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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눈 : 한국근현대미술》 1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객원연구원

시대를 보는 눈 : 한국근현대미술

2020.7.21–2022.7.3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경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은 지난 20년 7월 21일부터 22년 7월 31일까지 긴 호흡을 갖고 한국의 근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미술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대규모 상설전시이다. 특히 작품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에 관련된 아카이브들을 함께 제시하여 한국 미술의 흐름을 작품 내재적 요소와 더불어 외재적 요소들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회화, 조각, 미디어 등 300여 점의 작품들과 250여 명의 작가들의 방대한 작품들이 제시된 만큼, 이번 전시는 15개의 섹션으로 세분화, 전문화되어 전시되었다. 



전시 전경 


120여 년의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0세기 초에서 출발하여 1990년대 이후의 다원주의 예술까지의 전반적 변모 과정과 족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전시 동선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어 있으며, 관찰자(관객)들은 한국의 시대와 미술 생태계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연관성과 흐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실 3층 5전시실을 시작으로 2층 4전시실까지 총 15개의 섹션에서 각각의 시대적 상황과 대표적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오지호, 일본 풍경, 캔버스에 유채, 1928



고희동,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918



채용신, 전우 초상, 종이에 채색, 1911


파트 1에서는 전통미술의 변화와 유화의 도입을 보여주는 작품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보편적으로 근대의 시작이라 여겨지는 1910년대 미술계의 특징으로는 서양화가의 탄생, 서화강습소의 설립과 후진 양성, 서화협회의 발족, 전람회 미술로의 이행, ‘미술’개념의 일원화와 새로운 미술론의 확산을 들 수 있다. 특히 서화문명론, 미술등급론, 미술혁신론, 한국미술사론과 같은 다양한 미술론의 발전과 확산이 특징적 시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본격적인 서양화가의 탄생 시기이도 하다. 고희동, 김관호, 김찬영, 나혜석 등 다양한 유학작가들이 나타났으며 지파의 명치회, 자파의 백마회와 같은 고전주의 화풍, 인상주의 화풍의 경향을 보이게 된다. 특히 고희동 등은 구로다 세이키의 인상주의 화풍을 흡수하여 그의 자화상에서는 인상주의적 색채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채용신과 같은 조선 시대의 직업 화가 출신의 활동(초상화와 공방미술 등)과 안중식, 김규진과 같은 적극적으로 신문물과 문화를 수용한 화가들의 등장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서화연구소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했다. 




파트2 전시 전경



김기창, 가을, 비단에 수묵담채, 1935



이인성, 카이유, 종이에 수채, 1932



윤호중, 현명, 나무, 1942


파트 2에서는 관전미술과 새로운 표현의 출현에 중점을 둔다. 1920-40년 시기로 제1차 세계대전과 삼일운동이라는 세계사, 한국사에서의 커다란 변곡점이 발생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조선미술전람회의 창설(관전의 탄생), 미술계의 편성을 통한 화단의 분립(동양화의 탄생과 개량, 서양화단의 형성과 약진, 조각가의 등장), 서화협회의 활동, 집단미술운동의 대두, 근대적 미술비평의 본격화, 미술론의 대립 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1920년대는 일본의 ‘문화통치’시기로 조선미술전람회의 개설과 같은 정치와 통치의 방식으로의 예술의 활용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국전의 전신인 조선미전의 경우 민중 사상의 순화와 내선융화를 목적으로 조선양화 동지회를 조직했던 조선 거주 일본인 화가인 다카기 하이스이를 중심으로 전개된 관 중심의 전람회였다. 

이 시기 한국의 미술가들은 서화협회를 중심으로 한국인 주도의 서화협회전을 열기도 하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회화의 사조(인상주의, 야수파, 초현실주의 등등)를 수용하고 이를 자신의 개성과 결합하여 새로운 작업물을 선보이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또한, 김복진, 윤효중, 김종영과 같은 조각가의 탄생도 이루어진 시기이다. 

