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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 신명의 굿짓 / 아트인컬쳐

김종길



신명의 굿짓

- 휭, 추-푸 : 홍이현숙 개인전 




개기일식의 빛 아우라인 코로나. 그 ‘다시 개벽’의 우주적 현상이 하필이면 바이러스로 창궐해서 비극적 일상을 불렀다. 사람들은 비말을 차단하려 입을 틀어막았고, 다섯 명 이상은 모일 수도 없다. 도대체 숨을 쉴 수가 없다.


인간이 초래한 이 ‘중세기적 전염병 현상’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개벽의 핵심은 인간이 스스로 쉼 없이 지우고 죽이고 눌러왔던 자연본능의 야성(野性)을 되살리는 일이다. 야생의 감각을 활짝 틔우고 열어야 한다.


이제 지구생명의 온갖 것들과 교감하고 감응하지 않으면 더 나아갈 수 없다. 우주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듯이 신도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신조차도 죽였다 살렸다하는 인간의 오만과 자만을 싹둑 잘라내야 한다.


<휭, 추-푸>는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순수하고 신성한, 그러나 완전히 잊었던 ‘이스와라(Iswara)’를 깨닫게 해준다. 이스와라는 자연 그대로의 빛나는 존재이며 존재의식으로서의 신이다. 그 신성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에 불씨처럼 깃들어 있다.


홍이현숙은 무의식의 저 아래 드넓게 펼쳐진 이스와라의 바다를 현실로 불러냈다. 그 바다 속 심연을 헤엄치는 고래 목소리를 찾아냈다. 그 성스러운 소리로, 그 예지적 언어로 인간의 ‘몸각’을 들깨운다. 쇠가죽보다 더 질긴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벗긴다.




살림미학의 여성성



탄다. 날 선 작두를 타듯 호랑이를 타고 지붕을 타고 하늘을 탄다. 그녀는 오늘도 여명의 눈빛으로 새벽별과 마주하면서 여전히 왕복달리기로 줄타기를 했을까? 금성과 지구 사이.


땅을 접어 걷는 축지법으로 달리고, 날갯죽지 깃털을 길러 훌훌 나는 비행술로 경계의 능선을 타는 지혜로운 전사! 한 늙은 여자의 허튼 명상이 불씨를 피워 올려 종잡을 수 없는 현대미술의 껍질을 태운다. 맑고 투명한 미학의 속알이 터진다!


무술생(戊戌生/1958), 서릿발 같은 임수(壬水) 기운을 타고난 여자. “이 여자는 목마르다. 물은 차고 깊으나 땅은 넓어 서둘러 물을 길어도 돌볼 것이 많고, 나무는 땅과 물이 좁다하며 가지를 내지 않고 위로 뻗는다. 갈증은 그의 힘이다.” 이수영이 점을 쳐 살핀 그 여자, 홍이현숙.


그녀는 미술의 개념을 근대 이전의 ‘미(美)’와 ‘술(術)’로 해체한 뒤, 미의 오래된 첫 뿌리 말뜻 ‘큰 사슴뿔 샤먼(羊+大)’의 관을 쓰고 술수를 부렸다. 여기의 삶을 타고 올라가는, 감아 돌고 돌아 올라가는 휘모리의 몸짓(춤) 말짓(노래) 굿짓을 펼쳤다. 뒤흔들었다. 용오름으로 하늘땅을 이어서 휘말리는 삶의 그림자 그늘을 벌거숭이로 벗겨냈다.


꽃무늬 푸른 원피스 하나 달랑 입고 그늘 진 자리마다 출몰해서 짱짱하게 틀어 쥔 권력을 비꼬고, 관습에 바람구멍을 내며, 억압을 조롱했다. 꽉 막힌 현실을 뚫고 열어서 시원하게 숨을 턱 틔웠다. 휭 솟구쳐 올라 숨비소리로 크게 추-푸!


술수 부린 자리마다 꽃무늬에서 흩어진 꽃잎이 휘날렸다. 여성성의 깨가 와르르 쏟아졌다. 신자유주의 자본의 바깥이 환했다. 도시 문명의 빈틈이 벌어졌고, 상처에 새 살이 돋듯 인류가 상실한 신화의 비늘이 현실에 돋았다. 불현 듯 그 자리마다 랄랄라 봄이 오고, 시시콜콜한 일상이 환영처럼 비추이다가, 노오란 비닐장판이 돌돌 말리면서 현실의 이면(裏面)이 아로 새겨졌다. 그녀가 써내려온 ‘미술하기’의 역사는 그렇게 겹겹이 아릿한 속살이었다.


예수가 너른 들에서 ‘참’으로 솟나 돌아오고 부처가 보리수 밑에서 ‘참’이 된 것처럼, 지금 여기에 광야의 바람을 부르고 깊은 바다를 쏟아내며 사자로 돌변하는 야생의 이적(異蹟)을 내렸다. 허울 좋은 거짓 문명의 혈 자리에 침과 뜸을 놓듯 신도시 유토피아 판타지에 본래적이고 생래적인 살림미학의 여성성을 꽂았다. 오래 오래 궁리한 것들이 뿌리 내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이름에는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이 있고, 세상의 바깥을 휘몰고 돌아오는 호랑이 탄 마고(麻姑) 할매가 있으며, 익힌 것을 날 것으로 되돌리는 신령한 굿짓이 있다. 굿짓, 어쩌면 그 짓의 천둥번개 술수가 이 땅에서 짓고 일으키는 ‘홍이현숙 쑈’의 실체일 것이다. 




