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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정수진 / 신화로부터 다시 세우는 여성 주체

김성호

신화로부터 다시 세우는 여성 주체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작가 정수진의 작업에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때로는 신화 속 다양한 여신의 형상으로 때로는 고양이와 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여인상이 그것이다. 정수진의 화폭 속 이 여인들은 사회적 관습과 제도에서 고착화되어 가는 그간의 여성상에 대한 편견에 제동을 걸고 ‘언제나 능동적인 여성’이라는 ‘새로운 주체’로서 되살아나 종횡무진 활약한다. 때로는 성적 자기 결정권의 주체로, 유혹하는 주체로, 능동적인 모든 행위의 주체로 되살아난 이 여인상은 어디로부터 기원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수진, 부러진 단검, 116.8 X 91.0c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1



I. 릴리스 - 마녀 혹은 페미니스트 사이
정수진의 작업 속 여성들은 히브리어로 ‘밤의 괴물’을 의미하는 ‘릴리스(לִּילִית, Lilith)’로부터 기인한 주체이다. 영어권에서는 릴리스([líliθ])로 불어권에서는 릴리트([li.lit])로 호명되는 이 여성상은 원래 유대 신화, 바빌로니안 탈무드 등에서 기원하는 존재로, 아담과 하와(이브)가 부부가 되기 이전에 ‘아담의 첫 아내’로 전승된다. 이러한 유대 신화가 발원하게 된 까닭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각기 다른 내용으로 나오는 ‘야훼의 인간 창조 신화’를 연속된 하나의 내용으로 파악하면서 기인한 것이었다. 즉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장 27절)”라는 1장의 내용과 더불어 ‘아담을 흙으로 창조한 후에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창조했다’는 2장의 내용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면서 1장에서 창조된 여자를 하와가 아닌 다른 여자로 보고자 했던 것이다. 유대신화에서 성서 해석의 여백을 차지한 여자는 릴리스로 호명되었다. 
유대신화 속 릴리스는 아담의 갈비뼈로 비롯된 하와와 달리, 아담처럼 흙으로 빚어졌고, 아담의 첫 아내이자, 인류 최초의 여자로 자리매김한다. 전승에 따르면 릴리트는 아담의 남성 상위의 성행위에 불만을 품고 아담을 떠났기에 야훼로부터 저주를 받아 악마가 되었으며 데몬과 교합을 일삼고 수많은 악마의 자식들을 낳았고, 야훼는 아담에게 순결하고 새로운 아내인 하와를 만들어 주기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성서 해석의 여백을 메우면서 유대인에게 회자되었다. 유대신화는 릴리스를 에덴동산의 선악과로 하와를 유혹했던 뱀으로 묘사하거나, 데몬과 통정하여, 수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밤의 귀녀(鬼女)' 릴림(Lilim)을 낳은 악녀의 어머니로 묘사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피의 바다’로 불리는 홍해에 살면서 인류의 최초의 살인자로 칭해지는 형 카인(Cain)에게 살해당한 동생 아벨(Abel)의 피를 마시거나 ‘산 제물’을 요구하는 흡혈귀나 마녀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처럼 유대신화 속의 마녀(魔女)나 민담 속 요부(妖婦)로 간주되던 릴리스는 1970년대 유대 페미니즘 운동을 연구했던 유태인 페미니스트 신학자인 미국의 플래스코우(Judith Plaskow)가 펴낸 저작 『릴리스의 도래(The Coming of Lilith)』(1972)와 후속작을 통해서 절대 지배자 야훼와 남성 아담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재탄생한다. 따라서 릴리스는 ‘유대 페미니즘’의 기원이자 가히 ‘새로운 능동적 여성 주체’를 모색하는 오늘날 페미니즘 운동의 원형적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릴리스를 화면 전면에 등장시키는 작가 정수진의 회화는 저항적 페미니즘 운동으로서의 발언을 앞세우기보다 ‘능동적 여성 주체’에 더 방점을 찍는 메시지를 강화한다. 그녀의 발언을 들어보자: “역사적으로 모든 신화와 전설, 그리고 종교까지도 모두 남성의 시선으로만 쓰이고 전해져 왔다. 이런 남성의 관점에서 벗어나 오직 여성의 생각과 눈으로 바라보며 재해석하고자 한 시도가 이번 작품의 결과이다. 릴리스라는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악녀나 마녀로 불린 아담의 첫 번째 아내를 모델로 그녀가 왜 역사 속에서 마녀로 둔갑했는지, 진실은 어떤지를 들여다보았다.” 특히 그녀는 조선시대의 춘화도와 같은 풍속화 또는 민화를 차용하거나 동시대 할리우드 영화나 대중문화 속 아이콘에 ‘새로운 여성 주체’를 투사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때로는 팝아트처럼 유쾌하게 때로는 블랙유머처럼 냉소적인 방식으로 기존의 텍스트를 전유하고 자신의 회화적 발언을 이어간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녀의 회화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정수진, 참을 수 없는 상징의 가벼움, 116.8 X 91.0c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1


