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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 '동백꽃 피다'의 아침놀-제0세계 작가들과 제주 4.3

김종길

‘동백꽃 피다’의 아침놀
- 제0세계 작가들과 제주 4‧3



얽다 ; 4‧3으로 파고들기


1948년 4월 3일로부터 70년이 지났다. 그 4월 3일은 ‘4‧3(사삼)’이라 부르고, 그 뒤에 ‘사건’을 붙인다. ‘사건’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항쟁인지 학살인지 폭동인지 규정하지 못한 채 모호한 정체성으로 방치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어정쩡한 개인, 물욕에 빠진 시민, 눈치만 보는 국가의 태도가 못 마땅하다.


4‧3사건을 재인식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본질로 파고들어 육박하는 ‘창조적 주체(Subject)’로의 거듭남이 절실하다. 창조적 주체는 문제의식을 가진 인간이며, 이기적 제나(Ego)를 벗고 온전한 참나/얼나[眞我]로 탈바꿈한 실천적 주체, 즉 실체일 터. 그는 다른 그 무엇으로부터가 아니라 오롯이 그 자신의 자발적 판단과 행위로 어떤 문제들 속으로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사람이다.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이성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생철학의 태도로 생(生) 자체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실재하는 존재들의 아픈 그늘을 살펴야 한다.


‘제0세계’의 예술가들이 제주로 건너가 기록의 세목들을 살피고 참혹한 주검이 난무했던 삶터의 옛 풍경을 발로 누볐던 것은 주체로의 탈바꿈 과정일 것이다. 니체가 “모든 가치의 구속에서 벗어나 ‘이제까지 금지되고 경멸되었으며 저주받았던 것’을 긍정”하기 위해서 주제어로 선택한 ‘아침놀’의 체험이었을 것이다. 70년이 될 때까지 4‧3은 마음감옥에 박힌 금기어였고, 붉은 낙인이 선명한 희생의 연좌제로 저주받은 역사였다. 망각을 강요한 국가폭력의 압인(壓印)은 그 섬에 살았던 4‧3의 후예들을 유령처럼 떠돌게 했다.


1978년 9월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현기영의 중편소설 「순이삼촌」이 그 유령들을 그늘 늪에서 건져 올려 산 사람의 옷을 입힌 뒤로 4‧3은 한국현대사의 새로운 여명이 되었다. 억압과 상실과 새카만 먹칠로 범벅된 역사의 지층에서 새 싹이 돋듯 아침놀의 햇살을 받아 폭력의 껍질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탈각(脫却)의 자리는 그러나 너무나 크게 억눌렸던 곳이어서 21세기가 되어서도 온전치 않다. ‘제0세계’의 예술가들이 찾았던 그 자리들도 그러했으리라.


그들이 “말 달린 발[동백꽃 지대:1. 항쟁의 뿌리]”, “말 달린 발[동백꽃 지다: 강요배]”, “하루 만의 제주 4‧3 여행길”을 사전 프로젝트로 기획한 것은 4‧3을 가로지르기 위한 그물코 얽기에 다름 아니다. 이쪽저쪽으로 이론과 실재와 역사와 현장을 꿰어야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강요배의 제주 민중항쟁역사화 『동백꽃 지다』의 장면들을 촘촘히 읽고 곤을동과 제주4‧3평화공원, 새별오름, 진아영 할머니 삶터, 섯알오름, 만뱅듸 묘를 연결하는 걷기의 선들은 산역사의 구체적 형상화를 위한 소묘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 소묘의 선들이 문자로 드러나 책으로 묶인 것이 김유민의 아카이브북 『모호한 담론』(2019.10)이겠다.


