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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정보원의 ‘조각’: 공간감의 조형화 | 성은정

현대미술포럼





정보원의 ‘조각’: 공간감의 조형화





정보원(1947~)은 여의도 산업은행 조형물(2001), LG 아트센터 조형물(1999), 서울 파이낸스센터 조형물(1998), 국회 개원 50주년 기념 조형물(1996), 88 서울올림픽 성화 도착 기념 조형물(1988) 등 건축적 규모의 공공 조형물을 제작해 온 작가다. 그의 이름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심 속 작가의 조형물은 ‘건축적’, ‘구조적’, ‘남성적’, ‘웅장한’ 등의 수식어를 동반하며 일상의 공간을 점유한다. 은행 앞에 놓인 거대 동전을 연상시키는 형태나 제주도의 전통 가옥에서 대문 역할을 하는 정낭의 개념을 차용한 정보원의 조형물은 기업의 이미지와 그것이 놓인 환경 등을 고려하며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그가 진행해 온 환경 조각 프로젝트는 올림픽 성화 도착 기념 조형물 공모 당선으로 시작된 한국에서의 활동 시기로 비추어 볼 때, 규모나 양에 있어서 눈에 띄는 행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정보원은 공공 조형물뿐만 아니라 일찍이 회화, 조각, 설치, 건축, 음악 등을 아우르는 종합예술가의 면모를 보이며, 예술의 장르뿐 아니라 인류의 모든 관계를 조형적 언어를 통해 전달해 오고 있다. 

정보원은 1965년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해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1973년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한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전무한 그가 파리로 건너가 조각을 다시 배우게 된 계기는 당시 교육 현장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에는 반(半)구상 조각과 용접 기술의 도입으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이 시도되었다. 또한 조각 전공생들로 구성된 다수의 조각 그룹이 출현하면서 전위적인 실험을 모색했고, 국전에서도 조각 부문 최초로 박종배의 <역사의 원>(1965)이 최고상을 거머쥐며 조각의 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형식과 물성을 강조하는 당대의 교육 시스템에서 작품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낀 작가는 파리로 향한다. 

정보원은 1975년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조각가로 활동하기 보다는 파리 국립미술학교 건축학과에 다시 입학한다. 조각에서 건축으로 전공을 변경한 것인데, 이 같은 작가의 행보는 건축가인 아버지의 영향이 무의식적으로 내재된 것으로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작가는 건축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 디자인 등 모든 예술 활동을 통합하고자 했던 바우하우스, 아르데코와 같은 종합예술 개념에 심취해 건축을 실용주의를 넘어선 총체예술 개념으로 주목하게 된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정보원은 볼륨에서 시작하는 조각과는 다르게 빈 공간 자체를 조각적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 작품이 놓이는 장소로서의 공간이라는 전통적 개념에서 나아가 공간을 새롭게 인식한 것인데, <무제>(1979)에서 작가는 반사하는 두 개의 직사각형 강철판 덩어리를 서로 맞닿지 않게 배열하고 그 사이를 열어 놓았다. 두 덩어리는 온전한 형태 위로 또 다른 형태의 강철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이 비침으로써 공간을 사이에 두고 상호 침투하는 모습으로 드러나며, 공간이 두 덩어리를 연결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20세기 초 볼륨과 공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한 작가들이 조각의 내부를 열어 보이는 형태로 공간 개념을 보여주었다면, 정보원은 조형물의 각 볼륨 사이의 빈 공간에서 덩어리들이 서로를 밀고 당기는 긴장감을 만든다고 보고 비어 있는 공간을 새롭게 인식한 것이다. 

