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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족화

박창희


박창희│수원대학교 겸임교수, 환경공학과



우리집에는 가족화가 한 점 걸려있다. 온 가족이 가족사진 대신에 우리 가족을 그린 그림을 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아내의 제안에 나와 아들은 대단히 재미있겠다며 흔쾌히 찬성을 하였다. 작가 선정에 앞서 우리 가족이 해야 할 일은 우리 가족 모두의 그림에 대한 안목을 한단계 높이는 일이었다. 우리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이었기에 맘에 들지않는다고 되팔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에게 선물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전과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잡지를 구독하고 주말이 되면 우리 가족의 나들이는 의례 그림 감상에 모아졌다. 즉, 미술관이나 옥션 또는 이름난 작가의 전시회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림을 그려줄 화가를 찾아야 하였으므로 전업 중견화가들과 새내기작가들의 개인전에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가는 동안 우리 가족들은 미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폭은 투자한 시간 이상으로 훨씬 높아져 갔다. 그 뿐 아니라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정의 교감이 함께 이루어졌다. 가족의 소중함과 행복감까지 느끼게 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을 위한 그림 몇 달간의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최종적으로 2명의 작가가 후보에 올랐는데 한 화가는 20대 후반의 젊은 동양화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 나이에 비하여 자신의 세계가 잘 구축되어 있었다. 그녀는 주로 인물화를 그렸는데 대상이 되는 사람을 자신의 눈으로 재구성하여 겉으로 나타난 형상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까지도 화폭에 담고 싶어 하는 개성이 매우 강한 작가였다. 다른 후보는 40 중반의 중견 작가로서 화가로서의 커리어도 상당부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견 작가가 그러하듯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어 구청문화 센터나 대학에 강사로 출강하여 근근이 생업을 꾸려나가는 처지였다. 이 작가 작품의 특징은 대상이 되는 사람의 얼굴 위쪽으로 머리 대신 대상 인물의 느낌에 맞는 꽃다발을 그려나가는 독특한 자신만의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캔바스 위에 여러 겹의 마티에르를 입힌 후 날카로운 칼로 긁어내어 명암을 표현하는데 비 전문가의 눈에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 듯하였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폴 고갱의 작품에서 보이는 원초적이고 신비주의 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작품 가격을 고려하여 수차례의 가족회의 끝에 후자의 작가를 만장 일치로 선정하였다. 물론 가격은 요즈음 잘나가는 유명 작가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정도로 낮게 결정 되었다. 그 다음 할 일은 작가의 양해를 얻어 각자의 머리에 얹을 꽃을 선택하는 것이었는데 아내는 초 봄이 되면 함초로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아들 녀석은 엄마 곁에 함께 있고 싶어서인지 역시 봄 꽃인 개나리를, 나는 칸나를 선택하였다. 가족화를 주문 한 후 2 달 여 동안 우리 가정에는 기대와 희망이 늘 함께 했고 아들 녀석이 말썽을 피울라치면‘너 작가 선생님한테 일러서 잘 못 나오게 할거야!’하며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였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가족 그림이 집에 도착하는 날 우리가족 모두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작품이 개봉되어 벽에 걸리자 환희의 함성을 지르며 서로 껴안았다. 우리가족이 그림의 주인공이 된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이 이렇게 탄생 되었던 것이다. 작년 늦더위가 한창이던 때 부터 시작된 우리가족들의 땀과 노력과 열정이 한 순간에 보상되는 기쁨의 순간이었다.

미술품 투자가 재테크의 한 수단으로 당연히 여기지는 요즈음 우리 가족의 가족화 사건은 어쩌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감상적인 행태일 수 있으나 미술에 대한 나의 열정은 그림을 사서 두 배 세 배가 올라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미술품 수집가들의 그것과 결단코 비교되길 거부한다면 나의 지나친 오만일까? 문화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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