II. 포스트 릴리스 혹은 팜 파탈 - 능동적 여성 주체
신화 속 릴리스의 이미지가 악마의 화신이자 마녀임과 동시에 악녀나 요부로 등장하는 반면에, 정수진의 회화 속 릴리스의 이미지는 좀 다른 버전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대개 그 외모는 추악하기보다는 내적 욕망을 품은 아름답고 고혹적인 외모로 나타난다. 팔등신의 외모와 긴 머리 그리고 남자를 굴복하게 만드는 요염한 자세는 정수진의 회화 속 릴리스의 이미지다. 그런 면에서 정수진의 작품에서 릴리스의 이미지는 ‘팜 파탈(femme fatale)’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불어로 ‘치명적인 여자’라는 뜻의 팜 파탈은 19세기 문학 작품이나 1940년대 이래 필름 누아르(film noir)에 흔하게 등장했던 여인상들과 겹쳐진다. ‘죽음을 초래할 만큼 치명적인(mortel)’ 외모를 하고서 남자들을 ‘파멸로 이끄는(néfaste)’, ‘숙명의(fatidique)’ 여인으로 그려지는 팜 파탈은 1920년대 요부로 통칭되는 ‘뱀프(Vamp)’와 같은 존재이면서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오늘날 변주된 팜 파탈, 즉 포스트-릴리스(Post-Lilith)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정수진의 작품은 이와 같은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한 여성으로서의 팜 파탈의 원형인 릴리스로 거슬러 올라가 그 모습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포스트-릴리스의 이미지를 한 가득 품어 안는다. 때로는 신화로부터 유래한 다양한 여신의 형상으로, 때로는 헐리우드 영화의 아이콘으로, 때로는 고양이와 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말이다. 작품을 살펴보자. 
작품 〈참을 수 없는 상징의 가벼움〉(2021)에서는 벌거벗은 한 쌍의 누드가 등장한다. 뒤러(A. Dürer)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그렸던 아담과 하와의 도상을 차용한 이 작품에는 하와의 이미지에 포스트-릴리스가 겹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 건네는 내러티브’를 품은 이 이미지는 작가에 의해서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어 있다. 이 그림은 뱀의 형상을 허벅지에 문신처럼 담고 있는 여자가 화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화와가 아닌 또 다른 여성임을 알려준다. 선악과로 화와를 유혹했던 뱀이 유대신화에서 릴리스로 언급되기도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 여성은 릴리스 혹은 또 다른 릴리스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또 다른 릴리스? ‘유대신화에서 아담에게 순종하지 않았던 릴리스’를 우리가 알고 있다면 고양이의 형상으로 표현된 이 여성 주체는 ‘포스트-릴리스’로 해석되기에 족하다. 현대의 실내 배경 속 잠자는 고양이는 이러한 ‘포스트-릴리스’ 혹은 ‘팜 파탈’의 상징과 은유를 보충하기에 족하다. 반면 남자는 ‘암컷을 욕망과 번식의 대상으로만 삼는 수컷 물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남성의 이미지는 ‘릴리스에게 주도적인 성행위를 일삼았던 것으로 알려진 아담과 관련한 유대신화’를 되뇌게 한다. 그런 면에서 릴리스가 잡고 있는 나뭇잎으로 표현된 남성의 성기는 ‘참을 수 없는 상징의 가벼움’이라는 작품명과 흥미롭게 오버랩된다. 
