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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이명미의 놀이, ‘이것이 그림이 되겠는가?’ | 이주민

현대미술포럼





이명미의 놀이, ‘이것이 그림이 되겠는가?’




이명미(1950∼)의 1985년 개인전 서문에는 “이명미만큼 독특한 작가는 우리 미술계에 드물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어서 “개성적”이고 “누구보다 소중한 작가”라고 그를 일컫는다. 1) 이명미는 대구 출신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당시 홍대는 단색화의 요람으로, 박서보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단색화가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는 그의 20대 중반부터 형형색색의 회화를 발표하였다. 당대 크게 유행했던 미술 흐름의 한가운데 있었음에도 그는 시류를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화풍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며 다양한 재료와 형식을 탐구하게 된다. 이명미는 이 시기 스펀지나 합성수지와 같은 산업적이고 새로운 재료를 중심으로 작업을 시도했다. 그는 비닐 주머니에 물감을 넣고, 기다란 플라스틱 튜브에 물감을 채우기도 하였다. 또한, 스펀지의 표면에 달궈진 연탄집게로 원을 반복적으로 그리거나, 스펀지 위에 돌을 올려 그 무게를 가시화하는 등의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였다. 거듭되는 실험에 그는 작업이 너무 관념적인 것이 되는 것을 우려하게 되었다. 2) 더불어 단색화의 부상으로 전통 미술 이론들이 소환되면서, 그림은 고매한 정신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만 이해되었다. 이명미는 그리기의 원점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1976년부터 제목으로 등장하는 ‘놀이’는 이명미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여기서 놀이는 ‘유희’이며 동시에 ‘게임’이다. 그는 극기나 연마, 자기 성찰의 결과로서의 작업이 아닌, 자신이 주도하는 즐거운 놀이로서의 그리기를 원했다. 이후 작가가 평생을 탐구하는 그리기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이때 발아한다. 작가는 수성 안료를 칠한 후 특정 형상을 그리고 닦아내는 것을 반복하였다. 점과 원, 세모, 체크와 같은 단순한 형태가 그것인데, 이는 곧 꽃, 별 그리고 숫자와 같은 쉽고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 기본 단위를 반복하는 것은 단색화와 공유하는 형식이지만, 이명미의 반복은 단색화와 달리 매우 유희적이다. 그의 과감하고 다양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은 동양적인 정신성을 지향하는 단색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편 작가는 화면에 숫자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숫자의 사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읽어볼 수 있는데, 첫째로는 숫자의 역할이다. 숫자는 추상적인 수를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매개체이다. 여기서 쉽다는 것은 미취학 아동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기초적인 수준을 말한다. 작가는 그의 그림에서 추상적 개념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하였고, 이는 마치 난해한 추상미술에 대한 농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작가가 숫자를 끼적이는 것은 그가 단순한 형상을 반복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숫자는 기본적으로 아무 뜻이 없기 때문에 숫자의 사용은 이론이나 의미를 지양하고자 하는 그의 작업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후 숫자는 그의 작업에서 꾸준히 등장한다.

놀이 작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확장되었다. 1970년대 후반, 작가는 사각을 기본으로 하여 화면 안을 나누고, 그 안에서 점, 선, 꽃, 별과 같은 단순한 단위를 반복적으로 그리거나 지우는 방법으로 작업을 하였다. 또한 분할된 화면을 나란하거나 서로 겹쳐진 것처럼 그려놓았다. 이를 통해 작업은 완벽한 평면으로 보이기도 하고, 미세하고 얕은 깊이를 보여주거나 형상이 부유하는 무중력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 부분은 특정 주제를 향하기보다는 균질하고 동등하게 배치되었다. 한편 분할된 면을 들여다보면 정확한 사각형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사각형 같지만 미세하게 왜곡된 것에서부터 사선이나 곡선을 과감하게 사용하면서 작가는 특유의 장난기를 드러낸다. 

