이 등장하는 세상에 이르고 있으므로. 

존재하지만 닿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과 기대를 가지게 하는가. 
로망 혹은 경외를 지향할까, 또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지게 될까

웨드워드 렐프는 ‘하나의 ‘공간’에 어떻게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하여 ‘장소’로 만들 것인가. 그 과정에서 장소의 내부와 외부의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가는가?‘에 관한 논의를 통해, ‘장소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장소 정체성은’ 도시나 경관의 물리적 외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경험, 눈, 마음, 의도 속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개인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특정 장소에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펜데믹을 겪어낸(지났다고 믿는) 우리에게 뮤지엄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와 정체성을 가진 장소일까.

기존의 전시 관람과 교육은, 뮤지엄에 직접 발을 디딘 관람객, 어찌되었든 박물관에 입장하여 전시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방문객을 대상으로 각종 서비스와 장소 경험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은 코로나 펜데믹을 기점으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발판삼아 사람들에게 박물관에 방문하지 않고도 박물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박물관의 접근성 확대는 그간 박물관에 ‘방문할 수 있도록’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을 ‘경험’하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박물관이 보다 관람객에게 다가간다는 점에 기여하고 있다. 

위기의 시대, 대부분 펜데믹을 기점으로 온라인에 터를 두고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의 뮤지엄 경험을 돌아보자. 다양한 전시 소개 및 해설 영상, 다양한 유물과 전시품, 창작자를 주제로 한 기획 프로그램, 교육용 영상 등이 디지털 매체와 플랫폼을 통해 게재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뮤지엄의 주요 여러 기능 중 ‘전시’의 다른 모습일까, ‘교육’의 새로운 모습일까? 사실 서로의 이해가 전제된다면 이 두 가지 키워드의 균형잡힌 결합이야말로, 그간 이상적인 뮤지엄 교육과 경험의 방향성으로 그려져 왔다. 
이러한 컨텐츠 들은 대부분의 ‘영상 자료’ 유형으로 그 제작 과정과 소비, 유통의 형식을 고려했을 때, ‘거리 두기’의 일상에서 일반적인 전시관람의 대안이기도, 교육의 한 방편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한 입장 제한 등 위기에 닥친 제한적인 행사 운영시 그 진행 과정을 공유하거나 기록하여 아카이빙하는 역할 또한 동시에 이뤄지는 장점이 있다. 

지난 2019년 ICOM 도쿄 총회에서의 제트 센달의 논의처럼 디지털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은 끝이 없어 보이는 ‘가상 경험’의 약속으로 일부 사람들은 실제 물건의 수집에 대한 그간의 지속적인 관심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또한 많은 비즈니스 모델들을 위협했던 ‘디지털 혼란’은 처음에는 뮤지엄 소장품들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뮤지엄들은 대체로 디지털 기술을 민첩하게 채택했고, 그것은 문화적 참여의 수단으로서 큰 역할을 입증했다. 코펜하겐 박물관의 벽과 같은 프로그램들에서는 처음 2년 동안 코펜하겐의 5,000개의 새로운 이미지를 데이터베이스로 추가했고, 뉴욕 시립 박물관의 핵심에서 뉴욕과 같은 새로운 몰입형 전시회를(2016년 개관), 전시의 디지털 구성품들은 방문객들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 
관람객이 체감하기로는 우리의 경우에도, 최근 2~3년 사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실감’ 디지털 몰입형 전시가 대형공간에 상설 설치됨은 물론,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되었던 코엑스 전광판의 파도(WAVE) 영상, 광화문광장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외벽도 같은 맥락의 공공 미디어 작품들이 새로운 볼거리와 경험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 매핑을 활용한 다양한 미디어 아트의 관람 흥행과 연일 SNS를 장식하고 홍보하는 디지털 몰입형 전시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뮤지엄 전시와 디지털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더욱 어려운 현실이다. 
더구나, 이러한 소셜 미디어 계정은 우리를 전 세계의 수천 명의 팔로워들과 연결시켜준다. 뮤지엄에서나 뮤지엄에 대한 세계적인 대화는 즉각적이고도 초국가적인 현실인 것이다.  

