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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끄러움의 시대, 예술의 언어

이건형

  바야흐로 껄끄러움의 시대이다. 사실 누구나 인지하고 있었지만 외면하고자 했던, 지우고자 했던 진실들이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부의 편중, 권력의 비대화. 지금 이 시대가 마주한 사실이자 진실이다. 2020년을 거쳐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초유의 감염병 시대. 부와 권력의 편중은 극대화되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없이 더 높고 밝은 곳으로 이동하는 이들과 대척점의 끝없이 하강하는 이들. 지금 동시대,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손님은 우리의 위치를 격렬히 갈라놓고 있다. 그리고 묶어두었다. 신분제에서 벗어나 만민평등의 삶을 영위한다는 믿음은 처참히 깨져버렸다. 오히려 이면에 있던, 우리 모두의 외면과 눈가림 속에 커가던 불평등이라는 씨앗이 자라 만개했을 뿐이다. 신 계급사회, 코로나는 달갑지 않은 이 사회를 공고히 다져 나가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에 국한된 사실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종 감염병은 곳곳의 불편한 진실들을 들쑤셨다. 미시적으로는 국가 내에서의 빈부 격차에 따른 의료시스템 접근 기회, 거시적으로는 선진국의 백신 독식, 인종차별 등 감염병이라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유한의 인간은 초라한 모습만을 보일 뿐이다. 혼란스러운 시기, 상승과 하강뿐만이 존재한다. 뜨거운 태양을 식혀주는 반가운 단비가 누군가에는 침몰로 이어지는 비극적 사건이 되듯이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외면할 수 없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껄끄러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봉준호 감독의 디렉팅으로 탄생한 영화 기생충은 2020년 초까지, 그러니까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이전 영화계, 문화계를 넘어 전 세계를 달궜다. 기생충은 상승과 하강이라는 시퀀스와 이미지들의 메타포를 통해 현실의 환부를 날카롭게 후벼팠다. 반지하라는 한국의 독특한 주거 공간은 영화의 언어를 더욱 극대화하는 효율적인 도구로 등장하였다. 화장실의 변기보다도 아래에서 살아가는 반지하의 가족과 언덕 위 양지바른 곳의 가족 그리고 그 어떤 시선에서조차 빗겨 존재하는 가족까지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가지의 상황과 시선은 한 곳에 얽혀 사건을 형성한다. 그 시선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정리되지만 불편한 진실, 누군가에는 언짢은 감정을 선사한 영화는 극대화된 신 계급사회의 민낯을 종합예술인 영화라는 어법으로 서술하였다. 공교롭게도 아카데미 수상 이후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에 의해 부와 권력의 편중이 극대화된 지점은 영화의 언어가 우리에게 더욱 격렬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Tajh Rust, Passages, 2021. Mixed media on tempered glass, steel armature. 84 x 60 inches (each glass panel). Commissioned by The Shed. Photo: Ronald Amstutz.


  공교롭게도 혹은 그러할 운명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제 껄끄러움의 문제들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작금의 시대에 예술이 어떠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연스러운 의문이 드는 시기일 것이다. 대상과 현상을 마주하고, 기록하고, 화두를 던지고 담론을 생산하는 것. 이러한 점들이 동시대 현상에 관하여 예술이 취해야 할 언어이자 태도일 것이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태도들을 지금 이 시기, 우리 사회가 더욱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전염병의 확산은 누적되던 사회의 문제점들은 수면위로 부상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서구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동양인이라는 외적 형상만으로 차별하며 폭행을 일삼고 있다.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근거와 편견은 행위의 합리화 수단으로 사용된다. 집단과 경계를 넘어 융합과 평화라는 21세기의 고귀한 이념들은 무참히 조각났다. 전염병의 파도는 극복의 대상이 아닌 차별과 편견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보편적 시대정신을 넘어 의식주라는 인간의 생활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조차 전염병에 의해 무참히 분해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다. 부와 권력 위치의 편중, 차별과 배척. 예술은 이러한 사회가 야기하는 수만 개의 이야기들을 나름의 언어로 정제하고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생산물인 예술은 불가항력적으로 시대의 정신을 함유한다. 어떠한 형식과 목적을 함유한 예술이든, 대상을 해석하는 관람자들은 동시대를 살아가기에 그러하다. 물론 모든 예술이 그런 스탠스를 취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가볍고 즐거운, 유미적인 흥미, 원초적 감각의 예술들 또한 절망과 패배로 가득한 시기에는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참함과 비극으로 버무려진 작금의 시기의 예술은 그 시대정신과 시대상에 더욱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보다 대두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현상에 대한 답을 직접 제시하기 보다 과정과 결과도출을 위한 환경과 토대를 마련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깔끔하고 유려하게 그리고 위트있게 혹은 무겁게, 어떠한 방식이든 좋다. 시대를 바라보는 언어를 어떠한 운율로 풀어나갈지는 작가들의 과업일 것이다. 불편한 것들을 마주하고 현상을 이해하는 것. 동시대의 이면을 수면위로 이끌어내는 것. 사회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담론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것. 이를 나름의 개성적 형식과 태도로 풀어내는 것. 이것이 예술이 취해야 할 언어이며 현시대의 궁극적인 예술의 목적성일 것이다. 외면에서 벗어나 그 껄끄러움을 마주하고 기꺼이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이건형 twowar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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