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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귀국박스>(2008), <비념>(2013),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을 통해 알 수 있는 임흥순 작가의 역사 서술 방식 해독

윤지수

<귀국박스>(2008), <비념>(2013),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을 통해 알 수 있는
임흥순 작가의 역사 서술 방식 해독

윤지수

1. 들어가며

  임흥순(?, 1969-)은 서울을 주 터전으로 하여 작업하는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그는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의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들이 사회, 자본주의, 정치적,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탐구했다.1) <위로공단>(2015)이 그렇게 제작되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민족사에 집중하여, <귀국박스>(2008), <비념>(2013), <환생>(2017) 등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필자는 그의 최신작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을 보고 그가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과 내용을 구성하는 방법에 큰 흥미를 느꼈고, 그의 전작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필자는 그가 작품 속에서 역사를 해독하는 방식이 작품마다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전작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내용적인 측면에서 다른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만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필자는 그의 전작들 중 <귀국박스>, <비념>을 선정하여 각 작품에 드러난 형식과 내용을 비교 분석하고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만 드러난 특징을 연구하여 이 발표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또한 이 세 작품에 드러나는 임흥순 작가의 역사 서술 방식을 해독하여 발표를 통해 전하고자 한다. 필자가 이 두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 전시적 형식과 영화적인 형식을 동시에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전시의 형식을 취한 <귀국박스>와 영화의 형식을 취한 <비념>을 선택했다. 둘째,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는 베트남전, 한국전쟁, 제주 4.3등의 사건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귀국박스>와 제주 4.3이 주제가 된 <비념>을 선택했다.


2. <귀국박스>(2008), <비념>(2013)을 통해 살펴본 임흥순 감독 작품의 역사서술 방식


1) <귀국박스>(2008)
    <귀국박스> 展(2008)은 귀국박스2) 를 소재로 하여 베트남전을 성찰하자는 목적을 띈 아카이브 전시다. <귀국박스>는 작가 임흥순과 베트남파병의 역사를 연구해온 윤충로(?, 1975-), 그리고 독립영화감독인 박경태(?, ?-)의 공동기획으로 ‘평화공간’과 ‘대안공간 풀’에서 2008년에 두 차례 전시되었다.3)
  임흥순은 귀국박스를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사용한다. 그런데, 귀국박스에 담겨져 있었던 소모품들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대신 작가는 개인 소장 사진들, 우표, 교과서, 책,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 인터뷰 등을 자료로 전시에서 활용한다. 작가는 전시에서 공식적인 역사와 관련된 자료들과 개인적인 역사에 해당하는 물건들이나 기록들을 병치시킨다. 작가가 전시한 공식적인 기록물에는 1970년대 초에 발간된 잡지 ??자유의 벗??, 부대의 공식 앨범, 1970년대 초 도덕 교과서와 사회 교과서에 실린 베트남 장병을 소개하는 페이지, 베트남 참전 전우회가 제공한 한국군 게시판과 비디오, 참전 군인들의 인터뷰 그래프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역사에 해당하는 물건으로는 참전 용사들의 유품에서 발견된 편지와 사진들이 있다.4) 이는 거대한 전쟁 담론 안에서 인식되었던 베트남 전쟁을 미시적인 관점으로 인지하는 작가의 시도로 읽힌다. 또한 필자는 작가의 이러한 작품의 배치가 미시적 관점의 한계(미시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사회 구조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있다.)를 보충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아카이브 전시와 함께, 참전용사 K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한 사진 연작 시리즈인 <꿈>(2008)을 전시했다. <꿈>은 작가의 인터뷰에 응한 참전군인 중에 다리 한쪽을 잃은 K씨의 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K씨는 아침에 일어나 없어진 다리를 바라보면서 허탈감을 느끼는데, 그의 이런 감정에 대한 독백으로부터 사진 연작은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으로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현대인과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이 재현되며, 전쟁기념관 출구의 ‘안녕히 가십시오’의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는 K씨가 40년 전에 베트남으로 떠난 첫 순간을 재연하는 것이다. 사진 연작의 중간에는 개인적이며, 현재 시점에서 찍힌 이미지들이 삽입되어 있다. 청룡부대의 청룡이라는 단어를 현재시점의 버스에서 찾는다든지, ‘탕탕탕’이라는 식당의 간판이 참전군인의 모습과 교차하는 것이 그 예이다. 베트남전에서의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단어들이나 색상, 이미지는 현재 한국의 도시풍경에서 찾는다.5) 이는 과거의 사건과 기억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확장하여 모호하게나마 그 연관성을 찾으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을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사진, 현재의 다큐멘터리 사진, 재현 사진들의 혼종을 통해 현재 시점에서 전쟁에 대한 기억이나 물건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하게 한다.6)
    <귀국박스> 展은 공식적인 기록물과 함께 참전 군인들의 인터뷰, 그리고 연관된 물건의 아카이빙, 현재 시점으로의 재연을 보여주는 작업의 전시를 통해 단지 기록물 속에 숫자로 존재했던 참전 군인들의 개인사를 보여준다. 관객들은 그동안 거대한 전쟁의 담론 안에 삭제되었던 개인의 이야기를 목격하게 된다. 또한 현시점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그리고 물건들에 대한 기억을 재해석하게 된다.       










