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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한애규의 ‘흙으로 빚은 삶에 대한 열망’ | 김의연

현대미술포럼





한애규의 ‘흙으로 빚은 삶에 대한 열망’






일반적으로 한애규(1953∼)의 작품이라고 하면 테라코타로 만든 둥그런 여성상 혹은 가슴과 배가 볼록한 임신한 여인상 등 모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한애규는 알려진 것처럼 여성의 본질적인 특성을 강조한 여성주의 성향의 작가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성이자 인간으로 마주한 삶에서 얻은 심상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낸 작가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작가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태어나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하며,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야 하고, 그들과의 삶 속에서 웃고 울며 지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작품들은 내가 매일을 살아가며 느끼는 사고의 조각들을 표현하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한애규의 이러한 말처럼 그는 삶 속에서 마음에 와닿는 것, 끌리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들을 작품으로 담아내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들은 삶을 따라 풍성해졌고 생의 전환점을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의 작품세계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라는 통시적인 축과 하루하루 직면하는 개인의 삶이라는 공시적인 축을 따라 이루어졌다. 두 축이 만나는 어느 지점에서 그의 작업이 탄생하는데 그것을 통해 그의 삶의 좌표를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에 진학한 후 조소과를 지나다 흙을 사용하는 작업에 매료되어 도예를 전공하게 되었다. 동대학원을 마친 후 도불하여 앙굴렘(Angouléme)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프랑스에서 다양한 삶의 현장을 경험하고 1987년에 귀국한 그는 두 아이를 키우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부엌 옆에 딸린 조그만 작업실을 마련했다. 테라코타 기법에서 작업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기존의 도예기법에서 벗어났다. 흙으로 만든 형태에 유약을 입히지 않고 약 1000도에서 구워내는 테라코타 기법은 흙의 색감과 질감을 잘 살리면서 대지의 근원적인 힘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고대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BC 3000∼BC 1500)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BC 5000∼BC 3000)과 진시황릉 병마용(BC 200년)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초창기부터 테라코타가 사용되었음을 인식하고 그 기법으로 작업한 무명의 장인들과 동질감을 느꼈다. 

1980년대 후반에 제작된 그의 초기작들은 한국 사회와 가정에서 강요하는 여성의 역할과 예술가로서의 그의 자아가 충돌하여 일어난 갈등을 다룬 것들이 주를 이룬다. 그림마당 민(1987)과 온다라 미술관(1989)에서 개최한 개인전에서는 집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등장했다. 프라이팬과 부엌칼을 들고 살림살이를 날리는 여성을 형상화한 <부엌>(1987)과 공중에 던져진 무와 배추들을 배경으로 홀로 김치를 담는 여성을 표현한 <김치담기>(1989), 남자들과 겸상을 하지 못하고 따로 식사를 하는 부인과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저녁식사>(1990)와 큰 주전자에서 불화를 암시하는 연기가 치솟아 구름을 이루는 집을 묘사한 <가정환상곡>(1990), 그리고 가사에 지친 여성이 집 안의 장롱 속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장롱 속의 여인>(1989) 등 작가의 삶을 투영한 이 작품들은 주부로서 겪는 ‘일상과 현실의 강한 속박 속에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작업의 산물이었다. 

그는 남녀의 불평등한 성역할에 따른 현실에 좌절하기 보다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로 결심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부엌일, 너절하게 늘어놓은 부엌에서 모든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기왕에 주어진 일 오늘 만큼은 신바람 나게 한바탕 해치우자. 일이 끝난 뒤의 상큼함을 느끼는 것은 일한 자만이 아는 즐거움인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은 그는 <즐거운 우리집-대청소>(1993)와 <즐거운 우리집-신바람>(1993)과 같이 신나게 가사노동을 하고 <집을 점령한 여인>(1993)의 주인공처럼 승리의 깃발을 꽂고 가정을 장악했다.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쾌활한 성격의 작가는 심각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도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았다. 그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폭력을 다룬 작품에 <즐거운 나의 집-불화>(1993)라는 반어적인 제목을 달았다. 참담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미니어처와 같이 작은 집의 지붕을 뚫고 솟은 거대한 주먹과, 다이빙 자세로 뛰쳐나오는 인형 같은 여성을 형상화함으로써 다소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이 가정 내의 성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일련의 작품들로 인해 그는 『여성신문』 등의 언론에 페미니스트 작가로 소개되었으나, 당대 민중미술 계열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과는 다른 지점을 보인다. 민미협에서 주관한 그림마당 민에서 여성 작가들과 함께 전시했던 그는 ‘여성의 힘’에 대해 고민했다. 성차별에 분노하여 “두 발 땅에 꽉 붙이고 당당한 몸짓으로 세상에 나서서, 모든 권위주의적인 것에 맞서야 겠다”고 결심한 그였지만 “남성들이 가진 것들을 쟁취하고자”하는 여성 활동가들에게 이질감을 느꼈다. 그는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더 강력한 존재가 되는 꿈을 꾸었다. 즉, “남성들의 권력을 나눠 갖는 여성해방이 아니라 고대 모계사회에 존재했던 잃어버린 여성의 권력을 찾으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성차별의 시작이 모계사회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구석기 시대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뿐 아니라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문화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대지의 어머니 여신상들에 주목했다. 땅의 풍요와 생명력을 나타내는 여신상들은 가슴과 배를 강조한 임신한 여인의 모습을 띤다. 1993년에 제작한 <지모신>은 역사적으로는 이와 같은 고대의 지모신을 소환한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듬직한 체구에 볼록한 배와 가슴과, 곡식 이삭과 꽃을 쥔 큼직한 손과, 육중한 몸을 받치는 커다란 발을 가진 이 <지모신>의 외양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바람맞이>(1993), <여인입상>(1993), <관능>(1993)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새 생명을 잉태한 여성의 힘을 강조한 작업은 2000년도의 <생산> 연작으로 이어졌다. <생산-알을 안고 앉아있는 여인>(2000)은 어머니와 자식을 주제로 한 점에서 일반적인 모자상들과 공통점을 갖지만 형태상으로는 그것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남아를 안고 있는 모자상이 아기에 대한 자애로운 모성을 강조한 것이라면, 한애규의 여인상은 구체적 형상의 아기가 아닌 ‘알’이라는 둥근 물체를 통해 근원적인 생명을 창조하는 일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편 거대한 둥근 산을 연상시키는 몸의 형태와 그것을 이루는 울퉁불퉁한 흙의 질감은 여인의 몸이 대지와 연결됨을 나타낸다. 