정수진의 또 다른 작품 〈하이힐의 릴리스〉(2021)에서도 성적 주도권은 여성에게 주어진다. 포스트-릴리스 혹은 팜 파탈로 지칭할 만한 외양의 여성은 뱀의 문신과 고양이 복장을 한 채, 실내 바닥에 드러누운 남성의 성기를 하이힐로 밟고 있다. 릴리스의 고전적 도상에는 뱀도 있었지만 대개 '부엉이/올빼미'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정수진의 고양이는 포스트-릴리스의 새로운 도상이 되는 셈이다. 을씨년스러운 초승달이 밤하늘을 비추는 적막한 실내 풍경은 무언가 형언할 길 없이 불안하게 펼쳐질 변화의 사건을 내포한다.  
 작품 〈인어커피〉(2021)에서 작가 정수진은 한 글로벌 커피 브랜드의 로고 이미지로부터 그리스 신화 속 마녀 사이렌(Siren)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을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유혹하여 깊은 잠에 빠지게 한 뒤 공격을 일삼았다는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은 ‘또 다른 릴리스’이자, ‘고전적인 팜 파탈’이라 하겠다. 사이렌 이미지를 가져온 유명 커피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커피 잔을 우아하게 들고 있는 여성은 사이렌 혹은 팜 파탈처럼 고혹적인 자세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반면, 바닥에는 ‘멜루신(Melusine)이라는 사이렌’, 즉 ‘꼬리가 둘 달린 인어’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자가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다. 꼬리가 둘이 달려 다른 이에게 목욕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멜루신은 남자들의 은폐된 욕망을 부축이던 상징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역할이 역전된다. 
남성이 주도했던 성의 역할을 전복하고 위험한 유혹을 감행하는 포스트-릴리스는 또 다른 작품에도 드러난다.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edusa)로 변한 여성을 표현한 작품 〈부러진 단검〉(2021)에는 포스트-릴리스로서의 여성이 능동적이고도 영원한 유혹자일 뿐 남성으로부터 절대로 척결되지 않는 불멸의 존재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부러진 단검’이라는 작품명이 상징하듯이 말이다.  
한편, 작품 〈유혹의 주체 2〉는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이러한 포스트 릴리스를 탐구한다. 미국의 대중만화에 등장했던 ‘스파이더맨(Spider-Man) 복장의 개의 형상을 한 남성’을 유혹하는 ‘원더우먼(Wonder Woman) 복장의 고양이 형상을 한 원더우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의 주인공을 서로 만나게 한 것도 흥미롭지만, 만화에서 10대 소년으로 등장하는 스파이더맨을 유혹하는 나이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성인 여성 원더우먼의 유혹은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정수진의 회화 속 여성이 지닌 팜 파탈 혹은 포스트-릴리스 이미지라는 것이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고 파멸로 이끄는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성의 가부장적인 질서에 대한 전복을 통해 ‘모든 상황 속에서 능동적인 새로운 여성 주체’를 세우는 일에 연동된다. 즉, 작가 정수진은 성적 주도권을 지닌 능동적인 여성뿐 아니라, 모든 상황에 있어서 ‘여성 스스로 여성을 다시 보고 여성을 지금, 여기에 다시 세우는’ 작업이라 하겠다. 


