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48)스러지는 것들에 숨결을 불어넣는 송수련의 그림 | 이수연

현대미술포럼





스러지는 것들에 숨결을 불어넣는 송수련의 그림




송수련(1945~)은 50여 년에 걸쳐 자연에 대한 심상을 화폭에 담아 온 작가이다. 그는 작업의 주요 소재로 자연을 다루고 있으나 동양화의 산수보다는 수련, 연잎, 나뭇잎, 갈대와 같은 자연물을 취하고 있다. 한편 그의 화면 역시 추상화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당대 추상미술의 그 어떠한 흐름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이 글은 주류에 편승하지 않은 송수련의 작업에 나타난 기법과 표현의 특징을 밝힌다. 더 나아가 작가는 ‘관조(觀照)-내적시선’라는 단어를 전 작업의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가 지닌 ‘대상의 외피가 아닌 내면의 본질을 파악’하는 의미를 그의 작업과 삶 속에서 읽어내고자 한다.

송수련은 1965년 서라벌대학교(현, 중앙대학교)에 진학하여 동양화를 전공했다. 그가 화단에 등단하던 1960년대~1970년대 국내 미술계는 동양화·한국화의 현대화 논의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 송수련은 소위 한국미술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던 변관식, 권영우, 안상철에게 사사하며 화업에 전념했다. 이들의 가르침 하에 미술 재료와 기법의 연구, 추상성의 도입, 한지 작업의 확장, 오브제의 사용을 통한 한국화의 방법론적 고민을 이어나갔다. 이같은 경험은 송수련에게 전통재료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게 했으며, 일상생활 자체를 예술에 도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특히 송수련은 안상철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룹전 《현대차원전》(1976)에 참여하였는데, 이 그룹에 소속된 작가들은 ‘재료의 개방’을 주장하며 다양한 재료에 의한 입체적인 표현을 시도하고 있었다. 1) 송수련 역시 이 영향으로 한국화의 주요 담지체인 한지의 원재료 ‘닥’과 같이 자연에서 유래한 오브제들을 화폭에 붙이기 시작했다. 갈대와 노끈으로 화면을 나누고 여백은 닥의 원액과 껍질로 채웠으며, 그 위에 마와 화선지를 부분적으로 더하여 표면에 다양한 효과를 주었다. 이때 사용된 재료들은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화면상에서 서로 상생하며 상호 생명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이 재료들은 모두 ‘자연’에서 유래한 것이었기에 비록 그의 화면은 추상적이었으나 보는 이로 하여금 ‘대지’를 환기하게끔 한다. 이처럼 송수련의 콜라주 작업은 당대 주류 미술에서 배제되어온 일상의 오브제 혹은 종이와 같은 지지체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비주류의 재료들에 새로운 회화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한편 그가 선택한 재료들은 당대 동양추상화가 ‘자연 이미지’에 천착하였던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970년대 한국사회는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역설적으로 자연에 대한 향수, 전근대 사회로의 회귀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미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시기 한국미술계의 일각에서는 전통을 재해석하는 분위기 속에서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방향성에 맞추어 무위자연이라는 동양정신의 기원이 서린 ‘자연의 소환’에 주목하였다. 2) 송수련의 이 시기 작업은 한국화 작가로서 그에게 주어진 당대의 과업과 함께 “본인의 그림은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작가 본인의 삶의 태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렇듯 송수련의 자연에 대한 관심과 자연물을 대하는 태도는 1980년대의 작품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1970년대 매체에 대한 실험을 마무리 한 작가는 1980년대부터 화면의 구성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데, 그 과정의 일환으로 주변의 자연물을 관찰하고 대상의 형태를 추상화하는 훈련을 한다. 이 시기 그의 회화에는 수련(睡蓮)이 주로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그의 수련은 꽃잎의 화려함이나 연잎의 싱그러운 묘사가 절제되고, 화선지 위로 흐르거나 은은하게 배어든 먹의 흔적만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나는 갈수록 철 지난 들판의 자연에 시선을 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 그 자연이 꼭 쇠락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나간 시간의 궤적을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내 눈에는 보인다 … 나는 신생(新生)의 녹색과 여름의 순결하면서도 화려한 꽃을 다 지워낸 연잎에서 그런 자연을 만난다. 가을 물가에 고개를 꺾고 있는 연잎은 그래서 내게 소멸과 쇠락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를 나타내는 뜨거운 상징이다. 본질만 남은 자연의 구상성을 통해 무한한 추상을 표현해보고자 하는 것이 요즘의 내 작업이다” (작가노트)

작가는 자연물의 외형적 가치보다는 생사, 윤회, 섭리와 같이 자연 현상에 내재된 보다 초월적인 가치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시기 그의 작업은 50여년에 이르는 화업 전반에 걸쳐 그가 명시해 온 주제인 “본질을 응시하려는 영혼의 시선, 관조(觀照)”적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연(蓮)의 이미지는 2000년대에 들어 다시금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관조>(2006)에서 송수련은 장지에 마른 연잎을 붙이고 다시금 그 위에 한지를 포개거나 채색을 한다. 이렇게 구성된 화면은 마치 지층의 지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화석과도 같다. 그러나 재료들은 서로의 흔적을 덮어 없애기보다는 마치 식물과 종이의 섬유질이 얽히고설킨 듯한 효과로 연출되어, 그들 간의 위계를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또한 연잎의 잎맥은 시간이 흘러 종이와의 유착이 심해질수록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공생의 현장은 자연에 대한 송수련의 변함없는 애정과 포용을 보여준다. 꽃이 아닌 주변을 감싸고 있는 잎에 눈길을 주고, ‘시듦’을 “시간의 자취가 남아있는 늙음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우리 주변의 소외된 대상에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미적 가치를 선사한다.

