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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원로 작가들이 <내일 갤러리>에서 두 번째 전시를 연다. 신문용, 박항률, 한만영은 우리나라의 해방기를 전후하여 태어났고 1960년대 중반에 미술대학을 다닌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전국의 미술대학에서 후학들을 양성 하는 것에 힘을 쓰다가 정년을 맞이한 뒤 자신들의 예술세계에 대한 심화와 숙성을 지속해 나아가고 있다. 



<박항률>

그림 전체를 관류하는 하나의 시선이 있다면 그것은 응시의 시선이 아닐까. 그의 그림에서 사물과 사물이 서로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본다. 그림들은 서로 응시하면서 침묵한다. 서로를 고요히 바라볼 뿐 포옹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응시의 눈길을 통해 따스한 침묵의 대화를 나눌 뿐이다. 이런 선경의 세계, 비경의 풍경을 통해 비로소 박화백의 마음 속에 동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어쩌면 작가도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성찰이 깊은 명상에까지 이르기를 희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신문용>

일찍이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미셀·라공은 「抽象풍경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보통 생각으로는 서로 상충되는 이 두 낱말을 묶어 만들어낸 이 말은 언뜻 듣기에는 매우 생소하고 모순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모순된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우리에게는 지극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풍경화가 사실적이고 서술적인 회화라는 것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실성이 배제된 풍경화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풍경화에 있어 자연은 엄연히 작품의 발상원(發想源)으로써 작품 속에 숨쉬고 있으며, 문제는 그 자연을 하나의 「감흥(感興)」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의 구체적인 정경은 자취를 감추고 범자연적(汎自然的)인 호흡이 화면에 숨쉬게 되는 것이다. 신문용은 말하자면 이와 같은 계열의 화가이다.


<한만영>

한만영의 관심은 현실을 객관화하거나 ‘인식’시키려는 데 있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일부를 생략하거나 단순화시키는가 하면, 사물의 파편적인 요소를 몽타주나 콜라주 기법으로 뒤섞어 갈등과 충돌을 야기시키고, 이로써 이미지를 기성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이 낯설게 만들어버린다. 이렇듯 서로 대비되는 사물로 갈등구조를 만들고 과거와 현재의 이질적인 시간을 한 화면에 조합하는 방법은 기존의 현실적 관계를 깨트리고 새로운 창조적 관계를 맺어준다는 점에서 초선형적(supralinearity)이라고 할 수 있다.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와해시키고 사물의 합리적 관계를 박탈해버림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관객은 각자의 경험과 감성에 따라 내용을 재구성하여 상상하게 되고, 이로써 관람자의 인식을 중층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만영은 ‘차용’이라는 다소 뻔한 방식을 뻔하지 않게 사용함으로써, 세상은 단선적이지 않으며 중층적이라는 것,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실은 서로를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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