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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 평생을 이어 온 작가의 창작 연륜과 그 예술적 사유의 깊이

하계훈




평생을 이어 온 작가의 창작 연륜과 그 예술적 사유의 깊이



하계훈(미술평론가)

이정도 작가는 청년시절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예를 시작하게 되는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거의 평생 동안 서예와 문인화, 그리고 전각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과정은 동양 문화에서 선비들을 중심으로 행하던 시서화각(詩書畵刻)을 완전히 섭렵하게 되는 셈이다. 전업 작가와 달리 이정도 작가는 자신의 사업을 관리하면서 여가시간을 이용하여 창작 작업을 해왔다고 하지만, 흔히 보통 사람들이 여가시간을 보내는 몇 가지 운동이나 오락과 사교 모임 등을 최소화하고 그 시간을 모두 작업에 투여해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정체성은 비록 전업작가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정도 작가는 아마추어를 벗어난 프로급의 작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정도 작가는 성급하게 작업에 속도를 내려고 열을 올리거나 공모전 수상을 집요하게 목표로 삼지도 않았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그렇게 작업해오는 과정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먹의 속성과 붓의 운필에 대한 특성을 터득하게 되고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각종 공모전에서 크고 작은 상을 타는 시기를 거쳐서 나중에는 그러한 행사들의 심사위원과 예술 단체의 단체장을 역임해왔다. 그 연속선상에서 작가는 이제 다시, 창작의 과정에서 그 연결성을 부여하기 쉽지 않지만, 작가의 창작에 대한 열망과 표현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고 유화 작업에 새롭게 도전해오고 있다. 

먹을 가지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유화 물감으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의 작업이다. 먹이 물에 섞여 종이에 미세한 농담을 드러내며 스며드는 서예나 문인화의 제작과정은 기름을 섞은 물감을 캔버스 위에 올리고 다시 그 위에 다른 톤의 물감을 섞거나 겹쳐 올려 명암이나 입체감을 표현하는 유화와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흑백의 먹그림과 글씨는 다양한 색채를 통해 사실주의적 재현을 추구하는 유화의 속성과 어쩌면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화면의 여백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하는 문인화와는 달리 유화는 여백을 남기지 않고 화면 전체를 채색으로 메웠을 때 작품의 완성을 선언한다는 점도 두 표현 매체 사이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먹 글씨나 그림은 수정이 불가능한데 비하여 유화는 수정이 수월하다는 차이점이 두 가지 매체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쉬엄쉬엄 작품을 제작했다고 말하지만, 그동안 창작에 투여한 시간과 붓을 다루는 손의 익숙함, 그리고 화면을 구성하는 글과 그림을 지속해 온 작가의 체화된 경험으로 인해 유화 작품에 있어서도 아마추어 화가가 처음으로 그림그리기에 도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창작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우선 양적으로 방대하고 주제와 모티브가 다양한데 그 속에서 몇 가지 분류를 통해 작품의 특성을 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유화작품에서 다루는 모티브와 주제는 상당히 폭이 넓다. 단순한 정물이나 풍경에 더하여 작가의 삶에 관한 태도와 해석이 묻어나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하여 동물들의 모습이 우의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작가의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정감을 담고 화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작품들을 살펴보면 풍경화와 정물화가 주를 이루면서 여기에 약간의 인물화와 동물들의 모습, 또 우화적인 작품이나 기복(祈福)적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다양하게 발견되는데, 이 작품들의 공통적인 성격은 평범하면서도 작가로서의 사물에 대한 촉수가 민감하게 열려있는 작가의 생활과 철학적 사유의 범위 안에서 창작의 의지를 촉발시킨 모티브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이정도 작가의 긴 창작 이력의 후기에 그려진 이러한 유화들을 중심으로 약간의 수묵화,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작가가 손수 지은 한시들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유화작품들은 작가의 창작에 있어서 몇 가지 특징을 드러내준다. 우선 작가는 유화물감을 묻힌 양화붓을 때로는 물감과 캔버스의 마찰력과 저항을 받아 마치 서예의 갈필(渴筆) 효과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마치 서예붓의 일필휘지(一筆揮之)를 연상시키도록 속도감 있게 화면에 그어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풍경화에서는 하늘이나 바다의 표현에 있어서 공간감이 잘 나타나도록 물감을 화면에 적용시키는 데 있어서 단계적 변화(gradation)를 비교적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다. 색채의 표현에 있어서도 작가는 대비와 조화의 효과를 잘 구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색채의 채도를 높여서 결과적으로 상쾌한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일반적인 아마추어 작가들이 유화 작업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이정도 작가의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양식적 특징을 요약하여 말하자면, 정물화에서는 오브제의 속성을 드러내는 질감 및 입체감의 표현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풍경화에서는 화면의 공간감과 구도, 그리고 외광(外光)의 효과에 의해서 드러나는 나무, 바위, 물 등의 표정을, 때로는 암시적으로 또 때로는 세밀하게 표현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인물이나 동물의 표현에 있어서는 해부학적 정밀함이나 그림자의 표현에 있어서의 사실성 등은 드러나지 않지만 대상에 대한 정서적 교감과 뛰어난 색감 등이 관람자의 눈길을 끈다. 가끔 보이는 우화적인 그림이나 기복적 화면은 작품의 표현적 해석보다는 주제에 중심을 두고 감상하는 것도 이정도 작가의 창작 의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한평생동안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온 이정도 작가가 창작활동의 결과를 총정리하는 의미를 갖는 이번 작품 전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유화작품 이외에도 문인화 작품과 한시들이 있다. 이 세 가지 창작물들이 한 곳에서 전시되면서 작가의 사유와 표현에 대한 철학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면 오랜 시간을 쉬지 않고 작업에 몰두해 온 작가에게는 미술이라는 행위가 우리 삶에서 유의미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가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필자는 이번 기회를 통해 작가가 이룬 외형적 성과와는 별도로 한 분야를 오래 동안 관통해 온 작가의 연륜과 그 예술적 사유의 깊이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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