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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광야에서 꽃핀 내면의 기품과 예술혼, 조문자 | 이지언

현대미술포럼





광야에서 꽃핀 내면의 기품과 예술혼





조문자(1940∼)의 예술세계는 환기미술관에서 최근 열린 전시 《수화가 만난 사람들, 조문자: 광야에서》(2020)에서 집약적으로 발견된다. 이 전시는 작품뿐만이 아니라 예술가와 스승의 관계, 예술가와 신앙의 관계라는 삼자관계를 균형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술이 인간의 총체적 삶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목도하게 한다. 

조문자가 미술학도로 학업을 시작한 1960년대는 1950년대 이후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조금씩 벗어나던 근대화 시기의 사회적 변혁기였으며 남녀를 불문하고 대학에 가는 것이 힘든 시기였다. 더욱이 여성이 대학을 가고, 또한 미술을 전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시기였다. 1963년에 전시된 미술 전시인 <7월회>에서 화가로서 공식적인 데뷔를 한 조문자의 작품세계는 실험적 회화작업으로 이어지며 1977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추상의 길을 걷게 된다.   


추상의 여정
조문자의 추상회화는 미술사적으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앵포르멜 미술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에서 1950년 사이 미국에서 활발히 일어났던 미술운동으로 자동기술법이나 무의식을 통해서 형상을 초월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한편 비정형이란 의미를 가진 앵포르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아카데미와 특히 기하학적 추상에 반기를 들고 유럽에서 나타난 예술사조이며 주관적이고 자발적인 표현을 중심으로 하여 서정추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앵포르멜은 추상표현주의가 추구하는 표현의 제스처 보다는 마티에르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조문자의 최근 작품에서 미술사적 맥락을 이 사조에 연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1977년 개인전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조문자의 작품은 추상표현주의의 정신이 돋보인다. 즉, 색과 면의 주관적이고 자발적인 구성을 추구하면서 화면의 질감에 대한 조형 실험이 <광야에서>(1989) 시리즈로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사용했던 유화에서 볼 수 있는 필력과 그 속도감 및 흘리기 기법은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분방한 행위를 감지하게 한다. 1990년대 이후 조문자의 추상은 전환을 맞이하는데, 유화에서 아크릴 물감의 사용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아크릴 물감은 일종의 액체화된 비닐이지만 바인더에 따라 다양한 표현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유화보다 빨리 건조되는 속성 때문에 작가들이 직관적으로 작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조문자의 이 시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아크릴 물감과 바인더의 다양한 조합에서 나올 수 있는 장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접목>(1997)에서 볼 수 있는 추상의 변화는 드로잉적 요소의 가미와 기호적인 표시들 및 원색의 사용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조문자의 회화작업은 순수한 추상에 대한 추구로 집약되어 있다.


수화(樹話)의 추상정신과 내면적 기품인 멋의 스며듦
필자가 조문자의 작품을 최근 환기미술관의 전시로부터 시작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신앙, 예술, 스승이라는 이 세 지점이 어떻게 예술작품의 예술혼을 발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이어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2010년 이후 최근 10여년 간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새로운 추상양식과 신선한 감각을 볼 수 있는 드로잉 작품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조문자의 추상회화의 여정이 어떤 맥락에서 성숙해 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필자는 추상정신의 원천을 대학에서의 학업과 신앙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1913∼1974)와 1960년대 홍익대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조문자는 평생 스승의 예술혼과 열정을 마음에 간직하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화풍뿐만 아니라 정신세계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지대하다. 조문자는 스승 김환기를 통해 추상의 정신을 배웠고, 이 추상의 정신은 내면으로 향하는 회화적 힘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원에 대한 소망을 투영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예술과 삶의 좌표가 되었던 스승의 언급 중 예술가라면 ‘멋’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후 조문자는 이것이 훗날 ‘내면의 기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이 내면의 기품은 결코 쉽게 형성될 수 없으며 광야와 같은 인생의 척박한 환경에서 꽃피는 꽃과 같은 존재이다. 이는 “…평생을 통해 ‘예술가의 도전은 끝없는 험지로의 길’이라는 선택으로 제자들을 자극해 오셨던 선생님을 그리워하면서 아직도 선생님으로부터의 가르침은 끝나지 않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라는 작가의 언급에서 명백히 알 수 있다. 이렇듯 조형적 ‘멋’이라고 볼 수 있는 추상작품의 영향은 조문자 작품에 있어 중요한 형식적 요소이다. 하지만 스승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정신적 힘이 되어 작가로서 버틸 힘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더 중요한 것이었다. 

조문자의 졸업 해인 1963년 김환기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화가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추상표현주의가 세계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부상하면서 김환기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며 그의 이러한 궤적은 조문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추상이란 구체적 형상을 보여주기보다 색과 형태라는 조형적 요소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 심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조문자의 작품세계에서 볼 수 있는 완전한 추상은 작가 내면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추상미술의 선구자라고 기록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자신의 저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2)에서 정신과 예술의 색과 형태에 대한 관계를 ‘정신적 삼각형’이라고 명명한다. 그의 예술론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예술이 ‘어떻게’라는 방법이 아닌 ‘무엇’이라는 내면에 있다는 점이다. 칸딘스키는 이 ‘무엇’이 신비로운 방식으로 예술가로부터 나오며 이로부터 비로소 참된 예술작품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칸딘스키의 추상에 대한 태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추상 화가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신적인 것을 현현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광야에서 그리다
그렇다면 조문자가 추구하는 예술작품에서 정신적인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질문은 ‘광야’라는 단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야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존적인 장소이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듯이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와 유대인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무것도 없이 자유를 찾아 광야로 나아간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은 우리 인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광야는 성숙의 시간이자 연단과 구원을 기다리는 소중하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광야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존적인 장소인 것이다. 조문자에게 광야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기술된다. 

