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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일반│비조각 담론의 큐레이팅 –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 미술이론학회

김성호

비조각 담론의 큐레이팅 –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김성호(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I. 주제 - ‘비조각 - 가볍거나 유연하거나’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행사 주제로 ‘비조각 - 가볍거나 유연하거나 (Non-Sculpture - Light or flexible)’를 제시한다. 여기서 ‘비(非)조각’은 이름처럼 ‘조각이 아닌 무엇’이다. 이 용어는 조각이 시도하는 ‘자기 부정’의 과정이자 결과를 의미한다. 자신을 부정하게 되면 자기와 다른 것들을 자신과 유사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조각이 아닌 사물, 자연, 에너지, 예술’ 등 모든 개념을 포함한다. 
한편, 비조각은 미술사에서 ‘탈경계의 조각’ 혹은 ‘조각의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던 ‘현대 조각’의 또 다른 표현이다. ‘비조각’의 숨은 의미는 ‘다양한 조각’과 같은 개념을 공유한다. 즉 이 용어는 ‘덩치가 크고 견고한 전통적 조각’의 속성 너머에서 가져온 ‘모든 조각’을 의미한다. 비엔날레 주제인 ‘가볍거나 유연한 조각’을 포함한 ‘모든 조각’을 품는 통합의 담론인 셈이다.  


II. 주제어 - 비조각
2020창원조각비엔날레의 비조각 담론의 주제는 다음과 같은 세 곳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첫째로,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미술사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확장된 영역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1979)이라는 논문에서 풍경과 건축이 조각과 만나는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서 비풍경(not-landscape), 비건축(not-architecture)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던 기호학적 방법론을 변용하여 만든 것이다. 즉 조각이 만나는 풍경과 건축을 부정하기보다 조각 스스로 ‘자기 부정’을 꾀하고 ‘자기 성찰’을 꾀해보자는 제안이다. 여기 크라우스가 만든 도표를 살펴보자. 



Rosalind Krauss, “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 1979.

조각은 풍경과 건축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질적인 것들을 잘 어울리게 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풍경과 건축을 부정(not)의 방법론을 통해서 조각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 주는 것과 같은 중성화(neuter) 전략이다. 풍경, 건축으로부터 비풍경, 비건축이라는 ‘모순적 관계’를 만들어 중성화를 시도함으로써 조각과의 만남을 어렵지 않게 성취하는 것이다.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이러한 방법론에 ‘조각’ 스스로 ‘자기모순을 통한 자기 부정’을 거쳐 ‘자기반성을 통한 자기 성찰’을 함유하는 ‘비조각’이 됨으로써 다른 것들과 비슷해지는 중성화를 시도한다. 너에게 변하라고 권유하기보다 내가 먼저 변해서 만남을 시도하는 착한 비엔날레를 의도하는 셈이다.      
둘째로,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한국 조각가 이승택(1932~ )이 「내 비조각의 근원」(1980)이라는 에세이에서 서구의 근대 조각의 유산에 저항하면서 ‘조각을 향한 비조각적 실험’을 천명했던 ‘비조각’이라는 개념을 계승한다. 이승택은 1950년대 말~1960년대의 앵포르멜 회화와 1970년대의 단색화가 주도하는 한국의 주류 미술 현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펼쳤던 작가이다. 그는 당시 전통적인 조각 재료보다 새끼줄, 밧줄, 어망, 헝겊, 천 조각, 머리털, 깃털, 돌멩이, 부표 등 각종 비조각적인 오브제를 조각의 재료로 삼아 설치의 조형 언어로 ‘비조각적인 조각 실험’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셋째로, 비조각이라는 용어는 넓게는 동양과 한국의 ‘비(非)물질의 미학’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이번 비엔날레에서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개념이다. 비물질은 사전적 정의로 “물질이 아닌 것”을 지칭한다. 비물질은 물리에서 “에너지, 시간, 운동성 따위를 이르는 말”로 전통적인 조각  재료가 아니다. 서구의 20세기 미술에서 이러한 비물질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1960~1970년대의 개념 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등이 그것이다. 대개 물질적 요소를 비물질적인 재료로 대치해서 미술화하거나 물질을 거부하고 정신성을 지향하는 경향으로 나타난 이러한 서구의 미술 흐름은 원래 오래된 동양적 사유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기(氣), 도(道)와 같은 무형의 에너지뿐 아니라 무(無), 공(空)과 같은 부재와 맞물린 존재론, 이(理), 화(和)와 같은 질서의 우주론은 비물질과 연동하는 주요한 동양 미학이다. 


III. 주제 구성과 의미 
2020창원조각비엔날레의 주제어 비조각을 잇는 또 다른 주제어 ‘가볍거나’와 ‘유연하거나’는 무엇인가? ‘가볍거나’는 ‘비조각의 형식’을 의미하는 말로 마련되었다. 풀어 말하면 ‘기념비처럼 덩치가 큰 조각’이나 ‘딱딱하고 견고한 조각’과 같은 전통적 조각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조각적 형식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유연하거나’는 비조각의 내용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의 조각, ‘완성을 향한 미완성’의 개념이 주요한 조각 등을 가리킨다. 물론 두 주제어가 뚜렷하게 형식과 내용으로 변별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의미가 겹쳐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두 용어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길잡이가 된다.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제 구성과 의미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통합 창원시 10년을 맞이하고, 비엔날레 태동 10주년을 맞이하는 5회 행사에 이르러 이러한 자기 성찰의 담론을 주제로 제시한다. ‘비조각’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자기 부정’과 ‘자기반성’을 도모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성찰해 봄으로써 10년을 지나는 시점의 미래를 예견하려는 것이다. 남을 탓하는 일보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니 ‘가볍거나 유연한’ 조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말이다. 


IV. 프로그램 구성  
비조각 담론을 제시하는 이번 비엔날레는, 불, 물, 공기, 바람 등 비물질과, 생태, 에너지, 테크놀로지 등 조각 너머의 주제와 접속하고 설치, 퍼포먼스 등 반조각적 속성과 교류하면서도 ‘조각적 본질’을 버리지 않는 조각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서 전시를 다음처럼 구성했다.  


전시 구성 


2020창원조각비엔날레는 본전시 1, 2, 특별전 1, 2와 같은 전시 프로그램뿐 아니라, 시민 강좌, 아티스트 워크숍과 아티스트 토크, 국제 및 국내 컨퍼런스 그리고 체험이 가득한 다양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올해 비엔날레는 포스트 코로나를 인한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면서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되지만, 이러한 ‘어렵고도 쉬운 비조각 담론’을 통해서 ‘유의미한 비엔날레 모델’로 대중에게 소개되길 기대한다. ●

김성호(Kim, Sung-Ho) : 중앙대와 동예술대학원 졸업, 파리10대학교 철학과 DEA 졸업, 파리1대학교 미학예술학 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2014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2015바다미술제》, 《2016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2018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등에서 감독과 울산과학기술원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미술평론가.   

출전/
김성호, 「비조감 담론의 큐레이팅」 , 온라인 자료집, 
《2020년 한국미술이론학회, 추계 콜로퀴엄》 (2020년 9월 26일(토) 13:00~17:35, 온라인학회 ZOOM 웨비나, http://www.artntheo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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