2) <비념>(2013)
  제주도민들에게 ‘폭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한 제주 4.3은 2003년 ?제주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의 채택을 통해 제주도민들의 오명을 씻게 했다. 제주 4.3이 벌어진 당시 한반도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먼저,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충돌이 있다. 거대한 두 이데올로기는 한반도 내에 충돌하여, 남한과 북한을 두 정치체제로 찢어놓았다. 두 번째로는 미 군 정과 친일 경력이 있던 관리들의 한 축과 독립운동 경력자와 대부분의 조선 민중이라는 다른 한 축의 이해관계가 있었다. 셋째로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 추진파와 김구(金九, 1876-1949),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을 중심으로 한 통일 정부 추진그룹 간의 갈등이 존재했다. 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원인이 배경이 되어 일어난 것이 제주 4.3이다.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를 보면 당시 제주도는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이 얽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7) 이러한 상황 속에서 3·1절 발포사건8) 이 터졌고, 이것이 직접적인 시발점이 되어 벌어진 사건이 제주 4.3이다.9)
  임흥순 감독의 <비념>(2013)은 제주 4.3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다. ‘비념’이라는 용어는 ‘개인이 하는 작은 규모의 굿’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의 곳곳에는 굿하는 장면이 삽입되어있다.
일반적으로 내레이션을 동반하는 인터뷰 형식과는 다르게 <비념>은 재연, 인터뷰, 이미지가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툭툭 튀어나와 관람객들에게 낯설며, 동시에 거칠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감독은 오디오 없는 화면을 반복하며 은유적으로 사용된 사물의 등장, 텅 빈 화면을 조각적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비념>에는 제주 4.3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확장하는 시도 또한 보인다. 일본 오사카에서 살고 있는 유족들의 인터뷰를 담아, 제주 4.3이 제주도에만 한정된 사건이 아님을 말한다. 또한 강정마을의 문제와 제주 4.3이 연결되는 지점을 장면 연출을 통해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폭도를 진압하는 경찰들의 장면 바로 다음으로 강정 마을주민들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의 장면을  연결한 것, 제주로 가는 비행기의 비행장면을 보여주고 바로 다음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군 비행기가 비행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예이다. 그리고 실제 유가족들의 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도 영화의 군데군데 넣어 4.3 사건의 영향이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린다.10)










3. 임흥순 작가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에 드러난 역사 서술 방식


3.1_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 소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 2017년도에 선정된 임흥순 감독이 제작한 영화이다. 이 작업은 2017년도 11월 30일부터 2018년도 4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와 아카이브, 그리고 영화의 형태로 처음 선보여졌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 독립운동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분단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무의식중에 유령처럼 깊게 스며들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주제의 영화이다.11) 영화는 정정화(?, 1900-1991) 할머니, 김동일(?, 1932-2017) 할머니, 고계연(?, 1932-) 할머니, 이정숙(?, 1944-) 할머니의 삶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지인, 가족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재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중간마다 삽입되었다. 작가는 네 할머니의 삶을 추적하고, 일제강점기, 이념 갈등, 분단, 전쟁으로 인해 부서진 그들의 시간을 ‘믿음, 신념, 배신, 사랑, 증오, 유령’이라는 상징 언어를 중심으로 서사적 이미지로 복원한다. 이는 그 시대를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사건의 영향을 받은 현시대의 상황과 우리의 모습을 여러모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부제목인 ‘믿음·신념·사랑·배신·증오·공포·유령’에 언급된 유령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이며, 이를 찾아다니고 바라보고 서술하는 작가를 은유하기도 하며, 동시에 “역사 서술의 진실과 거짓의 갈라진 간극을 부유하는 수많은 민중”을 의미하기도 한다.12) 








