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평론 일반│ (전체본) 수원 지역 전시 공간에 대한 연구/ 수원시립미술관

김성호

수원 지역 전시 공간에 대한 연구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머리말 
 이 글은 1957년 수원문화원 개관 이후 2015년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 개관 전까지 수원 지역의 전시 공간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다만 이 글은 상기의 주제와 관련한 다양한 세부적 연구를 도출하기 위한 기초 연구를 지향한다. 주로 사적 기술을 전제로 하고 각 공간이 지닌 의미들을 기술하는 차원에 집중한다. 


I. 1950년대 말-1960년대의 수원의 전시 공간 
 수원문화원이 개관하기 이전까지 미술가들을 위한 본격적인 전시 공간은 부재했다. 수원 출신의 최초 여류 서양화가인 정월 나혜석이 1929년 9월에 용주사 포교당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1929년 4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수원지부가 결성된 후 1930년 3월 26일에 《제1회 프로미전》을 수원극장과 그 앞 거리에서 열었던 만큼, 미술 전시는 미술 외 기관이나 단체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수원문화원은 수원 팔달구 매산로에 위치한 벽돌조 2층 건물로 현재는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미술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0년대 기록에서 이 건물 안에 조선중앙무진회사 수원지점이 있었다고 나오지만, 1930년대 주요 업체 목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정확히 언제 어떤 경로로 지어졌는지는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이 건물은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97호로 지정된 만큼 당시에 근대적 건축 기법이 우수한 건물로 가치가 있다. 지상 2층의 벽돌 건축물로서 평면은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창호 몰딩을 조적 벽체보다 돌출시켜 입체적으로 구성하였고 정면의 창호에 꽃봉오리 모양을 장식하여 정면성을 강조하는 등 장식적 요소가 많다. 
 수원문화원은 1957년 개관 이후부터 2007년까지 이 건물을 사용하면서, 훗날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수원 화성과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수원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향토 문화를 진작하는 데 주력했다. 건물의 일부가 전시장으로도 개방되었는데, 규모는 작아서 본격적인 전시장으로 쓰기에는 부적합했다. 다수의 작가는 이곳에서의 전시를 원했지만, 설립 목적인 ‘지역문화의 계발 연구 조사 및 문화진흥’에 집중하고 ‘국가의 문예 진흥 사업과 정책 홍보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거나 주로 단체를 위해 제공되었기 때문에 개인 작가들이 작품 발표를 위해서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시기에 개인 미술가들은 주로 명선다방에서 전시하거나 금강산다방, 봉선화다방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수원 미술인이 수원문화원을 본격적으로 쓸 수 있게 된 것은 1964년 3월 22일 미술협회 수원지구회를 결성하고, 1964년 《제1회 수원미협회원전》을 이 공간에서 개최하고 나서부터이다. 수원미협은 결성된 이후 주로 야외 스케치, 국전 입선 축하회,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서양미술 감상법, 미술 세미나, 탁본 실기, 사군자, 동양화, 조각 연수회, 초·중·고 사생대회 등과 같은 소규모 행사에 그치는 것들이었다.
 이처럼 전시는 회원전이 거의 유일했고, 친목과 교분을 나눌 수 있는 행사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열악한 문화 환경을 고려하면, 협회의 결성과 회원전 개최만으로도 미협의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1965년 미술협회 수원지구회 인준을 거치고 1966년 예총 수원지구회를 결성한 후 수원미협은 1966년 10월 15일 미협 수원지구회 현판식을 하기에 이른다. 창립기 회원은 8인 정도였으며 이들의 전시는 금강산다방 등에서 개최되었고 당시 정기 회원전은 수원문화원 전시실 등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2대-5대 지부장(1966-1979)을 맡았던 김학두는 수원에 미술인을 위한 전용 전시장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실현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의 노력은 일상의 공간을 전시장화하고 시민의 미술에 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수원역 광장, 남문거리, 백화점, 문화원, 진흥청 등에서 이어지는 미협 전시가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II. 1970년대 수원의 전시 공간   
 훗날 거대 단체로 성장한 미협의 수원지구가 전시 공간을 여러모로 모색하면서 미술가를 위한 전시 공간의 필요성을 초래했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수원에서의 자생적인 미술 그룹은 이러한 전시 공간의 다각화를 본격적으로 실행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77년 12월에 창립전 《S.S전》을 개최한 그룹 S.S는 수원의 첫 단체로 기록된다.
 다만 이 전시는 수원의 고등학교를 1977년 졸업하고 전국의 미술대학에 진학한 1학년 재학생들로 구성된 이들의 첫 그룹전이었다는 차원에서 다분히 친목 모임의 성격이 강한 임시 그룹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단체의 활동은 창립전을 끝으로 해체된다.  
 본격적인 미술 소그룹 활동은 1978년 결성했던 단체인 경기청년작가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그룹은 당시 크로바백화점 전시실을 주요 전시 공간으로 삼아서 활동했다. 구성원은 권용택, 김성배, 이선열, 백일현, 이종관, 박용복, 남부희, 김철규 등 당시의 신진 작가들이었다. 이들 중 권용택, 박용복, 남부희가 주축이 되어 지역 화단과는 거리를 두고 있던 중견 작가 김인겸을 영입하면서 단체를 결성하고, 1979년 《경기청년작가회 창립전》을 1976년 개관한 크로바백화점 전시실에서 개최했다. 이 전시 공간은 경기청년작가회가 당시 미협 위주의 활동에 반기하고 척박한 수원 미술 현장을 개선하고 새로운 전시 공간을 개척하려는 노력의 한 결과였다고 하겠다. 새로운 전시 공간을 모색하려는 경기청년작가회의 당시 노력은 다음 글에 잘 나타나 있다: 

