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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박종숙 / 기억의 편린 - 현전하는/되는 마인드스케이프

김성호

기억의 편린 - 현전하는/되는 마인드스케이프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프롤로그
누구나 ‘그때, 그곳’의 기억을 지니고 산다. 때로 그것은 망각 속에 잠들지 못하고 추억이 된 채 가슴 속에 들어와 살기도 한다. 때로는 정겹고 포근하게 때로는 아련하고 애절하게 말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애틋했던 ‘그때, 그곳’의 시공간은 그렇게 ‘지금, 여기’에 소환되어 되살아난다. 그래서 기억은 망각 속에서 삐쭉이 머리를 내밀고 우리에게 되돌아와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기억의 편린-2-Mixed mediaX53-45.5cm-박종숙


I. 소환되는 기억, 살아가는 기억  
작가 박종숙은 유년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살면서 ‘그때, 그곳’의 시공간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소환한다: “생각하고 바라보고 뒤돌아보다. / 안타까움에 건져 올린 풍경. / 이제 나는 어른이 되어 마음 다 자랐지만 / 돌아보는 일 멈추지 않아. /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서로 손짓해 부르는 / 적막한 길 위에 오래 서서 기다리면 / 내게로 걸어오는 흐린 실루엣 있어.” 
그렇다. 붓질 속에서 떠올리는 유년의 과거란 흐릿하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시공간의 지점은 늘 흐릿하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유년 시절은 온통 우리에게 머리의 기억으로는 시공간의 좌표가 불분명한 아스라한 흔적일 따름이지만, 가슴의 기억으로는 망각으로 떨쳐내지 못한 선명한 무엇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박종숙이 가슴에 담아 떠올리는 유년 시절이란, 마치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언급하고 있는 ‘기억으로서의 의식’(conscience comme mémoire)이자 체험적 기억인 ‘순수기억’(mémoire purifiée)과 같은 것이다. 유년의 과거란 현재로부터 역순하여 분절되는 특정 시공간이기보다 생명과 물질의 지속적인 흐름 속에서 전체적으로 파악되는, ‘머리로는 어렴풋하지만, 가슴으로 선명한’, ‘그때, 그곳’에 관한 체험의 유산(遺産)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유년의 과거는 오늘의 우리를 '지속'(durée)하게 하는 동력이자 ‘지금, 여기’를 성찰하게 만드는 발화체인 셈이다. ‘옛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현실에서는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지금 시점에 다가오는 그 무엇’으로 간직되는 탓이다. 유년의 과거는 피상적으로 이미 죽은 존재인 것처럼 보이나, 우리의 심층 어딘가에 깊이 잠재하고 있던 상태에 있다가 일련의 사건을 맞닥뜨리면서 현실계로 ‘현전하는/되는’ 존재다. 그것은 현실의 지평으로 튀어 나오는 실재인 것이다.   
작가 박종숙은 ‘회화 창작’이라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가슴에 품은 오랜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현전하는/되는’ 추억을 되새김질한다. 물질이 가난했어도 마음이 풍요로웠던 가족과 정겨운 이웃 그리고 어린 시절 상상의 터전이었던 자연과 동네의 풍광은 그녀가 장성해 청년이 되고, 중진이 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캔버스 앞에 자리한 그녀의 마음속에 언제나 불러들이고 끊임없이 마주치는 과거의 지평이다. 
작가 박종숙에게 ‘소환되는 기억’이란 베르그송 식으로 ‘체험적 기억’인 ‘순수기억’이었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남아있는 유년 시절의 기억, 즉 작가와 작품 속에서 ‘살아가는 기억’은 베르그송 식으로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즐겁고 아름다웠던 / 혹은 슬프거나 쓸쓸함으로 가득한 / 이미지들”로 화폭에 소환된다. 