3.2_ <귀국박스>(2008), <비념>(2013),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의 비교. 그리고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만 보이는 특이점(내용면에서, 전시를 보여주는 형식면에서)


1) 내용면에서 세 작업 비교.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만 보이는 내용적인 특이점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만 보이는 내용적인 특이점을 살펴보기에 앞서 <귀국박스>와 <비념>, 그리고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사이의 내용적인 공통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귀국박스>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볼 수 있는 내용적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귀국박스>는 베트남전을 소재로 하며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한다. 참전 군인들의 개인적인 ‘삶’을 살필 수 있는 아카이브 자료,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그들의 일상적인 삶과 전쟁이 그들의 일상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도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등장한다. 그런데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주목하는 인물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베트남전에 미친 영향을 <귀국박스>에 드러난 것보다는 덜 직접적이다. 또한 그 비중이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역사적 사건 아래 인생과 일상이 결정되었던 그녀들에게 베트남전이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귀국박스> 전시에서는 작품 <꿈>에서 베트남 참전용사 K씨의 기억을 동시대 서울의 도시풍경에서 찾는다. 이는 과거의 사건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하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도 나온다. 할머니들의 후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추적한 것이 그것이다.
  <비념>과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볼 수 있는 내용적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제주 4.3사건이 개인의 일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가, 특정 인물들의 인터뷰와 일상 추적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 제주 4.3항쟁에 참여하여 한라산 사람이 되었다가, 일본으로 밀항해 평생 일본에서 살다 돌아가신 김동일 할머니의 인터뷰를 실었고, 일상 을 추적했다. 실제 작가는 제주를 이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하여 촬영했는데, 작가는 제주를 “우리 아픈 역사가 만들어 놓는 트라우마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장소”로 생각했기 때문이다.13) <비념>에서는 제주도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만 보이는 내용적인 특이점을 살펴보려 한다. 위에서 소개했듯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네 할머니의 삶을 주로 하여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엮어나간다. 그녀들의 삶은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2차 세계대전, 제주 4.3 과 간접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작가의 이전 작업들이 우리 민족에게 일어난 사건 중 단 하나의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면, 이 작업은 다양한 사건을 한 작업에서 다루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네 할머니가 겪은 사건을 연기자들의 연기를 통해 보여준다는 것도 다른 작업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작가의 스토리와 연출을 통해 네 할머니의 삶이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시작점을 분단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MMCA 작가 인터뷰를 통해 “최근 극단적으로 나누어있는 현실을 보면서 과거엔 어땠을까 왜 이렇게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나뉘어졌을까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그게 분단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방 전후 시대, 일제 강점기, 미 군 정기, 한국전쟁, 좀 나아가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신 분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고 말했다. 필자는 분단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작품의 시작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통해 드러난다고 느꼈다. 작품의 시작부분에 개기일식의 장면과 그 상황을 바라보는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남·북한에 각기 다른 정부가 세워지던 날 개기일식이 있었다는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문구가 나온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할머니들의 역을 맡은 연기자들이 동시에 달이 뜬 하늘을 바라본다. 이는 할머니들이 겪은 삶의 굴곡들이 분단이라는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작가의 연출이자, 민족이라는 이름하에 그녀들의 삶이 연관이 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2) 형식면에서 세 작업 비교.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만 보이는 형태적인 특이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은 영화이지만, 동시에 전시의 형태를 취했다. 