“기존의 미협 중심의 폐쇄된 미술 구조와 아울러 지역이라는 한계로 인해 당시 수원의 미술계는 젊은 미술인들이 자율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작업 활동을 펼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열악한 창작 조건과 전시 공간의 부재는 본격적인 미술 활동을 위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1970년 당시에도 수원에는 본격적인 전시 공간이라 할 만한 곳이 없었다. 크로바백화점 내 전시 공간 외에 매산초등학교 강당, 수원 쇼핑화랑, 선화랑, Y-하우스 외에 돌체 음악감상실 등이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1970년대에는 1960년대부터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금강산 다방 외에도 국제다방, 돌체 음악감상실 등 몇몇 다방들이 여전히 전시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 외에 34평 규모의 수원시민회관 임시전시실(1971-1972)이 개관하였지만, 임시라는 이름에서처럼 여전히 작가들의 수요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외에도 크로바백화점(1975-1990), 삼원백화점(1977-1981), 소라백화점(1979-1980), Y-하우스(1975-1990)가 있었다.
  특히 1970년대의 크로바백화점 전시실은 《크로바백화점 미술 실기대회》를 개최하고, 1990년까지 전시실을 운영하면서 수원 미술인들의 사랑을 받는 전시장으로 당시 수원의 대표적인 전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수원에서 화랑과 같은 전시 공간 개념은 1970년대 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III. 1980-1990년대 수원의 전시 공간 
 