이처럼 접근성 확대, 접속 채널의 다양화로 인해, 뮤지엄은 더이상 지식을 ‘전달’, 또는 ‘교육’하는 곳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지식을 ‘경험’하고 찾는 곳으로 점차 변모함에 따라 뮤지엄은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사회’ 속의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실재하는 박물관에 닿기 어려운 온라인 관람객이자 디지털 방문객들은 - 동시대의 고민과 담론이 담긴 큐레이션, 관람객 이해와 경험을 고려한 전시 디자인은 물론, 관람객에게 보다 친근하고 친절한 방식의 해설과 해석, 전시기획과 전시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담긴 교육 계획 등- 이 모든 것이 보다 해당 컨텐츠 안에서 강력하게 결합되고 충분히 소화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뮤지엄은 이러한 위기(또는 계기)로한 플랫폼의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및 인식하고 있고, 전시와 교육의 자연스런 만남과 결합의 동기 부여는 물론, 보다 촘촘한 뮤지엄의 장면들을 실재감있게 구현하는 기술들과 결합하여, 실감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뮤지엄 컨텐츠들의 창작과 생산에 몰입중이다. 

덕분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에듀–큐레이션’형, 또는 ‘큐레토리얼-에듀케이션’의 성격의 뮤지엄 경험을 예상치 못한 장소와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플랫폼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사실 학교와 같이 단체관람과 체험학습을 고민하던 공교육계의 입장은 이러한 상황이 단절된 교육 위기 상황 중에 반갑기도 고맙기도 하다. 기존보다 더욱 풍부하고 친절한 역사·문화·예술 컨텐츠를 뮤지엄의 도움을 받아,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고 박물관을 훨씬 친근하게 학생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보다 수월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온라인 형태의 체험학습 진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뮤지엄의 장소 정체성, 우리는 뮤지엄의 장소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어렵게 이동하며,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몇 번의 클릭으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뮤지엄의 다양한 컨텐츠들은 더욱 화려해지고 있고, (뮤지엄 예산과 인력 규모에 따른 컨텐츠 생산의 빈익빈 부익부, 또는 양극화(?)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더욱 새롭고 풍부한 볼거리를 다양한 기술들로 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짝반짝 화려해진 뮤지엄의 컨텐츠들은 그간 박물관미술관의 기존의 경험을 충분히 대체하고 있을까? 한편으론 새로운 형식으로 기술과의 결합으로 보다 확장된 경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간 소외되었던 지역적 한계를 접근성의 강화로 그 경험의 폭과 계층을 확대시켜주는 장점은 눈여겨볼만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바꾸어보자. 뮤지엄을 직접 방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려움을 감수하고 방문한 관람객은 어떤 차별화된 경험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가 그간 뮤지엄에서 어떤 경험을 해왔는가를 돌이켜보면, 뮤지엄의 장소 정체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컨텐츠가 중심이었던 뮤지엄의 기능은 어떤 형태의 플랫폼으로 옮겨가도 그 안의 정보와 의미가 퇴색될 우려는 덜하다. 그러나 그간의 뮤지엄 기능과 경험은, 뮤지엄 소속 유물이든, 작품이든 해당 전시품을 중심으로한 단일한 컨텐츠를 접근하는 통로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전시의 메시지와 관람자 경험의 결합을 통한 사색과 사유의 과정을 제공하던 장소적 특성은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 전시품의 맥락과 공간이 주는 힘, 그와 동시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각기능들이 통합적으로 제 할일을 하던 경험 등이 중요한 강점이자 기능이었음을 더욱 깨닫게 해준다. 아니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에 펜데믹으로 더욱 격렬하게 겪게된 장소 결핍의 경험이 더욱 강렬하게 그것을 설명해준다.
또한, 결정적으로 박물관 관람객 입장에서의 가장 큰 차이는, 직접 가보지 못해도, 다양한 세대별 소통기능과 취향을 존중하는 SNS형태의 채널과 임팩트 있게 기획된 효과적인 VR, AR체험 등을 앞세운 현재까지의 디지털 컨텐츠들은 그간 놓치기 쉬운 다양한 형태의 관람경험을 친절히 안내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반면에 디지털 관람객 및 방문객들의 판단과 사색 등의 개입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박물관 접근의 채널은 다양화, 다각화 되었지만, 쌍방향의 소통이 확대되었는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기존의 뮤지엄 공간에서의 전시를 보며 전시품과 전시품 사이를 유영하여 관람과 이해를 관람자 본인의 이해와 과정의 속도대로 경험하고 맥락화하는 과정의 경험은 아직까지 현재의 컨텐츠에서 담아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디지털 관람객의 판단 및 선택, 생각하는 시간을 좀처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한편, 이러한 것이야말로 돌아보면 뮤지엄의 직접 경험이 주는 가장 큰 강점이 아니었을까. 