여성의 몸을 대지와 연결시킨 작품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만물의 근원인 대지와 같이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기르는 것을 여성의 원초적인 힘으로 여긴 작가는 육중하고 거대한 산을 닮은 여인상인 <달리는 산>(1992)과 <앉아 있는 산>(1992)을 제작했다.

이처럼 자연을 닮은 여성의 형상에 몰입했던 그는 2001년을 기점으로 보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작업으로 전환했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연이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방랑하듯 떠난 여행에서 만난 고대 문명의 폐허는 삶과 죽음, 문명의 탄생과 소멸을 생각하게 했다. 세월에 닳아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석상 형태의 <침묵>(2005), 건축물의 기둥을 닮은 <여인입상>(2009), 시신을 담는 관으로 사용된 항아리 모양의 <옹관>(2010)들은 인적 없는 폐허에서 만난 깨어진 기둥들과 돌덩어리가 주는 감동을 작품으로 옮긴 것이다. 작가는 고대 문명이 번영했을 때 세워진 건축물들이 문명이 쇠퇴하면서 쓰러져 폐허로 변하듯이, 삶도 죽음도 그와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작품에 담았다. 수직과 수평 형태의 작품을 통해 세움과 쓰러짐, 삶과 죽음을 말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이 폐허에 남겨진 돌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겼듯이, 사람들이 작품에 앉을 수 있기를 원했다. 그의 작품이 고대의 영웅상과 같이 숭배 받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앉아보고 만져볼 수 있는 것이 되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그의 바람은 대지를 닮은 여성상들에도 적용되었다. 화강암 혹은 사암의 색과 질감을 닮거나 바람에 풍화된 듯한 표면을 갖는 여성상들은 누구나 만져볼 볼 수 있다. <앉아 있는 여인들>(2000)의 경우 1인용 소파와 같은 형태 혹은 벤치의 모양으로 제작되어 관람자들이 작품에 앉아 대지의 품에 안긴 듯한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애규의 작품이 지닌 이러한 따뜻함은 보는 이에게 치유와 회복의 힘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그것이 “흙이 가진 힘”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물론 대지의 일부인 흙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작품의 힘 즉, ‘흙으로 빚어낸 그의 삶에 대한 열망’이 주는 힘이 아닐까? ‘삶에 대한 열망’을 꽃으로 표현한 그는 “삶이 지속되는 한 이 꽃을 놓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이 꽃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바람맞이>의 여인처럼 삶에 불어 닥친 바람에 당당하게 맞서며, <앉아 있는 여인들>과 같이 그것을 포용하면서 생을 살아가고자 했다. 이처럼 삶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작품들은 보는 이에게 힘을 주고 위로를 건넨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들은 작가의 생을 반영하는 자전적인 특성을 띠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울림을 주는 것이다.   



 


김의연(1972∼),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수료,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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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규, <즐거운 나의 집-불화>, 1993, 테라코타, 48×36×32cm, 사진: 헥사곤 출판사 제공




한애규, <지모신>, 1993, 테라코타, 74×36×81cm, 사진: 헥사곤 출판사 제공  




한애규, <생산-앉아 있는 여인>, 2000, 테라코타, 82×44×58cm, 사진: 헥사곤 출판사 제공  




한애규, <침묵>, 2005, 테라코타, 56×53×35cm, 사진: 헥사곤 출판사 제공  




한애규, <옹관I>, 2010, 테라코타, 설치장면, 사진: 헥사곤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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