이 점이 전시를 보여주는 형식적인 면에서 <귀국박스>(2008), <비념>(2013)과의 가장 큰 다른 점이라고 보인다. <귀국박스>가 전시형태를 취했고, <비념>이 영화의 형태를 취했다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이 두 형태를 합친 형태이자, ‘시노그라피(scenography)’14) 라는 형식을 가미하는 감독의 실험정신까지 첨가된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만 보이는 형태적인 특이점을 보기에 앞서 <귀국박스>와 <비념>, 그리고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사이의 형태적인 공통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귀국박스>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볼 수 있는 형태적인 공통점이다. 첫째로, 작가가 추적하는 인물들의 인터뷰 그래프가 전시장 내에 설치되었다는 점이 같다. 둘째로, 인물, 혹은 사건과 관련된 물건들이 아카이빙 되었다는 점이 공통된다. 다음으로, <귀국박스>와 <비념>은 인터뷰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 두 작업의 형태적인 공통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작업 모두 역사적인 사건을 겪은 인물들을 추적하여, 그들이나 혹은 그들의 지인의 목소리를 직접 담았다. 물론 이를 최종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이 <귀국박스>는 전시, <비념>은 영화라는 점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비념>과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은 인터뷰의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또한 영화로써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 작업 모두 ‘인터뷰 형식’을 사용했다는 점이 공통된다. 이를 종합해보면, 감독은 작업을 함에 있어서, 또한 내용을 꾸리고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인터뷰’ 형식을 기본으로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만 보이는 형태적인 특이점을 살펴보려 한다. 다큐멘터리와 연출의 요소가 섞였다는 것이 그의 이전 작들과는 다른 이 영상의 특징이다. 그리고 기존의 블랙박스 공간 안에 스크린만을 배치하는 영상전시와는 달리 이 작업은 무대미술, 혹은 영화 세트장에 사용되는 소품을 스크린 앞에 배치했다는 것이 독특하다. 이는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사용하는 무대미술의 개념인 ‘시노그라피’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이 이번 전시를 가장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이자,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만 보이는 형태적인 특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시장 내에는 3개의 스크린이 설치되었고, 옷이 걸린 나무 한 그루, 나룻배 한 척과 풀과 바위의 형상을 한 소품이 배치되었다. 또한 입구에는 동상이 배치되었고, 경고를 알리는 듯한 ‘warning’ 사인이 함께 배치되어 관객에게 스펙터클(spectacle)을 선사한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러 들어가는 입구와 대기 줄에 배치된 설치물로 인해 승객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연극 무대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시노그라피는 형태가 비슷한 만큼 관객에게 주는 효과도 비슷할까? 필자는 이 둘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연극 무대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 형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리고 관객에게 주는 효과의 차이점을 두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1. 극의 수용자는 누구인가? 극의 주체는 누구인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무대는 “공연과 관객의 커뮤니케이션을 연결해 주는 매체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전통적인 퍼포먼스에서는 공연과 관객과의 관계를 높이기 위해 적합한 무대를 사용하거나(원형 무대, 돌출 무대, 프로시니엄 무대15) 등이 있다고 한다.) 무대미술, 사운드, 조명을 적절히 활용하여 관객이 공연에 집중하고 커넥션이 적절히 이루어지도록 한다.16) 이처럼 연극의 무대는 관객에게 극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려고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제작된다. 따라서 극의 ‘수용자’인 관객은 무대 설치를 통해 극에 집중하게 되고, 배우와 배우가 전하는 극의 이야기와 소통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의 무대는 어떨까. 기존의 연극무대와 이번 전시 무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대와 관객 사이의 벽이 없다는 것이다. 기존 연극무대는 일반적으로 관객석보다 높은 곳에 있는데, 이는 마치 벽처럼 관객과 배우 사이를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전시는 무대와 관객 사이의 분리가 없다. 또한 스토리를 진행하는 배우나 퍼포먼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업에서 스토리를 진행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이 작업이 원래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스토리를 진행하는 존재는 영화 속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 전시가 연극의 무대개념을 따랐다는 점에서 본다면, 스토리를 진행하는 역할은 관객이 맡았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관객은 전시장 어디에 착석하든지 간에 거대한 무대 위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며, 관람객이자 동시에 스토리 진행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비약이자 필자만의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감독이 할머니들의 지인을 인터뷰하여 할머니들이 삶에서 겪은 역사적 사건들을 현시대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념 갈등, 분단, 전쟁을 겪은 자들의 후손이 관객이라는 점에서 생각한다면 위에서 말한 필자의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역사적 사건이 미치는 영향력을 동시대까지 확장해서 보고자 하는)를 형태적으로 일치시켰다. 그녀들의 삶에 거대한 균열을 냈던 사건들이 동시대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작품의 내용을 통해, 그리고 작품이 취하고 있는 형식을 통해 알리는 것이다. 


