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현
초록이 감싸안은 공허
김상진, 크로마키 그린, 2021
언제부턴가 초록의 계절 여름은 싱그러움이 아닌 장마로 인한 우중충함을 느끼게 한다. 이렇듯 초록의 밝은 면이 아닌 다소 어둡다는 느낌을 받은 경험을 두 작품을 통해 말해보고자 한다. <크로마키 그린> 작품 속에서 초록빛으로 표현된 크로마키가 눈에 뜨이는데 크로마키는 영상을 합성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결국 지워지는 것이다. 사람 뒤에 설치되고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병풍 취급’ 당하는 것에서 병풍이 생각났다. 덧붙여 크로마키가 지닌 상실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상상화로 실재하지 않는 것을 그린 한궁도가 떠올랐다.
한궁도 병풍, 19~20세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한궁도 병풍>과 <크로마키 그린> 두 작품 속 공통된 색채를 집중적으로 보면 흥미롭다. 역시 초록색이 눈에 들어온다. <크로마키 그린>에서의 초록색은 이중적 속성을 꼬집는다. 도시와 사회라는 인공적 환경에서 자연성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 초록색이 영상 제작 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의 편의를 위해서 ‘사라져야 하는 존재’로서의 역설을 담고 있다. <한궁도 병풍>에서의 초록색은 산으로 자연물을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 한궁도는 실재하는 궁궐이 아닌 중국풍의 전각殿閣들을 계화로 그린 일종의 상상화이다.
각 작품 속의 초록은 <크로마키 그린>에서는 결국엔 사라지는 색으로, <한궁도 병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궁을 표현한 색으로 나온다. 이러한 부분에서 초록색은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 조화로움이 아니라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덧붙여, <크로마키 그린>에서의 초록색이 자연성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한궁도 병풍>에서 자연물인 산을 표현하는 것에서는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성을 상징하는 것인 한궁도 마저 결국 실존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허무함과 공허함을 안겨준다.
크로마키 그린 색상이란 가상 세계 속에서 화려한 특수효과들을 펼치기 위해 존재하는 색이다. 그리고 한궁도는 상상화로서 중국풍의 이국적이고 화려한 전각들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두 작품 모두 현실에서는 무의 존재로 허무함을 나타내지만 가상세계에서는 현실과는 반대로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초록이라는 한 색이 나타내는 자연적인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인 허무함도 나타내고 나아가 화려함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두 작품 사이에 약 1-2세기가량의 긴 시간적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한 색이 주는 느낌이 동일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그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채현 cogus0215@naver.com
0 0
FAMILY SITE
copyright © 2012 KIM DALJIN ART RESEARCH AND CONSULTING. All Rights reserved
이 페이지는 서울아트가이드에서 제공됩니다. This page provided by Seoul Art Guide.
다음 브라우져 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This page optimized for these browsers. over IE 8, Chrome, FireFox,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