“너와 나만의 대결, 본래의 생김새를 본성으로 드러내 본다. 죽음의 땅 광야는 내가 죽고 또 다른 내가 태어나는 죽음과 생명의 다시 태어남을 보여주는 윤회를 깨닫게 한다. 무모함과 불운이 넘쳐나는 땅, 죽음이 함께하는 곳, 오로지 하늘에 의지하는 태양만이 하늘의 뜻에 신의 뜻에 의하여만 생사가 결정되는 곳” 

《수화가 만난 사람들, 조문자: 광야에서》 전시도록 중 조문자 글 p. 19.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술가로 살아남는다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조문자의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광야를 묵상하고 추상적 요소와 끊임없이 씨름하면서 점점 내면으로 도약하는 과정은 캔버스 위의 추상회화가 된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내면에 가장 중요한 것을 그려낸다. 그러한 의미에서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마치 내면에 넘치는 마음의 물감이 화폭에 던져진 것과 같다. 


조문자의 추상회화_광야에서의 외침
조문자의 회화에서 ‘광야’라는 주제를 사용하여 작업한 것은 1989년 작품 <광야에서>(1989)를 필두로 돌가루를 화면에 사용하여 광야를 실제로 체험하는 듯한 질감을 구사한 2000년 이후 <광야에서>(2019)를 주목해 볼 수 있다. 1989년 작품에서는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분방한 유화 붓자국이 시원하게 발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광야의 밤과 낮, 바람과 모래 등을 연상할 수 있다. 2019년 작품에서는 출애굽기 13장과 16장에서 볼 수 있는 광야에서의 삶,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양식인 만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밤낮으로 보호하는 불기둥, 구름기둥을 연상하게 한다. 돌가루를 바인더와 섞어서 캔버스에 나이프와 붓으로 밀착시키는 과정은 광야에서 날들을 이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조문자의 그림에서 제목은 그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 중요한 키워드이자 관람자들을 위한 소중한 길잡이가 된다. 광야라는 주제가 어떻게 캔버스에 담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작가의 고백은 다음과 같다.

“그곳은 떠날 수 없는 나의 길이 되었다. 나는 왜 그곳에 찾아들어 끝없이 맴도는 걸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깊은 깨달음과 감탄과 경이로움이 존재하는 사멸의 땅. 그러나 죽음과 다시 태어나는 생명의 시작을 본다. 인간에게 굴복한 적이 없는 광대한 불모지가 흰 천 위에 살아서 숨쉬고 있다”

《수화가 만난 사람들, 조문자: 광야에서》 전시도록 중 조문자 글 p. 61.
 
이렇듯 광야는 조문자에게 신앙의 원천이자 스승으로부터 이어진 예술혼이 내면으로 승화된 곳으로 실제적 장소이다. 또한 광야는 “주께서는 너를 겸손하게 하시고 너를 배고프게 하셨으며 너도 모르고 네 조상도 모르는 만나로 너를 먹이셨으니, 이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KJB, 신명기 8장3절) 라는 성경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광야에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살아가게 하신 이유를 알 수 있는 장소이다. 

현대미술에서 등장하는 성경적 내용은 유서 깊고 중요한 미술사적 사실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으로 현대문화와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관해 기술한 한스 로크마커(Hans R. Rookmaaker)는 『현대예술과 문화의 죽음』(1970)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질문한다. “신을 버리고 이성으로 출발한 현대미술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현대 예술작품 속에 담겨 있는 정신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예술가들은 현대문화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점과 시대적 상황에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끊임없이 재적용하면서, 오늘에 필요한 진리와 미를 모색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를 가슴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조문자의 회화 전반에 걸쳐 고뇌했던 부분이 바로 이 맥락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회화정신의 원동력이 신앙적 성찰을 통해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과 연합하여 작가의 작품으로 탄생 되었으며, 앞서 언급한 칸딘스키의 ‘정신적 삼각형’을 잘 구현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캔버스에서 펼쳐지는 물감과 돌가루의 자유로운 조형적 구성은 광야에서 꽃핀 내면의 기품과 예술혼을 현시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화가이자 여성으로서 추상에 대한 탐구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필자도 작품을 제작할 당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지금도 그것에 대해 숙고하기에 조문자의 회화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지게 되었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KJB, 로마서 10장 9절)라는 성경 말씀으로 확인되듯이 구약의 정신이 신약으로 계승되어 광야를 통과한 인간들과 현재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삶을 압축해서 추상회화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조문자의 예술세계를 의미 있게 하는 지점이다.

 

이지언(1971∼), 이화여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 현재 조선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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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자, <광야에서>, 1989, 캔버스에 유화, 260×193cm




조문자, <접목>, 1997, 캔버스에 아크릴릭, 140×140cm




졸업식에서 김환기와 조문자, 1963




조문자, <광야에서>,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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