‘제0세계’는 제주 4‧3을 중심으로 한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리서치하는 시각예술프로젝트팀이다. 역사 속 학살(사건)을 리서치해서 예술로 표현하려는 젊은 예술가들의 시도에서 우리 미술의 다른 면모를 읽는다. 서구미학의 개념에 빗대어 미술의 형식과 내용을 채웠던 시대가 멀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계미술은 ‘제0세계’의 예술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학살(genocide)처럼 지역적 의제들이 갖는 특수성에 의해 인류 보편성의 어떤 수평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세계미술과 한국미술의 ‘동시(대)성’일 것이고.
김유민, 김준환, 박선영, 장윤미는 국정교과서에서 4‧3이 어떻게 기록되어 왔는지 살피고, 전문가에게서 생생한 육성(肉聲)을 듣고, 선배 작가 작품으로 후체험한 뒤, 4‧3의 현장을 찾았다. 그들의 작품은 그렇게 얽혀서 탄생한 4‧3의 미학적 증언록이다.


극락왕생(極樂往生) ; 원컨대 그곳에 살게 하소서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로 18길 8 지하 1층 쇼앤텔1(SHOW AND TELL1)으로 들어섰을 때 처음 마주한 것은 검은 색 방명록이었다. 마치 명부(冥府)에 이름을 올리듯 이름 석자를 적고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비치한 『모호한 담론』 한 권을 들고 벽을 보니 “제주 4․3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공유해 주세요.”라고 적혀있다. 아주 잠깐 4‧3을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오랫동안 4‧3을 묻고 따지고 삼키고 토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와 4‧3은 한데 뭉치지 못하고 어설프게, 비스듬히, 곁눈질하듯 마주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으로 돌아서서 한 발짝 옮기자 장윤미의 <극락왕생(Eternity)>이 눈에 들었다. 정면에 서서 보면 그 글씨는 또박또박 어떤 울림으로 눈 속을 파고든다. 종울음인지 아니면 환영인지 모르겠으나, 글자 윤곽만으로 아니 글자를 이루는 흰 여백 - 그것을 구멍이나 토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들의 흔적으로만 새겨놓은 ‘극락왕생’은 차원의 경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흰 글씨가 보는 이에게 달려들 듯 확산되어 오는 양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극락왕생’이 읽히면서 그 말뜻의 세계로 의식/무의식이 슬쩍 넘어가는 느낌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극락은 극락정토(極樂淨土)에서 왔다. 더없이 안락하고 걱정이 없는 곳. 그곳은 서쪽에 있고 그곳을 희구하는 노래가 원왕생가(願往生歌)이다. 원컨대 극락에 살게 하소서. 그런 말뜻이 마음에 회오리쳐서 그랬을까, <극락왕생>을 보는 내내 현기증이 일었다. 극락정토 원왕생가, 극락왕생!


전시의 첫 도입부에서 울려 퍼지는 왕생(往生)의 노래는 이 전시의 제목 <동백꽃 피다>의 ‘피다’를 변주하는 듯했다. 이승을 떠나 정토에서 태어나는 일이 곧, ‘동백꽃 지다’를 해원하고 ‘피다’로 솟나기 위한 비나리의 사건일 테니까(비나리는 마당굿을 마친 후 걸립패의 풍물재비가 고사 상 앞에서 부르는 소리다. 축원덕담, 천지개벽, 살풀이, 액풀이로).
 
순출삼촌 ; 형상그물로 엮은 초상


<극락왕생> 옆으로 <순출삼촌(Aunt Sun-Chul)>이 걸렸다. 한 종이에 여러 부분을 덧대어 그리듯 인물 초상을 그리고 붙여서 몽타주했다. 그림 옆에는 박선영 작가가 순출삼촌과 말을 나누면서 얼굴초상을 드로잉하는 영상이 돌고 있다. 말과 그림이 한데로 흘러 얼굴의 윤곽이 드러나고 표정이 스미는 영상 속 장면들에서 한 초상의 실체는 빛이 났다.


예술가와 모델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 재현과 대상의 관계를 형성한다. 미술사에서 초상화는 미메시스의 환영으로 존재했고 그런 전통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환영의 리얼리티는 미학과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선영은 순출삼촌과 가까이 마주앉아 삼촌의 삶에 드리워진 역사그늘을 엿본다. 둘 사이에는 거리도 없고 환영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를 허문 뒤, 둘은 묻고 듣고 웃고 귀 기울이면서 동시에 손은 삼촌의 초상을 그린다. 몸의 언어가 손의 드로잉으로 이어져서 드러나는 형상!


