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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가는 한 사람의 기록

윤현정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를 잃어가는 한 사람의 기록
: 더 파더(The Father, 2020)


  사람이라는 존재의 의미는 기억이라는 말이 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분야에 노미네이트되고 남우주연상과 각색상을 받은 <더 파더>(The Father, 2020)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안소니에게는 딸인 앤(올리비아 콜맨)이 있는데 그는 요즘 들어 부쩍 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앤은 안소니에게는 필요 없는 간병인을 붙이려 하기도 하고 갑자기 남자를 따라 파리로 가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앤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등장하고(영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눈치채겠지만 <셜록>에서 셜록 홈즈의 형으로 등장하는 마크 게티스가 나온다) 딸인 앤의 얼굴이 바뀌기도 한다. 시계에 집착하는 안소니의 모습이 여러 번 등장하면서 영화 속 시간은 뒤죽박죽이 되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지금 안소니가 지내고 있는 집이 과연 안소니의 집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렇듯 영화의 흐름은 안소니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도 함께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안소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것을 차츰 눈치채게 된다. 안소니는 간병인의 얼굴을 앤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새로 온 간병인이 일찍이 세상을 떠난 둘째 딸을 닮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집이었던 공간이 요양 병원으로 그려지며 안소니가 착각했던 얼굴들은 요양 병원의 간호사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마지막에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인물을 표현하는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간호사 품속에서 우는 안소니의 모습은 치매를 앓는다는 것은 겉은 노인이지만 속은 어린아이로 돌아간 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내가 믿고 있었던 것들이 진실이 아니며,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조차 잊어버리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극 중 앤의 얼굴에서는 짧은 순간에도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진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당황스러움, 원망과 사랑, 두려움과 슬픔. 우리는 이 모든 감정을 배우의 얼굴을 통해서 함께 느끼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 화가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조셉 리(Joseph Lee)는 얼굴에 깃든 감정을 연구하는 작가이다. 분할된 붓 터치와 다양한 색채, 볼륨감 등을 통해서 일상의 얼굴을 표현해내곤 한다. 사람의 얼굴 형체 위에 두꺼운 마티에르를 거친 붓 터치로 표현해낸 작가의 작품은 안소니의 머릿속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표현한 것만 같다.

 

(좌) Joseph Lee, <Pitre>  |  (우)Joseph Lee, <Identity Christ>

  인간의 평균 수명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급기야 백세인생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과학의 발전으로 길어진 인간의 수명 덕분에 우리는 살아가며 병과 싸워야 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가장 무서우면서도 슬픈 병은 바로 ‘치매’일 것이다. 치매는 기억 장애를 겪거나 사람이나 사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증상을 일컫는다. 치매에는 알츠하이머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어느 시기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특히 노령인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윌리엄 어터몰렌(William Utermohlen)은 1933년에 태어나 2007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어터몰렌은 1995년에 62세의 나이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되는데 진단 이후에도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작품을 그릴 수 있는 마지막 상태였던 2000년까지 5년 더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알츠하이머로 인해 점차 떨어지는 인지 능력의 과정은 그의 자화상에 잘 남겨져 있다. 증상이 심해질수록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은 사라지게 된다. 또한, 인물의 형체는 인간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지며 종국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인지 장애로 인해 어터몰렌이 느낀 좌절감과 공포는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이는 영화 속에서 안소니 홉킨스가 느꼈을 외로움과 당혹스러움을 잘 표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터몰렌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도중에도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서 꾸준한 창작 활동을 했다. 그의 이러한 투쟁의 현장은 작품으로 남았고, 화가이자 교사였던 그의 아내는 에터몰렌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자화상을 모아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한 전시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William Utermohlen,
<Blue Skies>(1995)  |  <Self Portrait with Easel>(1996)  | <Self Portrait with Saw>(1997)

  치매란 환자뿐만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보호자도 힘든 질병이다. <더 파더>를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 치매 환자의 상황을 느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장면마다 배치된 물건이 달라지거나 사라지는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치매를 다룬 또 다른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 2014)도 함께 보면 좋은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윤현정 adele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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