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추천리뷰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사이’에서 발견하는 삶의 희망

김재인

김재인 펠릭스에듀 대표





좌)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의 앞면과 뒷면(위와 아래), 15C 
우) <화초도>, 20C


“바람이 분다...살아야 겠다” 폴 발레리는 삶을 희망했다. “그러나, 어떻게?” 나는 갈 바를 알지 못해 절망했다. 그 희망을 발견한 것은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의 표면에서 였다. 그리고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는 김남주의 시가 빛줄기처럼 불쑥, 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의 앞면에는 두 마리 물고기가 대각선으로 교차해서 교감하고 있는 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한편, 뒷면에는 세 마리 물고기가 배지느러미 부분을 살그머니 덧대면서 수직으로 서 있다. 앞뒷면 물고기들의 선묘는 부분적인 미완성으로 되어 있어서 몸둥아리의 일부를 물 속에 담근 채, 막 수면 위로 떠오르는 찰나의 순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고기들은 수면 위와 아래가 만나는 지점에서 몸둥아리를 드러낸 채, 동그란 눈과 벌려진 입으로 빛나는 한 순간을 연출하고 있다. 백색귀얄 붓질로 분장하여 선묘된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의 표면은 생기 가득한 빛으로 그 존재감이 충만하다. 

앞면이 두 마리 물고기의 사랑의 공간이라면, 뒷면은 그 사랑으로 탄생한 세 마리 물고기의 생성의 공간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사랑은 살아있게 한다. 수면 아래의 어둠 속으로 생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삶은 풍성하게 생성되어지고 빛나는 순간들로 채워질 수 있지 않겠나! 그 빛줄기는 <화초도>에서 다시 발견된다. 화면 중앙에는 가늘고 두꺼운 줄기의 대나무 두 그루가 대각선으로 교차되어 있고 그 하단에는 크기를 달리하는 죽순 두 그루와 활짝 핀 화초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화면은 농묵과 담묵이 공존하는 빛과 어둠의 중간지대를 연상케 하고, 선묘는 단정한 듯 부드러운 율동미를 갖고 있다. 

이 모습은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의 앞뒷면이 하나의 화면에 재구성된 듯한 찰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어둠을 뚫고 빛 가운데로 모습을 드러낸 둣, 미완성으로 칠해진 두 그루의 대나무는 생성의 공간을 연출하고 있고, 죽순과 화초는 생성되어가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에서의 수면 위와 아래가 만나는 교차지점은, <화초도>에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아침의 공간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교차지점과 공간의 ‘사이’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살아있게 하고 삶에 풍성한 빛줄기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과 <화초도>에서 폴 발레리의 삶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전체 0 페이지 0

  • 데이타가 없습니다.
[1]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