정수진, 인어커피, 116.8 X 91.0c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1


정수진, 하이힐의 릴리스, 116.8 X 91.0cm, acrylic and oil on canvas, 2021


III. 열쇠 구멍 : 다르게 보기를 거듭하는 생산적 여성 주체 
생각해볼 것은, 정수진의 다수의 최근작들이 선보이고 있는 ‘열쇠 구멍’이 ‘여성의 자기 성찰’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캔버스 바탕 면을 크게 둘러싸면서 표현되고 있는 열쇠 구멍은 회화 속 공간이 열쇠 구멍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이미지임을 강조한다. 즉 자신의 회화 속 일련의 사건 이미지가 ‘열쇠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특정 시점(視點)의 풍경’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열쇠 구멍을 통해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관음자의 입장에서 ‘열쇠 구멍’을 이쪽의 공간에 숨어 저쪽의 공간을 바라보는 ‘창’이자 이쪽과 저쪽의 ‘일방적 매개체’로 간주되는 것을 인지하고 묵인하는 행위다. 역사 속에서 그것은 대개 ‘남성 주체를 위한 일방적 매개체’였지만, 작가 정수진은 이러한 열쇠 구멍을 통해서 ‘남성으로부터 촉발된 관음의 대상으로서의 여성 보기’를 폐기하고 ‘주체적 여성이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기 성찰의 보기’로 구도를 재편한다. 즉 여성이 여성을 스스로 보는 매개체로 열쇠 구멍을 간주하면서 자기반성을 실천하고 자기를 성찰하고자 한다. 
생각해 보자. 열쇠 구멍은 열쇠를 넣어 문을 열어젖혀 이쪽과 저쪽의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의 공간이자 열려진 문을 통해 저쪽의 풍경을 이쪽으로 한꺼번에 전이하는 생산의 발원 지점이다. 또한 이 열쇠 구멍은 그러한 매개 행위 이전에 ‘열쇠가 어떠한 허락 없이도 폭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건을 무방비로 노출한 공간’이기도 하다.  
남성을 주체로 내세운 프로이트(S. Freud)와 라캉(J. Lacan)의 정신분석학이 이러한 구멍(trou)의 공간을 결여와 결핍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아버지의 공간인 상징계(Le symbolique)로 진입하기 위해서 거부와 극복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크리스테바(J. Kristeva)의 정신분석 이론은 이곳을 무한한 생산의 공간으로 이해해 왔다. 전자의 입장이 아이가 언어를 획득하는 것을 ‘어머니 몸의 배제’로 이해했다면, 후자의 입장은 ‘어머니 몸’으로부터의 이러한 명료한 획득/배제/생산/소비의 경계 짓기를 문제시한다. 외려 이 ‘기호적 코라(chora sémiotique)로서의 ’구멍‘의 공간을 애브젝트(abject)라고 하는 누추하고 불결한 공간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배제할 수 없고 배제하는 것이 무의미한 ’모든 생산의 근원‘으로 이해한다. 
이처럼 열쇠 공간은 여성으로서 작금의 현실을 사는 작가 정수진이 체험하고 사유하는 입장을 대변한다. 이 공간은 남성이 욕망의 대상으로 왜곡하면서 잠입하고 동시에 오염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위험한 공간이지만, 작가 정수진에게 있어서는 남성에게서 배제된 오염과 추방을 한꺼번에 껴안는 공간이다. 즉 구멍은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생산이 예정된 공간(l'espace réservé aux productions)’이자 생산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작가 정수진은 작가노트에서 다음처럼 말한다: “우리는 금기시되어 왔던 여성의 본질에 대해서 은밀하게 훔쳐보고, 자세히 봄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기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열쇠 구멍을 통한 바라보기는 남성이 주도하던 관음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으로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 보기의 주체로 다시 거듭나는 일이자, 남성의 시선에 의해서 걸러지고 해석되던 여성으로부터 여성의 시선에 의해서 스스로 여성을 규정하고 해석하는 일로 전환하는 것이 된다. 더 나아가 여성 주체가 남성을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보는 일로 전환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림 속에서 이러한 열쇠 구멍이 다른 구상적 이미지와 다르게 패턴과 같은 여성 수공예의 특성을 담은 장식적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씨줄과 날줄이 만나 이루는 보편적 텍스트(texte) 담론로부터 크리스테바가 새로운 생산성의 개념인 텍스트성(textualité)의 의미를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그녀의 열쇠 구멍은 무언가의 연결을 위한 매개체로부터 무한한 생산체로 전이한다. 


정수진, 유혹의 주체2, 162.2X130.3cm. acrylic on cavas, 2018


정수진, 훔쳐보기, The heart of love, 72.7 X 60.6cm, mixed media on canvas, 2020



IV. 에필로그 
작가 정수진은 회화의 언어를 통해서 ‘신화로부터 여성 주체를 다시 세우기’를 실험한다. 그 답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작가 역시 그 답을 명료하게 알지 못한 채 목표 지점을 향해 묵묵히 수행하듯 작업하면서 조형적인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답이란 모든 이에게 체험으로부터 불현듯 오는 지혜와 같은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개 모호하고 막연하지만 언젠가는 삶 속에서 명료해지는 순간을 선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릴리스라는 신화 속 여성 주체를 소환해서 오늘날의 팜 파탈 혹은 포스트-릴리스의 새로운 여성상을 모색하는 정수진의 작업은 체험적 삶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찾아 문학적 서사로부터 사회심리학적 서사로 오늘도 열심히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비판적 풍자로, 때로는 뼈 있는 농담으로, 때로는 눈물 어린 고백을 오가면서 말이다. ● (20210607)

출전/
김성호, 「신화로부터 다시 세우는 여성 주체」, 『정수진』, 전시 카탈로그
(정수진 개인전, 2021. 6. 14~6. 23, 금보성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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