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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되는 정주(定住)와 유목의 삶을 사는 영적 중재자 샤먼으로서의 작가

하계훈

연속되는 정주(定住)와 유목의 삶을 사는 영적 중재자 샤먼으로서의 작가

하계훈(미술평론가)

한국에서 태어나 미술대학을 마친 민정연은 200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는 2차대전 이전까지 서양미술의 중심이었고, 특히 도전정신을 가진 한국의 작가들에게는 그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창작 의지와 희망을 키워가기 위해 떠나는 목적지였다. 민정연도 자신이 파리를 선택한 이유를 밝힌 적이 있는데 작가는 그곳이 ‘역사와 일상이 함께 호흡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현장은 19세기 말을 지나 20세기 초부터 서서히 국제적 흐름을 인지해가기 시작하였고, 1950년대 말부터 그 전개의 속도가 붙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8년 국제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의 문화와의 접촉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 무렵부터 미술 분야에서도 유학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미술작품들과 관련 정보가 밀려들어왔다. 유학을 떠났던 예술가들은 1998년 IMF 사태를 전후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후학들에게 전달하였다. 민정연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미술계의 자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한 작가들 가운데 한 명인 것이다.
아마도 2002년 20대 초반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도 이러한 우리 미술계의 전개과정에서 민정연이 경험한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린 나이에 유학 생활이 순탄치 않았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민정연은 어려운 시기를 비교적 짧게 잘 넘기고 현지에서 순조롭게 받아들여진 듯하다. 작가의 초기 작품에서 눈에 띠게 발견되는 촘촘한 점들과 반복되는 형태의 증식은 아마도 민정연의 초기 유학생활의 고민과 모색, 개인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작품과 예술에 대한 명상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표현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크게 둘로 나누면 정주(定住)적인 삶과 유목적인 삶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정주적인 삶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과거 농경사회에서 한곳에 정착하여 농작물을 심고 거두면서 살아가는 방식의 삶을 말하며, 씨를 심어 뿌리가 내리고 나무가 성장하여 가지와 잎이 퍼져가는, 즉 경험과 사유가 축적되며 확장되어가는 형태의 생활과 사유방식이 그 사회를 지배해왔다고 본다. 이에 비하여 유목적인 삶은 이동에 따르는 상황의 변화가 연속되는 가운데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생활과 사유의 방식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자 의식의 연속, 혹은 의식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삶의 방식, 즉 리좀적(rhizomic) 생활과 사유방식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는 전자와 같은 삶의 방식을 초월성(transcendence)이라고 부르는 사유 체계와 결부시켜 중심이 존재하며 유목적인 체계인 리좀의 유연성, 다양성, 그리고 탈영토성과 대비되는 사유라고 설명하였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이 두 가지 유형의 사유와 삶의 방식이 예전처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정보와 통신 및 교통의 발달에 의해 정주와 유목의 혼합과 교차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민정연의 작품이 전개되는 방식을 추적해보면 작가의 태생과 성장, 이주와 정착의 과정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정주와 유목이라는 두 종류의 사유와 창조, 그리고 그러한 생활 방식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즉 민정연의 작품 속에는 정주와 유목의 삶이라는 두 유형의 특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파리생활 초기에 민정연의 재능을 발견해준 카쉬아 힐데브란트(Kashya Hildebrand) 갤러리와 서울의 공근혜 갤러리 등에서 열린 작가의 전시와 작품들의 제목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면 이 점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민정연의 작품을 살펴보면 초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이미지와 자기증식적인 패턴과 점, 3차원과 2차원 이미지의 동거와 간섭,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작가의 심리와 창작과정을 읽을 수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밤이 지나고 새벽>이나 <4분>, 그리고 <길>, <동면>, <코쿤>, <노마드>와 같이 민정연의 작품 중 다수의 작품에서 작가는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성격과 진행을 의미하는 제목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이미지에서는 분명하게 제목을 떠올리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즉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사유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를 직선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상징적이고 때로는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모호함을 더하기도 하고,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소통의 채널을 넓히고 내면의 세계를 포함한 공감의 폭을 확대시키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민정연의 초기작에서는 작가의 이미지가 모호하게나마 화면에 개입하여 주제의 전달을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화면에서 인물은 사라지고 2차원적이고 기하학적인 직선들과 3차원적인 입체 이미지가 공존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가독성이 줄어들고 오히려 상징과 상상의 영역을 확대시켜준다. 이러한 작가의 창작이력은 작가의 시공간적 경험, 그리고 자아와 타자 사이의 마찰과 융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파리에서 머무르던 시기에 겪은 개인적 기억과 경험을 서술한 작품들은 2009년 <불안한 아름다움>이라는 전시 테마를 가지고 발표되었으며, 2012년 파리의 마리 룬드 갤러리에서는 <문을 접고 창문을 펼치다>라는 제목으로 작가가 파리에서 남프랑스로 이동하는 시기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같은 해에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에 초대받아 개최한 <신발에게 내 길을 맡기다>라는 전시에서는 남프랑스로 이동하는 시기의 유목적 성향의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 후 작가가 프랑스 남부의 도시로 이주하던 과정에서 경험한 기억과 공간의 이미지들은 서울의 공근혜갤러리에서 2016년에 <공간의 기억>이라는 테마로 발표되고, 2018년에는 파리의 마리 룬드 갤러리에서 <명왕성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이번에 파리의 기메미술관에서 발표되는 민정연의 작품들은 이러한 개인적인 창작사의 궤적을 이어서 다시 정주와 유목의 삶을 연결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났던 작가는 몇 해 전 프랑스 남부의 도시로 이주하여 다시 정주의 과정을 지내고 있다. 이번에 작가가 새롭게 발표하는 작품에서는 자작나무가 촘촘히 심어진 공간을 흐르듯 관류하는 (구름 같기도 하고 깃털 같기도 한) 정체모를 형태가 나무의 밑동을 감싸는 듯한 대형 이미지가 소개된다. 오랜 시간을 거쳐 세밀하게 이미지를 구성해가는 창작의 프로세스를 통해 작가는 시간과 공간, 자아의 내면과 외면의 대조와 마찰, 그리고 그러한 터널을 지나 이루어지는 궁극적인 통합과 재구성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민정연의 작품에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작가의 의식과 경험, 기억을 둘러싼 대조적인 요소들을 읽어가며 작가의 내면과의 접점을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호함과 막연함마저도 자아와 주변과의 마찰을 극복하고 융합과 공감으로 보다 높은 차원의 통합을 이루어내는 과정인 것이다. 이번에 민정연이 기메미술관에서 여는 초대전을 계기로 새롭게 선보이는 대작 <직조>는 인간과 자연, 그 의식의 내면과 외부, 과거와 현재 등과 같이 서로 대조되는 존재와 상황을 화해시키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민정연은 이러한 창작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영적인 존재와 인간을 중재하는 사제인 샤먼임을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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