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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반│비엔날레 문법

김성호

비엔날레 문법


김성호(미술평론가)

사무국장 마리아 산투스의 번민  
여긴 남미의 어느 나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올해 가을 비엔날레가 펼쳐진다. 감독은 한국 출신의 40대 중반의 최고집! 그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몇 곳에서 비엔날레 감독을 거쳐 최근에 유럽의 한 메이저 비엔날레에서 공동 감독을 한 번 했던 경험으로 세계 각지에서 온 쟁쟁한 후보를 물리치고 최종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세계 비엔날레를 휩쓸었던 영국 출신의 저명인사, 대륙별 네트워킹으로 팀을 꾸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공동 기획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의 신예 기획자는 고배를 마셨다. 최고집이 최종적으로 감독이 된 까닭은 화상 면접에서 호평을 받은 나름 신선한 기획안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작 다른 이유가 더 컸다. 다른 지원자와 달리 감독 위촉과 동시에 국내에 들어와 장기간 상주하면서 전시를 꼼꼼히 준비하겠다는 열정을 피력한 것! 그는 체류비 지원도 마다하고 한국 교민의 집에 거주하겠다고 했고, 수십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한 푼도 받지 않고 모두 전시비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대폭 삭감된 비엔날레 예산’을 고려한다면 이처럼 작은 도시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의 조직위와 심사위원에게는 솔깃한 제안이었을 게다. 
그런데 사무국장 마리아 산투스는 최고집이 감독 계약 이후 엉뚱한 제안을 해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기획안에 없던 한국인 큐레이터를 2명이나 쓰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아시아 특별전을 한국 특별전으로 바꾸어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 작가를 떼거리로 초청하고, 그들 중 몇 작가의 초대형 작품을 필히 항공편으로 운송하겠단다. 다른 나라 작가들은 개념미술이나 퍼포먼스로 뭉쳐 내더니만, 아니, 이게 한국 비엔날레란 말인가? 




감독 최고집의 오만과 편견 
한 달 전, 계약을 완료하고 남미에 자리를 튼 최고집에게 한국발 소식이 들려온다. 그가 해외 비엔날레에서 감독이 된 사건 자체가 한국 큐레이터 후배들이 발돋움하는데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인들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각종 미디어에서 대서특필한 모양이다. 특히 그가 국내 유력 기업인의 2세이며, 4개 국어를 구사하는 능력과 더불어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전문 기획자로서 해외 비엔날레 현장에서 부상하고 있는데, 이번 비엔날레에 한국 작가를 대거 소개하기로 해서 국내 문화예술계의 기대가 엄청나단다. 
그런데도 최고집의 기분은 별로다. 얼마 전부터 사무국장 마리아 산투스를 위시한 조직위에서 사사건건 자신의 기획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지는 비엔날레를 한국 비엔날레로 만들지 말라는 것! 젠장! 연봉도 전시비로 기부하고 남미의 허접한 비엔날레를 최고의 비엔날레로 만들겠다는데, 감히 감독의 순수한 의지를 폄훼하다니! 한국 특별전이 무슨 문제인가? 감독이 원하는 대로 진행하는 거지. 어제도 사무국장과 한바탕했는데 그에겐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이다. 
그는 안다. 자신이 ‘있는 부모’ 아래 태어나 조기유학을 통해서 스위스, 일본, 미국의 유명 학교를 두루 거치며 엘리트 코스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뼛속 깊이 ‘가난을 딛고 작업을 지속하는 열정적인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것은 모친의 뜻밖의 죽음으로 깨닫게 된 ‘새로운 삶의 신조’였다. 특히 재력과 학맥 그리고 인맥으로 얽힌 채 유명세를 덩달아 거머쥔 떨거지들 말고, 현재는 무명이지만, 어려움을 딛고 분투하는 천재적 재능의 역량 있는 한국과 아시아 작가들을 이번에 대거 발굴, 소개하고 싶었다. 
아! 복병은 도처에 있다. 아티스트피를 엄청나게 요구하는 유럽과 미국의 몇몇 유명 작가들을 제쳐놓고, 남미의 국제전에 한 번도 소개한 적 없는 제3국 작가들 위주로 명단을 정리하는 중에 최고집의 이메일과 스마트폰으로 세계 각지의 지인들로부터 새로운 메시지들이 도착한다. 그는 그 속에서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수십 통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자신 혹은 누구누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의 한국어 메시지들! 아뿔싸! 누구는 그것이 다 ‘비엔날레 문법’이라고 하던데, 최고집은 어떻게 답을 할지 ‘목하 고심’ 중이다.  

* 이 글은 팩션(faction)이다. 

출전/
김성호, 「비엔날레 문법」, 『서울아트가이드』, 2021.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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