매체와 구성에 대한 실험을 마무리 한 송수련은 1990년대부터 색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색이 지니는 정서적인 측면에 주목하였는데, 그는 앞서 언급한 관조적인 태도로 자연을 바라보며 느꼈던 사적인 감정,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지닌 초월적 가치에 대한 찬탄을 시각적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색’을 선택했다고 한다. 먹색의 수묵화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이 시기 청색, 갈색을 거쳐 다양한 색채를 아우르는 수묵 채색화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인다. <관조>(1991)에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각양각색의 색면은 노을로 물드는 하늘과 땅, 반짝이는 윤슬, 어스름한 땅거미를 환기한다. 작가는 색면들을 겹치고 포개면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화면에 축적해 나간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송수련의 작업에는 구체적인 형상이 등장하기도 한다. <관조>(1993)에서는 이전 작업들과 달리 색면은 단순화되고, 이를 배경으로 오리, 물고기, 연잎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특히 물고기의 비늘과 오리의 날개깃까지 상세히 묘사된 점은 주목할 만하며, 이러한 대상들은 전통적으로 한국화에서 주로 사용했던 소재이다. 그간 추상 작업을 지속해오던 송수련이 이 시기 전통 소재들의 형태를 빌려 구상성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 한국화가 처해있었던 존립의 문제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결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국내 미술계에서는 미술시장의 서양화 선호, 서양미술 중심의 미술 교육과정 개편 등의 이유로 동양화와 한국화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다. 이에 한국화의 ‘한국성’ 및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었고 한국화 작가들은 전통을 계승하거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송수련 역시 ‘전통 계승’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한국화의 기법을 유지하고 전통소재를 다시금 화폭에 끌어들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장지와 순지를 사용하고 수묵과 채색을 다루는 것 모두 집단의 무의식에 살아 숨쉬는 정서를 통해 우리 모두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했다는 작가의 언급처럼 이 시기 그의 작업은 세계화 또는 국제화라는 명목하에 점차 무의미 해져가던 전통성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존재의 가치를 재부여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송수련의 작업은 다시금 변화를 거친다. 그는 1993년 호암미술관의 《분청사기명품전》에서 장인의 섬세한 손길과 인고의 시간이 서려 있는 듯한 분청사기를 보고 본인의 회화를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도공이 염원을 담아 흙을 빚고, 유약을 바르며, 수차례 소성 후 무늬를 그려 넣는 동안의 마음가짐을 되새기면서, 송수련이 새롭게 선택한 조형 언어는 ‘점’이었다. 그는 화면 위에 점을 찍는 과정에서 전통미술의 기법인 백발법(白拔法)과 배채법(背彩法)을 활용한다. 먼저 아교나 달걀 흰자를 개어 만든 투명 물감으로 화면 위에 점을 찍고(백발법), 다음으로 한지의 뒷면을 채색하면서 앞면으로 서서히 색이 배어 나오게 한다(배채법). 백색의 종이 위에 무수히 투명한 점들을 찍어나가고, 원하는 농도의 색이 배어 나올 때까지 수십 번에 걸쳐 뒷면을 칠하는 행위는 도공이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거치는 긴 과정을 환기한다.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송수련의 이러한 작업은 투명한 점, 종이의 뒷면과 같이 시선이 닿지 않는 주변 미물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더 나아가 눈앞의 결과물보다는 이것이 탄생하기까지 거쳐야만 하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던 그의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살펴보았듯이 송수련의 전 화업을 이끌어 온 원동력은 소외된 것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다. 그는 화폭에 끌어들인 대상에게 저마다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가 작업의 소재로 삼은 일상 오브제, 자연물, 신체의 흔적 등은 주류 미술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쉬이 주목받지 못하던 주변적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종래에 이러한 요소들은 작가에 의해 미학/전통적 가치, 수행적 의미를 획득하며 그의 작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현실에 대한 사려 깊은 그의 시선을 좇는 과정에서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엄마라는 ‘일상적 존재’의 한계를 넘기 위해 작업”을 했다는 그의 언급을 떠올려 본다. 송수련 역시 유사한 시기에 활동했던 여타 여성 작가들과 다름없이 당대의 맥락 속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특수한 역할, 경험, 그리고 사회적 위치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남성 중심의’, 혹은 ‘남성적인’ 것들의 대척점에 서기보다는 여성적 포용력으로 중심과 주변부를 모두 품어낸다. 주류에서 배제되어 그 가치를 잃어가는 것들마저 헤아리는 송수련의 작품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 이상으로 위대한 ‘세상을 끌어안는’ 예술의 또 다른 역할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수연(1989~), 이화여대 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1과 학예보조



ㅡㅡㅡㅡㅡ
1)   오세권, 「1970년대 한국화의 오브제 표현에 대한 연구」, 『한국기초조형학연구』, 제15권 3호, 2014, p. 217.

2)   김경연, 「1970년대 한국 동양화 추상 연구」, 『미술사학』, 제32호, 2016, pp. 87-89.




송수련, <관조78-1>, 1978, 한지, 채색, 콜라주, 155x120cm 




송수련, <관조>, 2006, 장지, 채색, 연잎, 한지, 129x97cm




송수련, <관조>, 1991, 한지, 채색, 먹, 193.9x259.1cm




송수련, <관조>, 1993, 장지, 채색, 먹, 75x118cm




송수련, <관조>, 1995, 한지, 먹, 148x91cm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