 수원 미술인들을 위한 전시 공간이 태부족이었던 1960-1970년대와 달리 1980년대는 많지는 않지만 새로운 전시 공간이 생겨났다. 기존의 수원문화원 전시장과 크로바백화점 전시실 외에 명선다방(1981-1982), 수원백화점(1982-1985)과 같은 전시 공간이 생겨났다. 또한 팔달전시장(1980-1981), 수원쇼핑전시장(1981-1985), 화홍예식장 전시장(1981-1982), 공간사랑(1982-1987)과 같은 다목적 전시장도 생겨났다.
  이러한 중에 주목할 만한 것은 1981년 김성배가 수원에 만든 ‘안드로메다 미술연구소’였다. 그는 이 장소를 기점으로 1984년까지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 활동을 지속하고 지역의 청년 작가들에게 전시 공간으로 제공함으로써, 수원 지역의 실험적인 미술 운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전문적인 전시 공간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였다. 1986년 팔달로에 열었던 선화랑과 1989년 팔달구에 개관한 정화랑이 그것들이다. 대관 화랑의 성격이 컸지만, 당시의 수원의 미술 현장에서는 새로운 전시 공간의 대두를 여는 시발점이 된 공간들이라 하겠다. 
 특히 1988년 임원 개선에서 수원미협 10대 지부장에 권대균이 선임되면서 1989년 미협의 자체 사업으로 《제1회 수원예술제》가 열리게 되는데, 한 달이 넘는 전시 기간 동안 여러 전시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수원 초유의 사건으로 특기할 만하다. 1회 수원예술제에서는 수원문화원 전시실, 크로바 백화점 전시실은 물론이고 선화랑, 정화랑 외 많은 전시 공간에서 《경기현대미술작가회》, 《일구팔이일이회전》, 《새벽》, 《신인작가전》, 《수원지역미술학우회전》 등 많은 전시가 동시에 열렸다.
 1990년 미술인에게 전시 장소로 인기를 끌었던 크로바백화점 전시장이 문을 닫기에 이르렀지만, 수원 미술 현장은 1회 수원예술제의 여파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또 다른 전시 공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1991년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이라는 공적 기관 외에도 사립으로 열린 장안미술관, 남갤러리, 갤러리 수원, 이음갤러리가 그것이었다.   
 특히 퍼포머이자 실험미술가인 이경근이 대표로 있었던 장안구 신풍동 소재 장안미술관은 수원의 퍼포먼스 미술 단체인 컴아트 그룹을 탄생시킨 요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수원미술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 그룹은 경기현대작가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경근, 김석환, 허종수, 황민수, 홍오봉 등이 참여해서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 실험 예술을 전개해 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수원발 국제전의 물꼬를 트는 전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993년 《장안문에서 천안문까지》, 1995년 《북경교감예술제》, 1996년 《수원국제교감예술제》, 1998년 《국제교감예술제》 등이 그것이었는데, 이경근의 그룹 탈퇴로 사실상의 해체를 맞이하게 된다.
  크로바백화점을 대신한 것으로 평가되는 백화점 내 전시장도 생성되었다. 1992년 인계동에 하이웨이 동수원백화점과 1994년 뉴코아백화점이 개장하면서 만들어진 전시장이 그것이다. 1994년 개관해서 구상 작품의 상설 전시 기획에 집중했던 갤러리 울은 계간지마저 발간하면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또한 1995년에 문을 연 진솔갤러리는 작품의 판매보다 신진 작가 지원을 지향했다. 1995년 문을 연 연화랑은 주로 판화를 다룬 갤러리였다. 또한 병원 안에 만들어 전속 작가 제도를 운용했던 갤러리 그림시에서 1997년에 전시 기획자 이섭이 기획했던 《문화유산전》을 모태로 1998년 아트페어 형식의 부스전인 《수원화성 아트 쇼》가 개최되면서 수원의 미술 현장에 활력을 더했다.
 한편 1990년대 초 이윤숙과 함께 결성한 슈룹의 리더인 김성배는 1995년 2월 슈룹조형연구소를 설립하고 1996년에는 활동의 기반이 될 슈룹아트넷이라는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1997년 개명된 갤러리 아트넷으로 이어지기까지 김성배, 이윤숙, 김정집, 곽규진 등이 공동 운영하면서 전시 외에도 다양한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했다.  
 이처럼 1980-1990년대의 수원의 전시 공간은 대개 작품을 판매하기 위한 상설 화랑이나 전시 공간을 대여하는 대관 화랑이었으나, 장안미술관이나 슈룹아트넷의 경우처럼 작가들이 연합해서 전시를 펼치기 위한 전시 공간으로 구축되기도 했다.  
 한편, 남부희가 12-13대 지부장을 맡았던 수원미협은 전국 규모의 주요한 전시회를 주제별로 나누어 개최했는데, 1997년 《제1회 수원 나혜석미술대전》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월북 해금 작가 《이쾌대 유작전》을 특별 기획전으로 주최하였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원 순회전을 주관하여 개최하였는데, 이 전시와 관련하여 미술관 건립 기금을 위한 부대 행사를 개최하여 360만원의 기금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는 훗날 수원미술전시관을 개관하는 데 있어 큰 동력이 된다.
 

