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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장은하 / 정중동의 회화 - 자연의 생명 에너지로부터

김성호


정중동의 회화 - 자연의 생명 에너지로부터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작가 장은하는 이번 개인전에서 자연으로부터 발원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탐색한다. 주로 〈자연, 그리고... 에너지〉, 〈에너지〉, 〈생명, 그리고... 에너지〉와 같은 제명 아래 일련번호를 달고 있는 그녀의 연작들은 제목만큼이나 역동적이다. 형식적으로는 거침없이 붓을 휘두르는 자발성의 스트로크(stroke)와 자유로운 표현주의적 드리핑(dripping)이 화면을 점유하고 내용상으로는 기운생동(氣韻生動)과 정중동(靜中動)이 어우러진 자연의 순환적 내러티브가 심층 깊이 자리한다. 가히 ‘자연의 생명 에너지로부터 발화하는 정중동의 회화’라 할 만하다. 


생명 그리고...에너지 20502


I. 자연 - 자연스러운 무작위     
장은하의 추상 회화가 길어 올리는 샘물의 원천은 자연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유년기 시골 마을에서 자라며 형성된 동양적인 정서와 자연”이다. 작가는 말한다. “자연을 바라보며 편안하고 행복했던 순간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들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저만의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체험적 자연으로부터 소환하는 유년기 과거의 기억, 그리고 생명 에너지로 변환하는 표현주의적 추상이 바로 장은하의 본원적 회화 정신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그녀의 추상 조형 안에는 ‘무작위(無作爲’)와 같은 자연의 본질이 내재한다. “일부러 꾸미거나 뜻을 더하지 아니함”이라는 의미를 지닌 무작위란 “스스로 그러하다”는 한자어로 명명된 자연(自然)의 속성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움’이다. 작가에게 체화된 자연이란 이상(理想)이라는 이름으로 현실계로부터 이격된 유토피아적 낙원도 아니고, 관념이라는 이름으로 우주와 동일시되는 대자연(大自然)도 아니다. 그녀에게 자연이란 유년기의 삶과 연동된 체험 가능한 현실 속 자연인 것이다. 
살갗에 내리는 따사로운 햇살, 바람에 화답하며 속삭이는 들판의 풀꽃들, 각종 곤충과 미물이 서식하는 숲속 풍경은 생명의 신비를 전하는 현실 속 자연의 구체적인 이름들이다. 여기에는 생명만이 거하는 것이 아니다. 겨울을 채비하는 나무를 떠나 땅으로 추락하는 늦가을 낙엽, 화려한 변태를 도모하면서 나비가 벗어 남긴 허물, 생명을 다한 어미 들쥐의 주검, 논두렁을 집어삼킬 듯이 폭풍우로 몰아치다가 이내 잦아든 빗줄기, 빛을 거두고 잠드는 어두운 밤처럼 소멸하고 죽어가는 면면들 또한 현실 속 자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양자의 모습은 생로병사와 생성소멸을 지속하는 대우주 속 소우주인 자연의 본성이다. 
장은하의 작품 속에는 이러한 생로병사가 야기하는 ‘순환의 자연관’이 추상의 언어로 자리한다. 그녀의 화폭 속에 일렁이는 순연한 무작위와 억지 없는 자연스러움은 이러한 자연의 순환성과 맞물린다. 감정에 따라 스케치 없이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흩뿌리고 나이프로 물감을 덧바르거나 긁어내면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은 무의식이 이끄는 표현 의지인 무작위와 시간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움을 견지하는 조형 태도로부터 발원한다. 


자연 그리고...에너지 19603



II. 자연의 에너지 - 살아 있는 자발성 혹은 기(氣)의 세계    
장은하의 〈자연, 그리고... 에너지〉 연작은 작가의 마음과 감정이 이끄는 자발성(spontaneity)으로 촉발된다. 자발성이란 ‘타자의 영향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기 내부의 원인과 힘에 의하여 사고나 행위가 이루어지는 특성’이자, ‘자발적이고(spontaneous), 자연스러운 행동 방식(natural behaviour)’을 지칭한다. 즉 자연(nature)의 본성과 닮아 있는 무작위의 ‘자연스러운(natural) 속성’인 것이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본다면, 자발성은 재현과 모방론에서 벗어나려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전 유럽에 나타났던 표현주의 회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독일 표현주의’라는 특정 사조만이 아니라 고흐의 작업이나, 프랑스의 야수파, 독일의 신즉물주의에 이르기까지 표현주의 화가에게는 궁극적 회화란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즉 통제나 구속 없는 자발성의 표현이었다. 
자연이 내재한 에너지를 ‘회화화(繪畫化)’하는 장은하에게도 이러한 자발성은 주요하다. 빈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뜨리고 일필휘지의 붓질과 짧은 스트로크를 지속하는 행위는 순전히 자발적이다. 그것은 마음과 감정이 이끄는 지점을 따르고, 이성에 따른 계획과 설계를 거부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서 물감과 미디엄이 맞부딪히는 각양각색의 이미지나, 부조의 효과, 즉 물감의 중첩으로 인한 요철(凹凸)의 효과나 임파스토(impasto)와 카빙(carving)이라는 조형 언어는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 일련의 자발적 회화 행위 속에서 자연스럽게 귀결된 우연의 효과인 셈이다. 
자발성이란, 타의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행위 주체자의 자연스러운 마음이 이끄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로 피동성, 수동성에 반대되는 말로 사용되지만, 형이상학에서는 ‘관성(inertia)’과 반대되는 말로 사용된다. 그도 그럴 것이, 관성이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을 가리키면서 대개 행위 주체를 ‘물체’로 상정하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자발성은 ‘살아있는 주체의 내재한 힘’으로 정의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발성은 안정을 꾀하고 질서의 공고히 하기보다 끊임없는 변화를 도모하는 기제(機制)가 된다. 작가 장은하는 자연으로부터 ‘관성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인 생성, 소멸의 변화를 지속하는 자발성’을 발견하고 이것을 자신의 작업의 주요한 조형 언어로 삼는다. 
그렇다면, 장은하가 탐구하는 자연의 에너지란 무엇인가? 작가는 그것을 ‘생명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 삶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원동력’이자, ‘각자의 위치에서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마치 동양철학에서의 ‘기(氣)’와 같은 것이라는 점에서, 장은하의 작업은 자연의 에너지를 담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존재라 할 만하다. 역동적인 드리핑, 반복된 자발성의 붓질, 시간에 따라 중첩되는 물감의 마티에르, 응집과 확산, 채움과 비움 그리고 무의식과 자발성이 맞닥뜨리는 장은하의 작품은 이러한 자연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넉넉히 품어 안는다.   