<낙수>(1986)에서도 그는 두 개의 철판을 앞뒤로 배열하여 하나는 작은 창문처럼 보이는 사각형의 공간을 열어 보이고, 뒤로는 철판의 중심부를 제거하여 직사각형의 테두리만을 남겨 놓았다. 덩어리와 덩어리가 아닌 형태를 다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연결해 놓은 이 작품에서는 공간 탐구의 특징이 건축적인 개방성과 구조로 발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정보원을 “조각가이자 동시에 건축가”로 소개하고, 그의 작품이 “부단히 건축을 열망하고 있다”며 정보원 작품의 조형적 특징을 건축적 개념의 함의로 설명하였다. 1) 그러나 정보원의 조각은 대상의 재현이나 모델링에서 출발하지도, 어떤 구체적인 기능도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조각이나 실용주의 건축 개념과는 결을 달리하는 독자적인 조형성을 구축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공간의 확장과 축소, 형태적으로 파악되는 수직성과 수평성, 표면의 거칠고 매끄러움 등의 이분법적 관계들을 가시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작가의 언급처럼 “질서와 무질서, 파괴와 건설, 직선과 곡선의 편집광적인 이원적 논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작업에 드러나는 이원적 요소들은 그의 작품에서 대립을 넘어 불가분의 관계로 점철된다. 

나아가 정보원은 건축적 개념을 넘어 다양한 예술 장르의 구조적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일례로 동일한 크기의 프레임 세 개에 면, 곡선, 빈 공간의 요소를 각각 다르게 구성해 놓은 <음악 애호인을 위한 3개의 환타지>는 그가 조형 예술 장르뿐 아니라 음악적 요소를 조각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이전 작업이 덩어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공간감으로 치환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비어 있는 공간을 음악적 요소로 채운 결과물이다. 이는 조형 예술 장르와 음악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한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할 당시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를 보기 위해 수많은 오페라를 관람했고, 그곳에서 음파들이 자유롭게 부유하며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악상을 떠올리는 작곡가처럼 비가시적인 음들을 공간감으로 대치시키며 음악, 조각, 건축의 개념이 상호적으로 관계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정보원은 조각에 질량감을 제거하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시멘트로 제작한 <무제>(1984) 연작에서 작가는 볼륨감을 최대한 제거하여 가느다란 형상을 만들었다. 작품은 거친 표면을 드러내며 아치형의 곡선을 공간에 그려 놓은 것처럼 구성되었는데, 여기에서 보이는 선적인 형태는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후기 인체 조각에 대한 작가의 오마주로도 볼 수 있다. 정보원은 논문 「현대조각에 나타난 인간의 이미지」(1971)를 통해 자코메티의 작품을 일찍이 연구한 바 있다. 또한 공간지에 게재한 글에서 <무제>를 “자코메티의 인체상들처럼 내부의 물량이 제거된 듯한, 가늘고 섬세한 선들로 구성”했다고 서술하며, 자코메티 작품과의 형식적, 내용적인 연결을 시도했다. 2) 질량감이 제거된 선들이 공간을 점유하는 그의 작품은 조각, 건축의 개념을 넘어 회화의 영역으로 나아가며 대상을 둘러싼 공간의 표현에 주목한 것이다. 

한편, <미로>(1989)에서 그는 제거된 질량감과 더불어 조각을 세우거나 쌓는 관례에서 벗어나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점유했다. 20미터의 지면을 일정한 폭으로 얕게 파내어 사각의 납판 6개를 흙바닥 위에 차례로 배열한 <미로>에서는 조각의 볼륨감은 비가시적인 공간으로, 수직성은 수평성으로 대치되고 있다. 평론가 유준상은 “정보원은 공간의 탐구자이며 조각에 대한 시선의 의식구조에 관한 변환에 구조적인 관심을 작품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원을 조각사의 맥락에서 정위하면 구성주의로부터 프라이머리 스트럭처즈에 이르는 경향의 흐름속에 떠오르는 조각가”로 언급하며, 정보원의 작품에서 보이는 건축적인 공간 개념을 다른 조각가들과 구분되는 강점으로 꼽았다.3)  정보원은 작업을 통해 공간을 비어 있는 요소로 인식하기보다는 다양한 예술 장르와의 조형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공간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켰다.