IV. 2000년대 이후 수원의 전시 공간 

 2000년대 전시 공간 연구에서 중요한 사건은 2000년 10월 수원미술전시관의 개관이다. 이선열이 수원미협의 14대 지부장을 맡고 있던 1990년대 가구와 가전제품을 재활용하기 위해 건축했던 수원시의 재활용센터가 IMF로 인해 효용성이 사라지자, 1998년 미술협회 건의에 의해 수원시가 미술전시관으로 용도 변경함으로써, 수원 미술인들의 숙원이 현실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2000년에 개관하기에 이른다.   
 한편 수원미협이 이석기 지부장 시절인 2003년부터 수원미술전시관 위탁 관리 운영을 하게 되면서 점차 전문적인 전시 공간으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수원예총이 위탁 관리를 했었으나, 불미스러운 일로 위탁 관리가 해제되었고, 다음 위탁 업무를 수원미술협회가 맡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협회의 숙원이었던 협회 사무실과 미술 전시를 위한 전용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부터 수원미술협회는 다른 미술협회와 달리 거대 조직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다만, 수원미술협회의 소유로 수원미술전시관의 위탁 관리에 집중하기보다 수원 미술계의 소유라는 인식을 통해서 경쟁 단체였던 수원민미협의 기획전을 초대하기도 했다. 또한 강상중이 제16대 지부장에 취임했을 때, 2004년 수원미술전시관에 김성호, 정유진 등 전문 큐레이터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서 기획의 전문성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한편 미술인을 위한 전시 전용 공간인 수원미술전시관이 확보되었지만, 또 다른 미술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한 중에 개관한 어린이미술체험관은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 예술 교육 양양이라는 취지에서 꼭 필요한 공간이 되었다. 수원 미술인들에게 더욱 주요한 숙원 사업은 수원시립미술관 건립이었다. 수원 미술인들은 미술관 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다수의 기금을 마련을 위한 전시를 개최하여 수원 시민들과 교감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2000년 이후에 열린 대표적인 전시 공간은 2000년 갤러리 쿠이, 2001년 이영미술관, 2005년 수아아트스페이스와 대안공간의 시스템을 도입한 대안공간 눈이 개관하였다. 대안공간 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영리 공간 지원에 힘입어, 신진 작가 발굴 및 여러 전시의 개최뿐 아니라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 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 행궁동의 도시 재생을 위한 벽화 골목 조성, 국제 레지던시를 진행했고, 행궁동 레지던시와 행궁마을 커뮤니티아트센터를 운영했다. 이로 인해 정부의 전국 대안공간 평가에 있어 수위를 차지하고 2011년에는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대안공간 10주년을 맞이해서 예술공간 봄을 새롭게 개관하기도 했지만, 2018년 예술공간 봄만 남겨 두고 대안공간 눈은 폐관하게 되었다. 대안공간 눈은 폐관하기까지 10년 동안 5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12년 작가 장혜홍이 섬유 예술과 현대예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행궁재, 2013년 작가 이해균이 수원시 최초 사립미술관을 표방하면서 개관하여 지역의 현대 미술 소개에 집중하는 해움미술관, 2015년 실험미술의 전초 기지로 개관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2019년 폐관한 실험공간 UZ 등은 대표적인 최근의 전시 공간이다. 특히 실험공간 UZ은 2017년부터 연대, 공유, 동행의 정신으로 예술정치-무경계 프로젝트를 전국 각지에서 행하고 그 결과보고전을 개최했는데,  2019년에 마무리하기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전국 단위의 실험미술을 펼치는 수원의 전시공간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이 네 공간은 2017년 공동 프로젝트인 《수원 아트스페이스 프로젝트》를 통해서 7월 한 달간 총 32명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 동시대 미술에 관해 토론하고 동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 《수원 아트스페이스 프로젝트》는 향후 수원 미술 현장의 장기적 발전을 견인해 내기 위해 ‘전시 공간으로부터 미술 공간’으로 거듭나는 ‘통합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행보였다. 
 한편, 2016년 6월 (구)서울농대 부지 내 캠퍼스 시설물을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리모델링하여 개관한 경기상상캠퍼스나 인근의 서울대 농대 실험목장 부지에 2020년 개관한 수원아트스튜디오 푸른지대창작샘터는 새로운 전시 공간과 창작 레지던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현재 수원에, 전시 공간으로는 경기대학교박물관, 아주대학교박물관, 동남보건대학박물관, 수원미술전시관, 지도박물관, 수원화성홍보관, 수원박물관(2008- ), 수원화성박물관(2008- ), 어린이미술체험관(2008- ), 어린이생태미술체험관 풀잎(2011- ) 등이 있다.
 여기서 경기대학교박물관, 아주대학교박물관, 동남보건대학박물관 등은 대학교 내에 건립된 박물관이기 때문에 수원의 고유함을 담았다고 보기에는 무리라고 할 것이다. 또한 지도 박물관 역시 국토지리정보원이 특수 목적을 갖고 만든 박물관이기 때문에 수원시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어린이미술체험관, 어린이생태미술체험관 풀잎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체험 위주의 미술관이므로 순수한 미술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는 부적합하지만 이러한 공간들 또한 시민의 문화 향유권에 상당 부분 부응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수원의 순수한 미술 전시 공간으로는 수원미술전시관, 예술공간 봄, 복합문화공간 행궁재, 해움미술관을 비롯해서 다양한 미술 전시 공간들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수원 미술인들이 오랫동안 설립을 염원했던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2015년에 개관하고, 그 부속 기관인 아트스페이스 광교가 2019년 개관함으로써 풍성한 미술 현장을 만들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 


맺음말  

 수원화성(華城)이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전통의 문화도시 수원에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 시설들이 배치되어서 나름의 균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성 건의안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는 화성행궁 주변의 한옥마을, 전통/현대의 산물로서 활성화가 추진되고 있는 행궁동의 공방길 그리고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다양한 공연 시설과 함께 앞서의 미술 전시 공간들을 통해서 다양한 문화 예술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수원미술인들에게 숙원이었던 수원시립미술관의 설립은 이미 실현이 되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수원을 예술 활동의 거점으로 삼는 수원 미술인들을 위한 건강한 유형의 미술 생태계가 일정 부분 구축된 지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문화산업적 차원에서 근접한 물리적 공간 속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할 ‘커뮤니티 클러스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 셈이다.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전시 공간이라는 하드웨어적 생태계 구성뿐만 아니라 그것이 창출하는 소프트웨어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모색을 병행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

* 주석 생략.  

출전/
김성호, 「수원지역 전시 공간에 대한 연구」, 『수원미술연구 제 4집』, 수원시립미술관, 2020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