“그리운 그곳에서 내 그림일기는 시작됩니다. / 때로 천둥 울고 또 봄비 넉넉해지면 내 여린 걸음이 / 찾아가 보지 않은 곳, 어루만져 보지 않은 곳이 / 없었던 순수의 시절에는, / 마을의 선량한 사람들, 그들의 작은 집들 너머로 / 한 마리 들쥐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 유성이 지나간 그 밤하늘의 조용함과 촛불 하나만으로도 / 모든 것이 넉넉한 총명하고 예민한 나의 유년이 있었음을. / 아득히 먼 시절이 캔버스에 옮겨졌습니다.”



기억의 편린-박종숙(20F)60.6X72.7cm-Mixed media


II. 현전하는/되는 마인드스케이프 
작가 박종숙에게 있어, 캔버스에 옮겨진 채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유년의 기억은 어떠한 형상인가? 그것은 한편으로 낮은 산과 들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 마을 풍경처럼 정겹고 낯익은 모습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환상이 일렁이는 동화 속 풍경처럼 비현실적이고 ‘어디가 어디인지 알 길 없는’ 꿈속에서 본 듯한 몽롱한 모습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감돌던 어휘들을 가만히 들춰보아요. / 추억, 여우굴, 신작로, 연기, 미루나무 그리고 그들과 엮어진 시간, 시간들... / 그 순결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내 속에서 걸어 나와 형상이 되려고 해요. / 지난날 함부로 꾸던 꿈들이 모여 있는 저 하늘 어딘 가에도 사다리 세워놓고 올라가 볼까 해요.”
유년의 순결과 순수로부터 잉태하는 형상은 담백하다. 무엇이 보태지고 구체화되는 것을 처음부터 거부한다. 그 많은 이미지 속에서 유년의 눈과 호응하는 이미지의 정수만 가슴에 남아 자리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살펴보자. 
박종숙의 ‘기억의 편린(片鱗)’ 연작은 구상에 기초하되 비구상을 오간다. 그것은 풍경이면서 비풍경이기도 하다. 동양화에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부감법(俯瞰法)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은 ‘시점과 소실점을 동시에 상정한 투시도법’에 기초한 서구의 원근법과는 확연히 다른 조형 방식이다. 과학적 투시에 의한 원근보다 심적 인지에 따른 원근 정도를 드러내는 까닭에 그녀의 풍경은 실제 풍경의 투시와는 다른 굴곡이 있고 비뚤비뚤한 구도와 자유로운 형상을 낳는다. 그것은 보는 것보다는 기억하는 것(혹은 아는 것)을 그리는데 골몰하는 어린아이의 그림과 같은 단순한 형상을 만든다. 생각해 보자. 어린이가 대상을 지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더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서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모두 빼버린 채, 필요한 부분만 ‘남겨두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유년기의 지각 행위는 관심 있는 이미지만의 생존을 귀결시킨다. 
작가 박종숙은 가슴에 담은 유년의 기억을 추적하면서 일견 아동화처럼 단순한 화면을 구축한다. 그녀의 회화가 사물과 풍경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이미지(image)를 지향하기보다 대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심적 인지 자체가 주요한 이미저리(imagery)를 지향하는 까닭이다. 이미저리란 “육체적인 감각이나 마음속에서 발생하여 언어로 표출되는 이미지의 통합체”를 지칭한다. 흔히 심상(心像)으로 번역되는 ‘내적 형상’인 이것은 ‘마음으로 그리는 이미지’, 즉 심안으로 그리는 이미지와 같은 것이다. 박종숙이 주로 유년기의 기억으로부터 소환하는 풍경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로 부르기로 한다.    
박종숙의 마인드스케이프에는 두터운 유화 물감이 자리한 경계 사이로 풍경의 외곽을 추적하는 목탄으로 남긴 가느다란 선이 숨을 쉰다. 하늘과 땅을 나누고 얕은 구릉과 마을을 나누는 가느다란 검은 선. 그것은 때론 물감으로 뒤덮이고 채워지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화면 속에 남아서 숨을 쉰다. 구불구불한 목탄의 경계선들이 산, 강, 나무, 길을 나누고 단순한 화면을 구축한 반면에, 그 경계 언저리에 올라서는 물감층들은 창작의 노동과 그 시간의 깊이를 섣불리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변화의 진폭을 선보인다. 때론 표현주의 언어로 거친 붓질이 휘몰아치기도 하고 때론 롤러로 넓은 화면을 뒤덮거나 나이프로 스크래치를 내기도 하는 가운데, 작가의 화면 안에는 그리기와 지우기, 쌓기와 허물기, 더하기와 빼기라는 대조적인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조형 언어가 무수히 교차한다.
물감의 덮기와 스크래치를 중첩하는 이러한 조형 전략은 단순한 면을 단순한 상태로 남기지 않고 시간의 깊이를 더하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다. 이처럼 작가의 ‘단순함 속 다양한 조형 언어’는 시간의 중첩을 가시화하는 화면과 더불어 흐릿함과 선명함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화면을 창출한다. 이러한 화면 효과는 유년의 기억을 소환시켜 ‘지금, 여기’에 현전하게 한다는 주제 의식을 시각 예술로 실현하기에 제격인 셈이다.   
한편 여러 층의 물감과 미디엄을 쌓고 부수는 다양한 조형 언어를 통해 무심한 듯 질박한 화면을 창출한 박종숙은 동판을 오려 화면에 부착한 실제의 콜라주를 통해서 작품 속에 또 다른 마티에르를 창출한다. 동판 콜라주는 대개 풍경에 위치한 단순한 나무 형상일 경우가 많은데, 작가는 콜라주 위에 물감을 얹고 다시 스크래치를 통해서 금속성의 동판의 질료를 일부 드러냄으로써 물감층이 이룬 질료와 상응하는 대비를 이루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또한 시골의 전원을 물씬 드러내는 색감은 어떠한가? 황토색을 중심으로 한 난색과 초록의 풍광을 중심으로 한 한색이 서로 조화를 이룬 가운데, 원색으로부터 기인한 2차적인 중간색이 풍경 콜라주처럼 자리한 그곳에는 시골의 전원 풍경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도예 전공을 했던 작가의 흙에 관한 관심이 회화 안으로 유감없이 전이된 셈이다. 


