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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세상]불신보다 위험한 믿음 공화국

반이정

수려한 화취와 조형적 가치로 명성이 높지만, 작품 다수가 국외 반출된 형편인 고려불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하여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옛 그림을 보는 나의 식견도 부족했지만, 빛바랜 불화로부터 고유의 화려함과 도상 의미를 살피는 데 애 좀 먹었다. 그럼에도 어지간해서는 끈끈한 감동에 나는 도달하진 못했다. 그런데 감상을 방해한 요인이 비단 옛 그림의 생소함 탓만은 아니다. 언론에 대서특필된 전람회는 자식 대동한 부모의 단골 내방지이기 십상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교육적 목적! 애써 그림을 응시하던 와중, 아이를 동반한 부부관객 무리와 만난다. 어두컴컴한 전시실에 들어선 영문 모르는 아이들은 큰소리로 재깔이거나 전시 공간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불평을 늘어놨다(나가고 싶다며). 익히 예견할 수 있는 장면 아닐까. 기초적인 놀이문화에 길든 아이에게 700년 전 완성된 ‘아미타내영도’가 무슨 유의미성을 갖겠는가?

나는 미술관·박람회·고전음악연주장 등이 한국사회 학부모 사이에서 대단한 교양교육의 전당인양 추앙되는 정서에 공감 못한다.물론 조기 문화체험의 순기능마저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려면 기초적 소양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전시장 에티켓쯤은 숙지시켜야 맞다. 대형 전람회장에서 마주치는 자식 대동한 부모 열의 아홉은 제 자식의 난동에 거의 무방비 혹은 ‘달관’ 중이다. 순수예술의 전당 한가운데 자식을 던져놓는 것만으로 교양 상승효과가 있으리라 굳게 믿는 것 같다. 이런 완강한 믿음 때문에 선의의 주변 관객들에게 민폐가 되는 건 숫제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자식이 장성한 후 “어릴 적 부모가 나를 미술관에 자주 데려갔지”라며 보은의 추억을 되새김하리라 계산하면서. 전시장 에티켓을 방관하는 성인관객의 교양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점에서 우당탕 뛰노는 자식을 내팽개친 부모 수준과 대동소이하다.

차라리 전시당국에 당부하고 싶다. 학부모의 전시장 에티켓이 국제수준을 밑도는 처지라면, 입구에서 관람 주의사항 숙지를 의무화하라고. 전시장·음악회장 따위는 ‘성인관람가’로 묶어두는 건 어떨까! 현실적 대안은 아이 취향에 영 어울릴 법하지 않은 작품을 올리는 전시장과 공연장에선 부모의 관람 동안 아이를 임의 위탁하는 간이 보육시설을 운영하라. 막무가내 선의는 타인에겐 큰 민폐다.

철없는 성인들의 독선이 인구에 회자된 적이 근자에 있다. 다 큰 개신교도들이 전국 사찰을 돌며 불상을 우상이라 폄하하고 불당 안에서 기독교 사역을 과감하게 펼친 동영상과 사진이 떠돌았다. 개신교의 배타적·공격적 선교야 일상사가 되어 새삼스럽진 않다. 따가운 주위 시선을 종교탄압으로, 자신의 몰염치한 선교를 희생어린 결단이라 믿게 하는 건 굳건한 자기 확신이다. 아마 이들 모두를 견인하는 내부의 동력은 “나만 믿고 따르면 잘 될 텐데, 믿음이 부족해”라는 아쉬움이 아닐까. 자고로 악은 불신이 아니라 견고한 믿음에서 배태된다. 저들의 경전 속 문장을 되돌려주고 싶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ps. 임시변통: 부모 손에 끌려온 아동을 위한 전시장 임시 보호소처럼, 믿음 충만한 신도들을 공동체로부터 격리시키되 ‘맞춤형 유희’에 몰입하게 하자. 불당 땅밟기 열성신자에겐 사찰 모형을 지어준다. 4대강 열광자에겐 운하 모형 인공 호수를 조성해준다. 그들의 맹신이 모형 안에서만 자족하게 하라!

-경향일보 2010.11.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082125035&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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