삼촌과 (미학적) 재현과 예술가의 정신을 굳이 나누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말하면 삼촌과 재현과 예술가의 정신 따위를 나누고 나누지 않고를 떠나서 온전히 그 실체로 파고들겠다는 듯이 그려나가는 그의 손은 두 몸의 감응을 따라갈 뿐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드로잉 <순출삼촌>은 기억을 새기고 삶을 양각한 작품이 되었다.


가까이 마주보면서 그린 삼촌의 얼굴, 삼촌이 입은 옷의 무늬들, 사진으로 박아서 오려낸 어깨와 팔, 후경을 이루는 머리칼… 그 초상에는 순출삼촌과 그 삼촌의 삼촌들이 엉겨 붙어서 ‘역사그늘’의 깊은 굴곡들이 없지 않으나, 오히려 그 굴곡들이 환한 표정으로 되살아 오르면서 존재가 도드라지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 역설의 존재들이 박선영이 그린 숱한 초상화들인 <섬의 얼굴(Island scape)>에서 빛나고 있다. 핏빛 혈맥들이 푸르게 빛나는 얼굴들에서 발견하는 것은 이제 그늘이 아니다. ‘해그늘[日影]’은 빛과 그늘이 어울리는 것이다. 그 어울림의 카오스모스가 신명이다. 그러니 박선영의 초상을 신명에 찬 존재들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리라. 얼굴에 해그늘이 선명하므로.


백비(白碑) ; 이름 없는, 이름의 숭고             


하필이면, 박선영의 <섬의 얼굴> 양 옆으로 <백비(Blank Gravestone)>를 배치했을까?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지하로 걸어 들어가면 처음 마주하는 백비를! 하늘기둥을 타고 쏟아지는 빛무리가 안식의 피부가 된 그 백비를! 이름 없는 이름들의 거대한 숭고인 그것을! 아, 제 이름으로 일어서기 위해 누워있는 미륵의 몸뚱이를!


김준환은 2합지 두 장을 겹쳐 놓고 4‧3평화공원 기념관 지하의 백비를 그렸다. 그가 본 장면 그대로를 칠했다. 백비는 빈 것이니, 백비만 비웠다. 빈자리는 희고 밝아서 빛났다. 백비가 누워있는 단과 그 둥근 단을 에두른 바닥은 어두웠다. 어둡고 어두운 그 자리가 백비를 더 밝게 빛냈다. 어둠이 빛을 밀어 올리기라도 하는 듯이.


그림은 그렇게 역동(逆動)의 상징이 되어서 어떤 혁명의 불기둥을 연상케 했다. 백비여서 흰 빛이 아니라, 흰 빛이어서 백비는 불이 된 듯했다. 활활 타오르는 흰 빛은 수천수만의 참혹한 영혼들이 제 이름을 얻어 일어설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김준환은 장면의 리얼리티를 상징의 리얼리티로 전환하기 위해 합지로 붙은 겹의 이미지를 따로 떼어서 걸었다. 맨 위의 첫 장면에서 이미 흰 빛의 백비는 숭고의 기념비가 되었는데, 그 바로 밑의 장지는 그런 기념비의 숭고가 어둠을 걷어내고 휘황한 무지개에 휩싸인 것을 보여준다. 그가 색을 입힐 때 어둠을 검게 칠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백비가, 그 흰 몸이 살아서 일어서는 사건은 미륵이 서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륵은 미르[龍]에서 왔으니, 그 몸의 비늘이 어찌 무지개가 아니겠는가!


맨 밑에 깔렸던 장지는 백비도, 백비를 둘러싼 세계도 모두 흰 빛이어서 이름 없는 이름들이 드디어 제 이름으로 일어서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누운 백비가 일어섰으니 그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다른 세계이리라. 그 세계는 다시 열린 새로운 ‘개벽(開闢)’의 세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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