1980년에 들어서며 화면의 분할은 점점 느슨해진다. 각 부분의 색채가 서로 침투하고 구성이 자유로워지며 하나의 화면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놀이-별그리기>(1984)는 별을 그린 작업이면서 동시에 무수히 많은 붓질이 반복된 화면으로 보인다. 또한 <놀이-사물그리기>(1985)는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정물이 등장하지만, 온 화면을 뒤덮는 빠르고 과감한 붓질이 더욱 부각된다. 한편 작가는 우산, 컵 화분이나 물병과 같은 평범한 정물과 사람이나 동물 같은 익숙한 소재를 단순한 드로잉을 통해 구현하기 시작한다. 작업 초기에 등장했던 점이나 도형이 작가 주변의 일상적인 이미지로 변화한 것이며, 이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명미는 다양한 재료와 표현 방법에 관한 실험을 지속하였는데, 1980년대에 이르면 천에 염색과 바느질을 하고 단추를 달거나, 천 위에 또 다른 천을 덧대는 작업을 시도한다. 1985년 족자 그림과 같이 세로로 긴 형식의 작업이 그 예다. 그는 단순한 이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하며, 이를 통해 화면의 이미지와 함께 그 형식을 보도록 관람자를 유도한다. 한편 천 작업의 테두리를 보면 마감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곡된 화면의 테두리는 시각적으로 엉뚱한 재미를 더하고, 진지하거나 완벽하게 보이는 작품에 대하여 농담을 던진다. 그의 자유롭고 유연한 작업 테두리는 이후 삼각형이나 원형 또는 사람 얼굴형의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나, 드로잉이 된 종이의 한 변을 곡선으로 잘라낸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명미의 작업에서 텍스트의 사용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작업 초기부터 숫자를 작업에 포함했으며, 1984년부터 이미지와 함께 텍스트를 사용하였다. 실험미술이나 개념미술에서 종종 사용되었던 텍스트는 이미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방법은 아니었다. 그의 작업에서 텍스트는 마그리트(René Magritte)처럼 이미지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개념미술에서의 단순 기록이나 도큐먼트적인 성격도 아니다. 이미지를 다루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그는 진지한 뜻을 갖는 텍스트를 지양하였다. <놀이-모자그리기>(1984)에서 이러한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는 크라운이 높은 신사용 모자를 그리고 그 주변으로 몇몇 단어를 써넣었다. 이는 머리카락(Hair)이나 망치(Hammer) 등의 단어로, 에이치(H)로 시작하는 점을 제외하면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어들이다. 또한 그의 화면에서 텍스트는 이미지를 대신하기도 한다. 작가는 동물이나 사람의 눈을 그리는 대신에 ‘눈’이나 ‘E’를 쓰고, 귀와 손의 위치에 ‘귀’와 ‘손’이라고 써넣었다. 이때 텍스트의 등장으로 인해 작업의 이미지는 완결되지 않으며, 작가는 완벽한 결과로서의 작업에 농담과 물음을 던진다.

이명미는 1995년을 전후하여 종종 흑백으로 작업하기도 하였다. 작가는 화면의 구성을 단순하게 하고, 배경의 표현을 절제하여 이미지와 텍스트에 집중도를 높였다. 배경은 발묵(潑墨)과 같이 은근한 붓의 움직임처럼 표현되었고, 그 위로 단순한 형태의 네발짐승이나 사물 등이 등장한다. 그림자처럼 보이는 이미지 주위로 “MIDNIGHT COWBOY(한밤중의 카우보이)”, “RaBBIT, RUN(토끼야, 달려)”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역시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 텍스트가 아니며, 이미지와 서로 화답하며 블랙 유머와 같은 인상을 풍긴다. 이때 대문자인 텍스트는 손글씨가 아니라 활자체로 등장한다. 이는 마치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감정을 배제하고 또박또박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장난스러운 내용과는 상반되도록 형식에 객관적이고 공적인 태도를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작가는 내용과 형식의 간극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거나, 균형을 이루게 하며 화면에 긴장감을 준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면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작업이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가 작은 면봉을 이용해서 반복적으로 점을 찍은 것이다. 화면 위, 흐르는 듯한 색면과 모래알 같은 점은 이전의 힘 있는 붓질과 대비되어 작가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후 점은 그의 작업에서 계속 등장한다. 2010년 이후에는 전면을 다양한 색점으로 채우기도 하고, 점은 작은 별로 변화하여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작가는 장난감 스티커를 점처럼 붙여서 텍스트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세밀한 회화적 언어는 이명미 특유의 힘 있는 붓질과 장난스러운 제스쳐와 대비되고 어우러지며 또 다른 결을 만든다. 