기억의 편린-박종숙(30F)91X72.7cm-Mixed media


기억의 편린-박종숙-72.7x60.6cm-Mixed media


III. 에필로그  
박종숙의 마인드스케이프는 가히 ‘풍경화 아닌 풍경화’라고 할 만하다. 즉 ‘재현적 기술에 의한 풍경화가 아니라 심안에 의한 풍경화’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작품이 기억의 편린이라는 주제 의식으로 어린 시절에 깊이 각인되었던 시공간을 소환하고 ‘지금, 여기’에 ‘현전하는/되는 것’이되, 그것이 ‘현실/비현실’의 경계에서 ‘작동한다/된다’는 점이다. 
화면 속 얕은 능선을 가르는 구불구불한 선으로 그려진 길, 그 끝에 닿는 빨간 점으로 형상화된 산속 터널, 호수의 표면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반영 효과는 유년기에 의문이 풀리지 않는 신비한 무엇이었다. 작가가 유년기에 맞닥뜨렸을 이러한 신비로움, 궁금함 혹은 두려움과 같은 마음의 상태가 화면 위에서 유영하는 것을, 관심을 기울이는 관객이라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념할 것은 의식의 심층에 잠재되었거나 마음속 어디에 심상으로 남겨졌던 이러한 유년기의 기억을 ‘지금, 여기’에 소환하는 박종숙의 회화는, 현실/비현실의 경계의 어떤 지점에 그것을 풀어놓음으로써, 자신의 마인드스케이프가 어떠한 구체적인 사건의 현현이기보다 작가의 유년 기억을 관객과 공유하는 유년기의 기억으로 보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가는 ‘머리로는 어렴풋하지만, 가슴으로 선명한’ 어떤 기억으로 말이다. ●

출전/
김성호, 「기억의 편린 - 현전하는/되는 마인드스케이프」, 『박종숙』 카탈로그 서문, 2020
(박종숙전, 2020 3.11-4. 11, 유리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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