1930년대에는 근대의 초극과 도양성을 모색한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색(동양적 고전에 대한 관심)과향토색(농촌과 고향에 대한 관심)의 회화 경향이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다. 김중현, 이인성, 이영일, 장우성 등의 작가가 있다. 또한 아케데미즘 미술과 모더니즘의 확대 또한 시기의 특징으로 한다. 특히 인상주의의 토착화와 신감각파의 등장으로 이 시기 전후를 기점으로 초기 재현으로의 회화가 아닌 작가주의적 회화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중섭, 애들과 물고기와 게, 종이에 유채, 1950년대 



장욱진, 독, 캔버스에 유채, 1949



유영국, 산, 캔버스에 유채, 1959


파트3에서는 1940-50년대 격동의 해방과 전후 미술시기를 제시한다. 45년의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갈등인, 남북의 이데올로기 충돌은 미술계에도 다양한 변화를 제공하였다.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표상하듯 이 시기의 작품의 수는 다른 시기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경향을 보인다. 이데올로기 사이 변화되는 격동의 시기 불안정한 사회는 곧 예술계에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이렇듯 이 시기 작품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 환희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염세적) 경향의 작품들의 혼용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이데올로기적 성향의 그림에서 벗어난 형식주의적, 회화론에 집중하는 추상이 등장하였으며, 이는 한국적 추상 즉 한국적 미감과 정신성에 바탕을 둔 회화들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단체로는 50년대 후반 창작미술협회, 현대미술가협회, 백양회 등 다양한 그룹들이 등장한 시기이다. 




하종현, 무제, 캔버스에 유채, 콜라주, 1965



관련 아카이브 



박석원, 비우, 알루미늄, 1969


파트4에서는 한국의 앵포르멜에 집중한다. 1960년대 한국의 앵포르멜은 프랑스의 전후추상미술과 결을 같이한다. 앵포르멜 회화들은 세계 2차대전 이후 서구에서 진행된 앵포르멜 경향과 같이 한국 또한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사회적 정치적 현상을 미술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반 국전, 반 아케데미즘을 기조로 기존 기성 화단에 대한 도전적 조형 활동을 이루었다. 특히 57년에 발족한 현대미협이 앵포르멜 경향을 이끌었으며, 58년 4회전부터 뜨거운 추상표현주의, 즉 앵포르멜의 조형을 내비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회화들은 작가주의적 회화에 집중하여 구상작업보다는 작가론적인 접근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미술계는 다양한 국제전에 참가하게 되면서 국제 미술의 흐름과 미술의 시대정신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로 한국 미술계는 점차 전위적인 경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승택, 고드레 돌, 돌, 노끈, 1956-1960



이강소, 소멸-화랑 내 술집, 디지털 프린트, 1973



관련 아카이브



이건용, 신체 드로잉 76-2(화면을 뒤에 놓고)/신체 드로잉 76-6(양팔로), 합판에 매직, 1976



김구림, 현상에서 흔적으로, 크로모제닉 컬러 프린트, 1970/2000


파트5에서는 앞서 언급한 전위적 표현들, 즉 미술 표현에 있어서 다양한 양식들을 통한 실험들을 진행하였다. 이는 1960에서 70년대로 설치미술과 같은 새로운 예술과 사진과 영상이라는 새로운 매체들을 통한 탐구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이 시기는 어느 때 보다 다양한 양식과 형식을 통한 실험과 탐구가 진행된 시기이다. 조각과 같은 경우에는 재료의 선택이 다양화되었으며 아케데믹한 방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적 추세로 조각의 경향이 진행되었다. 

또한 이 시기 미술계는 베트남전에서 야기된 히피 문화와 같이 서구의 시대 정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히피 문화, 개인의 자유와 같은 서구의 정신성과는 반대로 당시 한국은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간극에서 미술계는 다양한 사고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위적 문화의 돌파를 견지했다. 동시에 이러한 청년, 히피적 문화 정서 하에 진행된 다양한 전위적, 실험적 예술 표현 양식의 경향과 동시에 개념적 형태의 예술 경향, 심미적 경향의 미술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이후 한국의 미술계를 이끌어 가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관련 아카이브



하종현, 접합 74-98, 마포천에 유채, 1974



윤형근, 다색, 린넨에 유채, 1980


파트6에서는 한국의 단색조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1970년대 유신체제의 문화 정책들은 미술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이 집중했던 회화적 사유와 함께 한국의 정서적 요인들을 더하여 탄생한 한국의 단색화는 행위의 반복과 재료의 물성이라는 특징을 수반하였다. 이러한 단색화는 70년대의 한국 미술의 주된 경향을 차지하게 된다. 