자연 그리고…에너지 185011



III. 자연의 생명 - 변화무쌍을 수렴하는 명상 혹은 이(理)의 세계 
에너지란 “물리계가 활동을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지를 정량적으로 나타낸 것”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그것은 다분히 추상적이다. 우리는 에너지를 직접 인지하지 못하고, 빛, 열, 소리, 전기, 중력, 이동 등 변환의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 파동으로 시각화되는 에너지의 형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캔버스 안에서 풀어내는 작가 장은하의 연작 
〈에너지〉나 〈생명, 그리고... 에너지〉에는 〈자연, 그리고... 에너지〉 연작에서 발견되는 원형(圓形)이나 순환의 써클 이미지들이 더욱 더 전면에 등장하면서 에너지의 생명성을 강조한다. 
원형의 도상은 작가 장은하에게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혼합해서 표현된 크고 작은 원과 작은 점들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며, 다양하게 펼쳐진 선들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흐름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모든 연작에는 이러한 생명체의 도상과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구체적으로 분석할 때, 〈자연, 그리고... 에너지〉 연작이 대개 ‘확산’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면, 〈에너지〉나 〈생명, 그리고... 에너지〉 연작은 주로 ‘응집’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모든 연작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형의 도상을 작가가 ‘생명체’로 은유하고 있듯이, 원형이나 서클의 이미지는 마치 핵분열을 시도하고 있는 세포처럼 보인다. 향후 폭발할 것 같은 거대한 에너지를 가득 품은 ‘응집의 이미지’ 혹은 ‘잠재적 존재’처럼 말이다. 그녀의 작업에서 원형의 도상은 충만한 에너지의 잠재적 움직임을 가시화하기 위해 제시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모든 생명의 에너지를 가득 담은 어떠한 모상(母像) 혹은 가능태를 품은 모든 에너지의 원형상(原形像)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원형의 도상이 전면에 등장한  〈에너지〉나 〈생명, 그리고... 에너지〉 연작은 이(理)의 세계와 맞물린다. 성리학에서 사물의 질료적 측면을 기(氣)라 하고 원리적 측면을 이(理)라 하는 것을 상기한다면, 장은하의 〈자연, 그리고... 에너지〉 연작 속 휘몰아치는 선은 ‘기의 세계’를, 〈에너지〉나 〈생명, 그리고... 에너지〉 연작 속 원형 이미지나 순환의 써클처럼 표현된 동심원은 “우주의 본체 또는 사물의 원리 내지 법칙”이라는 ‘이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또한, 〈자연, 그리고... 에너지〉  연작에서 자발성에 기초한 일필휘지의 선묘와 자연스러운 무작위가 주도했다면, 〈에너지〉나 〈생명, 그리고... 에너지〉 연작에서는 생명 에너지의 변화무쌍을 수렴하는 명상과 같은 태도가 자리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다.  



IV. 에필로그  
‘자연으로부터 발견하는 생명 에너지를 탐구’하는 작가 장은하의 작업은 양과 음이 합해 오행을 낳는 도상인 태극(太極)의 원리처럼, 에너지에 관한 확산과 응집의 이미지를, 기와 이의 세계를 한데 품어 안는다. 가히 정중동의 회화라 할 만하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정중동의 철학 속에서 인간과의 상생과 공생 그리고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본성을 탐구한다. “상호 유기적 관계일 수밖에 없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작업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장은하가 직접 진술하고 있듯이, 그녀는 자신의 회화를 통해서 인간이 내쉬는 들숨과 날숨, 소우주 인간과 대우주 그리고 우주의 음양오행에서 음양처럼 대립항이 아닌 병렬항에서 양자의 상생과 공생의 조화를 탐구한다. 
그렇다면 예술의 영역에서 그러한 조화를 위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인가? 아서라! 예술에 무슨 특별한 해결책이 있겠는가? 창작의 장에서나 일상에서나 그저 나 아닌 것들과 상생, 공생을 탐구하고 도모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작가 장은하는 왜 이러한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주제를 계속 탐구하는 것일까? 작성 시기가 다른 그녀의 작가 노트 두 단락을 콜라주를 하듯이 오려 옮기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지구라는 별에/ 배낭여행을 왔습니다. (중략) 언젠가 이곳을 떠나는 날 / 꼭 한 가지 / 배낭 속에 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느낌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슬쩍 놓고 가는 작가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


출전/ 
김성호, 「정중동의 회화 - 자연의 생명 에너지로부터」, 『장은하』, 2021. 
(장은하, 최현희 2인전, 2021. 5. 14-6. 2,  아트필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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