촉수를 틔우는 고래혁명  


천둥이 치고 번개가 쏟아지는 땅이 혁명의 땅일 터! 새로 열리는 새 세상의 개벽일 터! 그 다시 개벽의 새 사람으로 솟나기 위해 그가 들어앉은 곳이 스스로 고래고래 울리고 외치고 탈바꿈의 재주넘기를 감행하는 비밀의 아지트, 곧 <여덟 마리 등대>가 있는 방이다.


그 방에 우주 별빛의 밤하늘로 돛을 올리고, 칠흑 같은 세상의 밤을 밝히는 등대로 서서 항해하는 작은 뗏목의 반야용선(般若龍船) 하나가 있다. 극락정토를 상상하며 검은 바다를 건너가는 반야바라밀의 작은 배.


현실의 이면이란 이면을 노오란 비닐장판에 다 돌돌 말아 새겨서 “나무나바나바디남다다아다 긍가나디바로가 구디나유다세다사하살라남 옴 보보리 제리니 제리모리흘리 다라바리스바하”의 다라니(陀羅尼) 주문으로 생성되는 그곳은 2층에 설치한 우물의 깊고 깊은 심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다라니 주문의 실체는 무엇일까? ‘여덟 마리 등대’로 불 밝혀 울리는 고래들의 목소리다. 인간들의 고래고래가 아니라, 고래들의 고래고래 외치는 소리, 노래하는 소리, 꾸짖는 소리, 목소리 한껏 높여 지구 바다를 돌돌 에워싸며 굴리는 옴 보보리의 경(經)이다.


그 경은 신성하고 예지적이다.


왜 인간들은 화가 나서 남을 꾸짖고 욕할 때의 표현을 ‘고래고래’라고 했을까? 도대체 고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나 있을까?


그녀는 고래들이 부르는 노래로 관객을 휘감아 돌도록 했다. 울돌목의 해류에 휩싸이듯 그 어두컴컴한 방에 들어서면 눈보다 먼저 귀로 고래들의 노래가 휘감아 돌면서 흘러들어 몸통을 울리도록 했다. 몸통을 울려서 잠들어 있는 야성의 몸각을 연다.


관객은  13분 1초 동안 8대의 스피커가 휘잡아 돌리는 고래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캘리포니아 몬트레이만에 설치한 수중 청음기에 녹음된 고래들의 실제 목소리! 고래가 바다를 들썩이게 하면서 우주에 외치는 소리!


뗏목에 누워서 몸각의 촉수를 틔우고 그 소리와 교신해야 하는 인간의 몸은 무디고 녹슬어서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오래 누워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몸이 열리는, 아주 아주 미세한 느낌이 온 몸에 소름 돋듯 돋아나는 순간이 있다.


5천만 년 전의 초기 영장류로 회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미세하게 느껴지는 그 어떤 느낌의 줄을 잡아 당겨서 고래의 말을 지어야 한다. 푸른 고래, 수컷 향유고래, 지느러미 고래, 부리 고래, 밍크 고래, 혹등고래, 태평양흰줄무늬 돌고래, 범고래 소리에 감응하는 감흥신령을 뒤집어쓰고 그 말을 또박또박 새겨서 경을 지어야 한다.


그녀가 “고래의 몸통이나 고래의 입, 미끈한 피부, 숨 쉬는 분기공, 물 뿜어 올리는 소리, 무엇보다 휭 솟구쳐 오르다가 ‘추푸!’하고 물에 부딪히는 모습과 소리들이 당신에게 떠오르길 바라요.”라고 했듯이 신령이 내부에서 떠올려야만 한다. 서서히 ‘고래­되기’로 ‘혼­바꿈’하는 찰나에 훅 들어와 뒤집히는 ‘나’.


그녀가 <여덟 마리 등대>를 세우기 위해 수년 동안 준비한 것은 고래의 언어를 학습하는 것이었다. 수시로 받아 적고 말하고 흉내 내고, 소리를 토하고 뱉고 들이마시고 가라앉았다가 솟아오르면서 분기공의 숨구멍을 트듯 입을 열고, 다시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전류를 흐르게 하는 방식으로 소리를 크게 흘려보냈다. 그 소리로 지구를 둘러싼 바다 속 물길이 휘휘 돌고 돌았다.


그렇게 돌아가는 바다의 생태계가 혁명이었다. 막힌 생명의 길을 뚫는 혁명이었다. 그녀는 그 혁명의 다라니를 찾아서 들려준다. 우리가 듣고 보아야 할 진리의 등대가 무엇인지를 증언한다. 고래혁명이 곧 다시 개벽의 순간임을 현시한다.


<각각의 이어도>는 극락정토의 이어도가 여기나 저기나 있지 않은 곳이 없음을 보여준다. 제주 남쪽의 수중암초인 이어도에서, 그의 작업실 근방의 출렁이는 논에서도 이어도는 발견된다. 어디에나 바다는 있어서 이어도 아닌 곳이 없는 것이다. 그녀가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논을 헤엄쳐 다다르려는 이어도는 바로 지금 여기다!


 


감각을 열어 오롯한 하나로 


깊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돌아오듯 계단을 타고 올라 간 전시장 2층은 온통 지금이 여기라고 외치는 ‘한 여자’의 기록이 가득했다. 그녀의 삶은 과거­현재­미래가 따로 없었다. 늘 여기였고 거기였으며, 지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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