김강용, 현실+장79, 캔버스에 유채, 모래, 1979



고영훈, 돌, 종이에 유채, 1985


파트7에서는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이르는 시기로 리얼리즘 미술과 구상회화의 부상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새로운 리얼리즘 경향은 극사실회화를 필두로 진행되었다. 한국의 극사실회화는 아카데미즘 재현회화에 대한 거부와 동시에 앞서 언급한 단색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주태석, 김강용, 김창영과 같은 한국 극사실회화는 다양한 대상들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대상을 부각하고 보다 표현에 집중했다. 




서세옥, 사람들, 종이에 수묵, 1989



박생광, 무속-16, 종이에 수묵담채, 1985



황창배, 20-2, 종이에 수묵담채, 1987



파트7 전시 전경


파트8에서는 1980년대 지필묵을 사용하는 전통 화단의 큰 변화를 제시한다. 이 시기 한국의 전통 화단의 가장 큰 변화는 한국화라는 용어의 사용이다. 이는 기존 전통적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성과 다양한 기법과 같이 현대미술로의 장르 화를 위한 초석이었다. 60년대를 전후로 전통 화단에서 다양한 추상을 매개로 실험들이 일어났다. 50년대 후반에는 백양회의 발족, 묵림회 등장과 같은 움직임이 진행되었다. 70년대에는 한국적인 것,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깊어졌으며, 수묵채색 화단의 활기찬 전개와 다양한 표현기법(사경산수, 추상적 경향 등)이 나타난 시기이다. 이와 연결되어 80년대 또한 전통적 문인화적 정신성을 바탕으로 다양성의 실험이 이루어졌다. 채색과 민화적 요소들의 첨가는 앞선 다양성의 실험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철, 한국 근대사-금강, 캔버스에 유채, 1996



관련 아카이브



황재형, 심1, 천에 아크릴릭, 미상


파트9에서는 1970년 현실과 발언,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와 같이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미술 ’운동’인 민중미술에 집중한다. 8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미술은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당시 신군부에 대한 저항과 현실의 인식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을 야기시켰다. 이러한 경향은 미술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또한 이전 70년대의 주류였던 단색화에 대한 대체적 요소와 현실에 대한 관심은 미술계가 민중미술을 주류로 취하는 자세에 영향을 끼쳤다. 이후 90년대에 들어서며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사회 전반적 운동으로의 민중미술은 약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문범, 떨어지는 꽃잎, 나무에 아크릴릭, 못, 1987



김태호, 마제석검, 종이에 아크릴릭, 크레용, 1984



관련 아카이브


파트10에서는 80년대의 다양한 소그룹 활동에 관심을 둔다. 다양한 소그룹이 태동한 배경에는 신군부의 탄압에 맞선 민주화 운동과 경제 성장을 통한 일상의 변화가 야기한 미술계의 주도적 흐름에 대한 거부적 경향으로 인해 탄생했다. 이번 섹션에서는 민중미술 혹은 단색화의 미술계의 주된 흐름과는 달리 특정 이데올로기를 취하지 않은 난지도, 3월 서울, 뮤지엄 등 총 8개의 그룹 활동을 보여준다. 이들은 보다 주체적인 목소리, 자유적 표현 그리고 기성세대의 경향에 대한 거부를 다양성이 제공되는 활동들을 통하여 표현하였다. 이들은 특정한 사조 혹은 정신성에 그룹화되지 않았으며 일종의 유목민적인 태도를 취했다. 




김수자, 마음과 세계, 면천에 실, 먹, 대나무, 구리줄, 천조각, 1991



전수천, 당신의 자화상, 혼합재료, 1994


파트11에서는 1990년대 이후 세계화의 시작을 보여준다. 80년대 말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 미술계에는 다양한 미술 환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93년 문민정부의 출발은 미술계의 세계화를 주된 정책으로 목표로 미술계의 다양한 변화를 야기시켰다. 경계를 넘어서 국제적 미술 교류를 통하여 세계의 미술 경향을 흡수하기도, 동시에 한국적 정신성을 기반이 세계로 나가기도 한 열린 시기였다. 

또한 미술의 해로 지정된 1995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건립, 광주비엔날레 창설과 같이 한국 미술계의 커다란 변곡점이 되는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세계적 흐름과 마찬가지로 다원주의적 경향의 미술 흐름으로 나아간 시기이다. 탈중심화, 네트워킹과 같은 세계적 이슈들을 한국미술계는 흡수하고 이에 화답하며 세계 미술계에 있어서 주변부에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을 진행하였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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