2. 연극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를 똑같이 따르는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는 스토리가 진행될 때마다 관련된 설치물(옷이 걸린 나무 한 그루, 나룻배 한 척, 풀과 바위의 형상을 한 소품)에 빨간색 조명이 비친다. 뮤지컬에서 내용에 맞는 무대 설치 요소가 무대 위에 등장하고, 또 사라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뮤지컬에서는 설치물과 배우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지만, 전시 안에서는 설치물과 스토리를 진행한다고 볼 수 있는 영화 속 인물들 간에, 혹은 설치물과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을 찾아볼 수 없다. 설치물은 더 친절한 설명적 요소로 작용하며, 관객에게 전시장이 경험의 공간임을 더욱 강조한다. 따라서, 작가는 연극으로부터 시노그라피 개념을 차용했지만, 이 형태는 관객에게 동시대 미술 전시에서 관객이 느낄 수 있는 효과를 준다. (동시대 미술 전시의 트렌드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도 전시 일부라고 생각하고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스펙터클을 더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공간 디자인에 신경 쓴다. 대표적인 전시로는 <모네 빛을 그리다> 展이 있다.)


4. 나가며_ <귀국박스>(2008), <비념>(2013),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을 통해 알 수 있는 임흥순 작가의 역사 서술 방식 해독.
  지금까지 임흥순 작가의 세 작품 <귀국박스>, <비념>,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내용상, 형태상의 공통점과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만 드러나는 특이점을 살펴보았다. 이를 종합하여 필자는 임흥순 감독의 역사 서술 방식을 다음과 같이 해독하였다. 작가는 미시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특정한 개인을 정해서 그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의 가족 혹은 지인들과 만나 그들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받은 영향, 혹은 그들이 역사에 끼친 영향을 동시대까지 확장한다. 작가는 위에서 살펴봤듯이 ‘인터뷰’라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데, ‘인터뷰’의 형식만이 그들의 목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글쓴이는 추론해본다. 기존의 거대한 담론으로써, 혹은 기록 속에 남은 숫자로써 존재했던 역사적 사건들(일제 강점기, 이념 갈등, 분단, 전쟁)은 그 시대를 몸소 겪었던 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새롭게 기록되며,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작가는 개인의 삶을 추적하고, 그 목소리를 담는 행위를 통해 죽은 사건을 생생한 어떤 것으로 살려낸다. 그런데, 작가가 추적한 특정 인물은 기존 역사 서술과 작가가 시도하는 역사 서술 간의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민중이기도 하다. 따라서 필자는 작가의 이러한 방식이 개인을 역사 그 자체로 확장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이러한 역사 서술 방식은 관객을 사건 속에 젖어 들게 만든다. 이는 동시대를 사는 관객이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지는 않았으나, 간접적으로나마 사건들을 경험한 주체이며, 작가의 작업 속 주체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파편화된 구성을 통해 작품, 혹은 전시를 기획했다. 이런 파편화된 구성은 “관객 참여, 부대 행사, 특별 공연 같은 경우도 그렇고, 설치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고 이게 조각조각인데 이것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관객들의 몫인 것 같다.”17) 는 작가의 말처럼, 관객은 작품을 경험하는 수용자인 동시에 작품을 새롭게 창조하는 주체자인 것이다.
  이를 통해 필자는 작가가 특정한 개인의 삶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한다고 해독할 수 있었다. 작가는 개인의 삶을 개인의 삶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이를 확장하여 전체 민족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의 시선 아래 개인은 서로 다른 물질처럼 이질적이다. 그런데, 또 다른 개인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접촉하기도 하고 사건 너머로 교차하기도 한다. 거대한 민족적 사건 안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천 아래 서로 다른 실처럼 얼기설기 얽혀있다. 그리고 그 틈새를 채우고, 3차원으로, 그리고 4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은 바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인 것이다. 





<각주>

1) 임흥순 공식 사이트 http://imheungsoon.com/ (2018. 06. 05)

2) 귀국박스: 귀국박스는 베트남 파병을 마키고 귀국하는 장병들이 가지고 갈 수 있었던 선물 상자였다. 베트남 파병 장병들이 들고 귀국한 상자 속에 들어있는 TV, 라디오, 카메라 등의 가전제품과 생필품들은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고동연, 「베트남 전쟁과 물건의 기억- 임흥순의 ‘귀국박스’ 아카이브전들과 작업 (2008-2009)」, 『미국사연구』, Vol.35 No.-, 한국미국사연구, 2012, P. 126.

3) <귀국박스>는 ‘평화공간(space*peace)’에서 2008년 12월 9일 부터 12월 16일까지 전시되었고, ‘대안공간 풀’에서는 2008년 12월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시되었다.

임흥순 블로그 https://imheungsoon.blog.me/80059517593 (2018. 05. 29)

4) 고동연, 「베트남 전쟁과 물건의 기억- 임흥순의 ‘귀국박스’ 아카이브전들과 작업 (2008-2009)」, 『미국사연구』, Vol.35 No.-, 한국미국사연구, 2012, pp. 134-135.

5) 앞의 논문, 고동연, pp. 136-141.

6) 앞의 논문, 고동연, p. 142.