장소 상실의 시대, 결핍된 장소 경험과 장소 상실
그렇다면, 뮤지엄 컨텐츠들의 제작유형과 과정에서 관람객의 시선과 본인의 경험을 곱씹어볼 수 있는 ‘사고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적 접근은 어떻게 대체 혹은 보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점들이야 말로 바꾸어 말하면 그간 뮤지엄의 직접 경험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되는 큰 장점이었다는 점, 비형식적 교육이었지만 잠재적으로 큰 순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부각된다. 
이러한 점들이 장소 상실의 시대 더욱 부각되는 뮤지엄 장소 정체성의 힘이 아닐까. 

오늘날의 뮤지엄은 오늘날 동시대 사람들의 가장 우선적 고민인 감염병 위기, 위로와 치유, 더불어 환경위기를 감지한 주제를 사회적 공론화하는 동시대의 중요한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담론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그간 일상과는 분리된 특별한 치유의 쉘터, 또는 혼란한 시기의 안전하고 고요한 사색의 장소로서도 그 기능을 해오고 있다.
장소 경험의 부재와 결핍은 사람들에게 뮤지엄을 어떻게 기억하게 할까. 박물관을 가상의 경험으로 더 많이 접하게 되는 세대의 어린이들은 박물관에서 점차 무엇을 기대하게 될까.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뮤지엄은 박물관의 장소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가. 오리지널리티를 대체하는 박물관의 감각 경험은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그로 인해 놓치게 되는 경험은 무엇으로 대체되는가. 
최근의 이른바 ‘핫’하다는 전시들, 블록버스터 전시라 일컫는 에드워드 호퍼전, 피카소전, 두 곳의 라울 뒤피 전,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 소식까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이번 여름에는, 연일 매진 소식과 도대체 ‘도대체 예약하기가 이렇게 어려울수가’ 로 대변되는 관람객 피드백을 들여다보면 그 마음 한 켠에는 비단, 명작과 대가를 필두로 한 전시의 다른 흥행요소를 갖추어서만이 아니라, 그간 디지털이 범람하고 있는 전시 분위기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것에 의지 않은 채 오롯이 원작의 작품을 만나고 음미하는 시간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한 번에 답할 수 없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물음이 가득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옛날에서 경험하는 장소정체성 논의의 확장은 뮤지엄과 교육의 정의를 보다 의미있게 확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뮤지엄의 장소를 우리가 지금까지의 물리적 경험으로 존재했던 뮤지엄을 넘어서 메타버스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점차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재의 순간. 뮤지엄의 장소 경험 논의가 보다 정교화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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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글은 필자가 쓴 ‘장소 상실의 시대, 뮤지엄 경험’(2021, 박물관교육연구 25호)의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김옥진(1977- ) 서울교대 대학원 박물관미술관교육 석사, 서울교대 대학원 사회과교육 석사, 박사 수료. 서울교대 뮤지엄교육연구소 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 디자인센터·아시아문화전당·유네스코 ESD 교사 자문위원 등 역임. 서울시교육청 박물관미술관교육·생태전환교육 컨설팅 장학위원, 서울박물관미술관교육연구회 임원. 서울 성북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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