정보원은 1987년 88 서울 올림픽 성화 도착 기념 조형물 지명 공모에 당선되면서 파리에서의 오랜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건축적 규모의 야외 조형물 제작에 몰두하게 된다. 일련의 야외 조각 프로젝트를 통해 그의 작업은 예술 장르간의 관계에서 조형물이 놓인 장소와의 관계로,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환경으로 나아가면서 작업의 규모뿐 아니라 의미까지도 확장되었다. 제주도에 자리한 성화 도착 기념 조형물은 ‘88’을 상징하는 8개의 수직과 사선 기둥, 5대양을 상징하는 5개의 나선형 등의 형태를 통해 동양과 서양, 음과 양, 정반합의 조화, 오대양과 오륜 등 인류문화의 평화와 발전을 기리는 의미를 담아냈다. 더욱이 조형물은 제주도의 지리적, 전통적 특징을 조형적으로 구현해냄으로써 환경과의 관계 안에서 대중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호흡하고 있다. 공간을 벗어나 환경에 작품이 놓일 때 비로소 작품이 움직인다고 했던 그는 작품을 환경적 조건에 맞추기보다는 장소와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작품을 둘러싼 공간까지도 작품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보았던 것이다. 4) 

정보원은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평면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공간감의 표현에 있어서 매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가상의 무한 공간을 평면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는 1985년 끌레르 몽훼랑(Clermont Ferrand) 미술 축제에서 조각의 배경으로 제작한 평면 작품으로 회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제작한 회화 작품으로, 작가는 조각과 회화를 바닥과 벽면에 설치하고 바닥에 놓인 조각 형태가 2차원의 캔버스에 연장되도록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바닥면에서 벽면으로 이어지는 무한한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다. 회화를 제작함에 있어서도 그는 공간감의 표현에 주목한 것이다. 근작인 <무한한 공간>(2019) 시리즈에서 작가는 공간감을 2차원의 평면에 표현하기 위해 강화 알루미늄 판을 이용해 다양한 기하학의 형태를 조합하고 이것들이 열린 공간으로 연장되어 보이도록 구성했다. 그는 2차원의 평면에 우리가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무한한 가상의 공간이 존재한다고 보고 평면을 열어 보임으로써 투명성과 불투명성, 곡선과 직선의 대비를 통해 끝없는 공간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정보원의 작업은 어느 한 영역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그는 볼륨과 볼륨 사이의 긴장감이나 음파, 가상의 공간 등 비가시적인 감각들을 공간감으로 대치시켜 독자적인 형식으로 발전시켜 왔다. 나아가 환경에 위치한 공공 조형물에서는 대중과 장소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작품을 둘러싼 공간과의 조화를 시도하였다. 그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조형적 이념은 그가 탐구해온 공간감의 표현으로 일관되며, 이는 이원적 가치들을 동시에 아우르는 형식으로 구현되어 왔다. 그의 작품에서 대립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상호 보완의 관계를 맺는 것은, 대립의 가치들이 궁극적으로 한 점에서 모인다는 작가의 성찰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정보원이 예술의 장르를 넘어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이어오고 있는 점에서 그가 열어 보인 ‘공간’은 무한대에 가까울 것이다. 




성은정(1983~),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현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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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광수, 「석주상 수상 기념전에 부쳐」, 1992, http://www.sculpture-site.com

2) 정보원, 「확신과 불확신의 반복 속에서」, 『공간』, 9월호, 1984, http://www.sculpture-site.com

3) 유준상, 「정보원에 관한 노트」, 전시도록, 1991, http://www.sculpture-site.com

4) 정보원과의 인터뷰, 2021년 6월 19일, 작가의 작업실.





정보원, <무제>, 1979, 철, 35x15x3cm(2)




정보원, <낙수>, 1986, 청동, 53x34x24.5cm, 국립현대미술관




정보원, <무제>, 1985, 시멘트, 80x80x30cm




정보원, <미로>, 1989, 납판, 가변크기




정보원, <Deconstruction polyphonique p1>, 1985, 캔버스에 유채, 나무, 석탄, 180x180cm(캔버스),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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