7) 정부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당시 제주도는 동북아 요충지라는 지리적 특수성, 1945년 8월 이후 급격한 인구변동,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에 의한 수백 명의 희생, 극심한 흉년 등의 악재와 함께 미 군정이 주도한 미곡 정책의 실패, 일제 경찰의 군정 경찰로의 변신, 군정 관리의 모리행위 등 큰 사회문제의 발생으로 민심이 악화된 상황이었다.”(정부부고서, 2003년, p. 574) 허상수, 「제주 4.3 사건의 진상과 정부 보고서의 성과와 한계」, 『동향과 전망』 Vol.61 No.-, 한국사회과학연구회, 2004, p. 191.

8) 3·1절 발포사건: 제주 3·1절 발포사건은 1947년 3·1절에 제주에서 일어난 경찰의 발포사건이다. 이 사고로 6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1년 뒤 발생되는 제주 4·3 사건을 불러일으킨 씨앗이 되었다.

9) 허상수, 「제주 4.3 사건의 진산과 정부보고서의 성과와 한계」, 『동향과 전망』 Vol.61 No.-, 한국사회과학연구회, 2004, pp. 177-192.

10) 손은하, 「재현된 이미지에 나타난 로컬의 기억- 영화 <지슬>과 <비념>을 중심으로」, 『동북아 문화연구』, Vol.48 No.-,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6, pp. 200-201.

11) 김민경, 「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전시…'유령'의 의미는?」, 문화뉴스, 2017.12.02, http://www.munh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679, (2018. 05. 30)

12) 임흥순 블로그, https://imheungsoon.blog.me/80059517593 (2018. 05. 30), MMCA 브로셔 발췌.

13) MMCA 현대차시리즈 2017:임흥순 메이킹A_ 임흥순 인터뷰 http://vidfolio.kr/?p=7456 (2018. 06. 07)

14) 시노그라피(scenography): 시노그라피는 공연예술에서 무대 장식 미술을 의미한다. 시노그라피(scenography, architecture on stage)는 그리스어 ‘스케노그라피아(skènographia)’에서 파생된 라틴어‘세노그라피아(scenografia)’에서 비롯되었다. 무대를 뜻하는 ‘스케네(skene)’ 와 쓰기 혹은 그리기를 의미하는 ‘그라페노(grapho)’가 합성된 시노그라피는 무대장치, 소리, 조명 등의 요소로 극적 환경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하며, 간단히 정리하면 “무대에 어떤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현대 공연예술의 시노그라피는 단순한 무대 장식 미술을 뛰어넘는 시각적 극작법으로 이해된다. 김기란, 「현대 공연예술의 시노그라피(Scenography) 고찰 –아힘 프라이어의 < 수궁가 >를 통한 시각적 극작법 분석」, 『드라마 연구』, Vol.42 No.-, 한국드라마학회, 2014, pp. 5-7.

15) 프로시니엄 무대: 객석에서 볼 때 원형이나 반원형으로 보이는 무대를 말한다. 액자처럼 보이기도 하므로 액자무대라고도 한다.

16)권지은 외 1인, 「퍼포먼스에 있어서 인터렉티브 미디어의 효과와 활용 분석」, 『애니메이션연구』, Vol.7 No.3, 한국애니메이션학회, 2011, pp. 40-41.

17)  HYUNDAI meets Arts 2017: 임흥순_ 임흥순 인터뷰 https://vimeo.com/253762384 (2018. 06. 07)





<참고 URL>

임흥순 공식 사이트 http://imheungsoon.com/ (2018. 06. 06)

임흥순 블로그 https://imheungsoon.blog.me/ (2018. 06. 06) 


<참고 문헌>

임흥순, 『비는 마음』, 포럼에이, 2012.

임흥순, 『이런 전쟁』, 도서출판 아침미디어, 2009.

고동연, 「베트남 전쟁과 물건의 기억- 임흥순의 ‘귀국박스’ 아카이브전들과 작업 (2008-2009)」, 『미국사연구』, Vol.35 No.-, 한국미국사연구, 2012.

권지은 외 1인, 「퍼포먼스에 있어서 인터렉티브 미디어의 효과와 활용 분석」, 『애니메이션연구』, Vol.7 No.3, 한국애니메이션학회, 2011.

손은하, 「재현된 이미지에 나타난 로컬의 기억- 영화 <지슬>과 <비념>을 중심으로」, 『동북아 문화연구』, Vol.48 No.-,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6.

허상수, 「제주 4.3 사건의 진산과 정부보고서의 성과와 한계」, 『동향과 전망』 Vol.61 No.-, 한국사회과학연구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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