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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사회를 성찰하고 치유하는 시간 : 세화미술관 《손의 기억》

객원연구원

상처 입은 사회를 성찰하고 치유하는 시간
세화미술관 《손의 기억》

2020년 9월 16일부터 2021년 2월 28일까지 세화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손의 기억>에 다녀왔다. 김순임, 정문열, 조소희, 최성임, 최수정 총 5명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2020년 상반기부터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혼돈의 시대 속 미술관도 휴관과 재개관을 거듭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 고유의 가치를 돌이켜보며 전통적 개념으로서 예술가의 손, 그리고 손의 창작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껴 전시를 선택하게 되었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흐름에는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창작행위보다 개념이 앞세워진 보이지 않는 위계가 존재해왔다. 많은 작가들이 수공의 기술을 뒤로한 채 관념에 천착해온 과정들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의 손이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이 사회에서 손의 노동, 손의 창작행위를 다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공통된 생각을 바탕으로 다섯 명의 작가가 전시회를 연 것이다. 각각 독창적인 창작방식과 작품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섬유 매체를 재료로 삼아 손으로 시간을 쌓아가는 수공예적, 수행적 방식의 창작과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전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where...>, 조소희, 2020, Threads Installation, 1500x600x320cm, 650x300x250cm

전시장 입구에 전시된 이 작품은 크기는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촘촘한 그물의 반복된 짜임 형태가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듯 했다. 조소희 작가는 ‘시간’을 가시화하기 위해 일상 속 직접 손으로 수행하는 반복적인 작업을 해 나간다. 그 중 실은 가벼운 특성으로 인해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시간이 가진 빈 이미지를 지탱해줄 수 있는 재료로 사용된다. 이 작품 또한 실의 반복된 짜임 행위로 유추할 수 있는 시간의 축적이 묵직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가장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코튼드로잉14-김기환>, 김순임, 2020, Cotton, cloth, cotton threads, 86x130x15.5cm

광목천, 펠트, 솜, 실 등 주로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자연섬유를 주요 재료로 사용해 김순임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직접 만났던 사람들, 가족의 얼굴을 담은 인물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자연섬유로 사람의 얼굴을 구사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만 놀랐다. 하지만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알고 난 후 작품을 더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김순임 작가는 자신의 역할을 공간과 공간, 공간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지역, 사람과 사람 등을 연결하는 ‘직조자’로 상정했다. 전시장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작품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조금 낯선데 그 인물이 결국 나의 친구, 동료이기도 하다. 때문에 낯선 감정은 곧 반가움으로 바뀌고 실제 인물들의 서사를 설명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새롭고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관람자에게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기억과 추억을 이끌어내는 이것이야말로 잃어버린 손의 노동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따뜻하고 꼼꼼한 손 작업의 가치와 그 안에 담긴 세밀한 삶의 기억들을 드러내어 상처 입은 사회를 치유하고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잊지 않고 지녀야 할 삶의 태도를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전시가 되었다. 섬유의 부드럽고 유연한 특성이 살아있는 전시 작품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따스하게 감싸길 기대한다.

윤혜선 yhsun01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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