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새, 2022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2022.09.09.-2023.02.2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전시실, 서울박스

서울박스에 전시된 작품부터 이미 가슴이 답답해지는 모양새다. 이전에 작가 최우람의 작업을 통해 내가 기억하는 것은, 기계로 된 생명체들이 자아내는 공상과학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직접 작품을 만난 이번 전시는 불편하리만큼 사회 밀접적인 세계관이었다.

원탁, 2022

하나의 머리를 원판에 18개의 허수아비가 이고 있다. 애초에 '허수아비'로 예상되는 역할과 '원형' 머리를 갖겠다고 움직이면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머리 그리고 원판의 구조가 작업의 의미를 예상하게 한다.

그 위로 천정에는 〈검은새〉가 날고 있다. 처음 전시를 보러 갔을 때는 미쳐 고개를 들고 찾아볼 생각을 못 했다가 추가 검색하며 알게 되었다. 아등바등 먹이가 되지 않으려고 아래서는 애쓰지만, 검은 새는 이들에 하등 관심 없는 다른 레벨의 생물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면 나도 검은 새가 머리를 노린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하나, 2020 / 빨강, 2021

코로나19가 덮친 상황에서 만들어진 이 작업은, 재료는 방호복의 재료와 같은 것으로 선정했다. 멀리서 보면 흰 꽃으로 보인다. '이 시대를 향해 보내는 헌화'라는 해석이 바로 이해된다.

전시실 끝으로 가면 붉은 방에 붉은색으로 비슷한 작업을 볼 수 있다. 흰 꽃과 다른 분위기를 내는 작업 〈빨강〉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폈다가 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붉은 색이 피, 생과 사, 열정 등을 의미하며 보다 생명의 표현에 집중한 느낌을 준다.

작은 방주 / 등대 / 두 선장 / 제임스 웹 / 무한 공간 / 닻 / 천사 / 출구 / 2022

작은 방주, 2022

닻, 2022

천사, 2022

〈등대〉, 〈두 선장〉, 〈제임스 웹〉, 〈무한 공간〉, 〈닻〉, 〈천사〉, 〈출구〉에 이르는 여러 개의 작업이 같이 구성되어 방 하나를 무대로 하는 설치 작업 〈작은 방주〉가 되었다.

방주는 멸망하는 세상에서 선택된 인간과 동물을 구원하기 위해 만든 종교적 상징이다. 작은 방주는 지금 오늘을 여러 면에서 불안정하고 멸망이 임박한 세상이라 역설하는 모양이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바라보는 선장들과 그들이 바라보는 무한 공간/끊임없이 열리는 문, 갈 길을 비춰야 하는 등대가 오히려 방주를 타고 있는 모양새, 저 멀리 엉뚱한데 걸려있는 닻까지 방주가 구원이 필요함에도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거라 예상하게 만든다.

설계드로잉, 2021-2022

샤크라 램프, 2013

URC-1, 2014 / URC-2, 2014

후미등과 전조등으로 각각 만들어낸 두 개의 작품은 별처럼 스스로 빛을 낸다. 이들은 시장에 나와보지도 못하고 폐기된 실험용 차량에서 분리해 낸 것으로, 잠시 필요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 중 일부이다. 속도와 무한경쟁 등을 의미하는 자동차에서 가는 길을 밝히는 조명만을 모아 만들었다는 것이, 작은 효용을 위해 쓰이고 스러진 것들의 조각 모음이란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원탁〉으로 느꼈던 답답함은 전시장 작품들을 통해 여러 감정들로 변주되었다가, 전시 끝에 〈빨강〉과 〈URC-1〉, 〈URC-2〉 시리즈를 만나며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