한편 텍스트는 더욱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특정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화면 전면에 드로잉을 하듯 끼적이고, 문학작품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만화처럼 말풍선 속에 넣기도 한다. 이는 특히 네발짐승의 입을 빌려 등장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2010년 중반을 전후하여 텍스트는 더욱 이미지화되기도 하는데, 화려한 색채 속에 텍스트를 은근히 표현하기도 하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혼합하기도 한다. 가령 이응(ㅇ)을 쓰며 꽃을 그려 넣는 식이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대중문화나 고전 또는 성경 등의 널리 알려진 것에서 따왔고 심지어 욕설도 있다. 그는 발췌한 텍스트를 원래의 문맥에서 분리한 후 화면에서 이미지로 보이게 하고, 동시에 텍스트로 읽히도록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며 텍스트는 원본의 절절한 사랑이나 그리움 등의 정서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이명미는 놀이로서 작업을 이어오며 다양한 매체를 실험해왔다. 그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시작으로 천에 염색을 하거나 바느질을 하였고, 단추를 달았다. 이후 아크릴 물감과 함께 연필, 오일스틱, 콩테 등을 사용하였다. 천에 그림을 그리고 잘라서 다른 화면에 덧붙이거나, 실크 스크린과 석판화 작업을 하였다. 화면에 장난감 스티커를 붙이기도 하는가 하면, 손바닥만 한 그림을 그리고 4m가 넘는 설치 작업도 하였다. 최근에는 작은 나무 조각을 색칠하여 마치 보드게임처럼 설치하거나, 그릇 안에서 말라버린 물감의 얇은 레이어를 떼어내서 오브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5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작업을 해왔지만 작가는 끊임없이 놀이의 영역을 확장하는 듯 보인다.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우리나라의 단색화가 구분되는 지점을 산업적인 단순 반복과 수행적 반복으로 본다면, 이명미의 반복은 ‘놀이’로서 앞의 둘과는 또 다른 차원에 있다. 그는 미니멀리즘과 단색화 작가들이 방점을 찍었던 ‘그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보다는, ‘과연 이것이 그림이 될 것인가?’라는 엉뚱하고 번뜩이는 조건을 가지고 놀이를 한다. 이 둘은 결국 회화의 본질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것이지만 그 태도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관념적 차원의 행위가 선행된다면 후자는 그리는 행위가 언제나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명미가 추구하는 재미는 기실 재미로만 끝나지 않는다. 작업을 대하는 그의 즐거운 태도와 유머러스하고 엉뚱한 작업은 근엄한 주류 회화에 농담을 던진다. 즉, 그의 작업은 일종의 비평적 회화인 것이다. 더불어 일필휘지하는 듯한 붓질과 화려한 색감은 보는 이의 감각을 일깨운다. 이러한 이유로 이명미는 이미 1980년대부터 하나뿐인, 독특하고 소중한 작가로 불려온 것이다.


이주민(1983∼),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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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뭏든 이명미 만큼 독특한 작가는 우리 미술계에 드물 것이다. 개성적인 작가라는 말인데 ...... 그녀는 우리 미술계에서 누구보다 소중한 작가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황현욱, 「즐거움을 프레젠트하는 아티스트」, 《놀이》 개인전 리플릿, 수화랑, 1985.

2) 이명미와의 인터뷰, 2021년 2월 16일, 작가의 작업실.





이명미, <놀이>, 1976, 캔버스에 수채, 33×33cm(15)




이명미, <놀이-모자그리기>, 1984,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이명미, <놀이-사물그리기>, 1985, 캔버스에 유채, 194×x260cm




이명미, <Rabbit run>, 1997, 캔버스에 아크릴, 97×145.5cm




이명미, <말탄여자>, 2001, 캔버스에 아크릴, 천, 단추, 181.8×x22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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