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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안효례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展
2020.12.04-2021.03.28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코로나19로 인해 집 밖 출입을 자주하지 않았던, 내가 참으로 오랜만에 놓치기 싫어서 갔던 전시다.

'로즈 와일리는 자급자족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주변 곳곳에서 작업 소재와 주제를 찾아낸다. 특별히 흥미롭거나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발견하면, 그것에 집중하며 즐기면서 작업한다. 때로는 매우 개인적인 기억을 토대로 작업을 하며 대상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한 후 소재로 삼거나 주제의 한 부분으로 활용하는데, 작가 특유의 구상적인 붓 터치를 통해 예외 없이 강렬하고 획기적인 결과물로 재탄생시킨다' - 앤 갤러거 Ann Gallagher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큐레이터 앤 갤러거의 글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저 말들은 로즈 와일리라는 작가를 이해하는데에 필요한 키워드란 생각을 했다.
전시관은 작가의 일상의 순간을 담은 '보통의 시간들', 그가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보여주는 '필름 노트', '테이트 모던의 VIP룸', 역사 속 이야기나 영국 왕실 혹은 뉴스 및 광고를 통해 영감을 표현한 '영감의 아카이브', 작가의 축구를 향한 팬심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아름다움, 축구를 사랑한 그녀 그리고 손흥민', 끝으로 작가의 자화상을 담은 '소녀, 소녀를 만나다'로 구성됐다.


(사진)Lolita Flags Set 1, 2, 3, 2018

전시장의 작품들은 거침없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무엇보다 커다란 화면의 작품들이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가장 큰 작품 중 하나인〈Lolita Flags Set 1, 2, 3〉은 영국 로얄 아카데미 25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코넬리아 파커, 그레이슨 페리, 조 틸슨과 함께 작업한 것이다. 1970년대 작가의 집 건너편 이웃 10대 소녀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고 한다.

(사진) Sitting on a Bench with Border(Film Notes), 2008

〈Sitting on a Bench with Border〉은 영화 '귀향'의 페넬로페 크루즈는 영감은 받았지만 그저 작업의 출발선일뿐 전혀 닮게 그리지 않았다. 주변부로 반복해서 같은 형상을 그리는 것은 영화를 이루는 필름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촤르르 소리를 내며 옛날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것도 같다.

(사진) Black Strap(Eyelashes), 2014

전시에 메인 캐릭터처럼 포스터 여기저기 선보이는 〈Scissor girl〉은 테이트모던관에 있어 촬영은 금지다. 하지만 어쩐지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속 여성들 속에 그들이 숨어있는 듯 보였다.

(사진)Julieta (Film Notes), 2016

작가 로즈 라일리의 작품을 쭉 보면 대체로 텍스트들이 쓰여있다. 스페인 영화 〈줄리에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은 특히 읽는 재미도 있다. 사슴을 클로즈업 해서 보여주고, 사슴을 보고 놀란 사람들을 양쪽에 배치하고 가운데는 아일랜드 발렌타인 카드에 그려진 아일랜드 큐피트로 채웠다. 글씨를 보기좋게 쓰진 않아서 정확하게 알아보긴 힘들지만, 읽을 수 있다면 읽어보는 걸로. 마치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묘한 재미를 느끼게 해줬다.


특별관 '아뜰리에'는 영국의 켄트에 위치한 실제 작가의 작업실을 사진으로 옮겨온 방이었다. 권순학 작가에 의해 재현된 작업실에는 물감 자국이 굳어진 신문 뭉치, 수북이 쌓인 페인트통 그리고 사진 이미지 속 작업실 벽과 주변이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은 들어가지 말라는 만류도 없지만 쉽사리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사진) Korean Children Singing, 2013(평면)/ Korean Children Singing, 2020(입체)

작품 중 '한국인 Korean' 으로 시작하는 작품들이 있다. 하나는 민트색 치마를 입은 한국인 댄서를 그린 그림이었고, 하나는 3개의 입체와 하나의 평면으로 설치된 노래하는 북한 어린이들을 작품화한 것이다. 어쩐지 더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진) Red Painting Bird, Lemur & Elephant, 2016

작가의 작품들에는 동물들이 꽤 자주 등장하는데, 모양은 둘째치고 크기도 자유롭고 어느 부위가 등장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동물들을 모아둔 방은 더욱더 그러했는데, 그래서 관람객은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이 작품을 보게된다. 사실 이 방의 것들은 좀 쉽다. 작품에 영문으로 그려진 동물들의 이름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축구팬인 그의 팬심이 빚어낸 방에는 호나우딩요나 호나우드 등의 유명 선수들도 보인다. 특히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훗스퍼 FC의 한국인 선수 손흥민을 그린 작품이 다수 걸렸다. 그의 무릎꿇는 세레모니와 그 세레모니를 따라한 다른 선수들도 재미있게 그려졌다.


(사진) Son's Tottenham Shirt, 2020

중앙에는 선수 유니폼을 바탕으로 한 2020년 신작이 눈에 띄는데, 손흥민 선수의 7번과 그의 사인이 들어있고 다른 면에는 토트넘 홋스퍼 FC의 엠블럼에서 영감을 받은 수탉과 축구공, 창시자인 해리 훗스퍼의 이니셜을 배치해 토트넘의 역사를 상징한다. 이건 이번 전시에서 공개 경매 이벤트를 하고있기도 하다.



(사진) Blue Girls, Clothes I Wore, 2019


그의 자화상과 그가 투영된 소녀들을 만날 수 있는 방으로 마무리 된다. 작가의 역사도 잠깐 엿볼 수 있는게 마치 작가의 빛바랜 사진첩을 보는 듯도 하다. 끝까지 행복했다. 마스크를 쓰고서 일정 인원을 제한하며 완전히 맘편히 본 전시는 아니었지만,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분명 작품을 보고 행복해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긍정적인 감정이 함께했다. 이런 멋진 작품과 작가를 만나게 해 준 이번 전시가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아쉬움도 크다. 작가가 직접 나이 듦(old)말고 그림으로 알려지고 싶다고 언급하고 있는데(심지어 전시 끝에도 붙어있다) 실제 전시 제목인 'Hullo Hullo, Following on' 보다 더 전시 제목처럼 '영국을 너머 전세계를 사로잡은 86세 할머니 화가'(심지어 너머는 오타다. 넘어가 맞다.)라고 붙여 두었다. 거기에 작품 캡션은 100퍼센트 영어다. 그나마 다른 정보는 차치하고 오직 작품 제목만을 국어와 영어를 병기하던 노력조차 없었다. 영어를 능숙하게 읽거나 해석하지 못하는 관람객에게 불친절한 이러한 모습은, 어머니와 그 지인들께 전시를 추천하려던 나에게는 가슴을 쓸어내릴만한 일이었다. 전시를 보지 않은 채 추천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는 누군가에겐 때론 권력이며, 누군가에겐 폭력일수 있다. 마치 일기와도 같은 그의 작품들은, 그로써도 이미 영어를 알지 못하면 그가 하고자하는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성격을 갖는다. 그럼에도 작품 제목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재미있을 부분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일은 슬프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어쩌면 이럴 때 일수록 미술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까. 조금만 더 편리보다는 사람을 향했으면 좋겠다.


사진.글.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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