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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의 새로운 지표, 아트페어

하계훈

미술시장의 새로운 지표, 아트페어

미술이 종교나 절대 권력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후, 시장은 상품의 영역 속으로 미술을 포섭했다. 그러나 ‘미술’과 ‘시장’이 결합된 ‘미술시장’이라는 용어는 미술을 인간의 감성과 영혼을 살찌게 하는 신성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측에게나,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해 최고의 상품성을 찾아 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측에게나 썩 환영받는 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를 천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미술에 종사하는 일도 엄연히 사회적 노동의 한 부분이었고, 당연히 노동의 원리와 시장의 원리가 작용해왔던 것을 미술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처럼 미술도 상품의 생산과 유통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게 된다. 
  미술작품이 일상적인 상업화랑에서 연중 내내 잠재적 구매자에게 노출되는 방식 이외에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이며 효과적으로 노출되는 방법에는 ‘아트페어’라 불리는 미술시장이 있다. 오늘날 국제미술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아트페어들은 대부분 1970년 초반에 시작되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적 성격의 아트페어는 스위스의 아트바젤, 프랑스의 피악, 미국의 아모리쇼와 영국의 프리츠, 그리고 스페인의 아르코 등을 들 수 있다. 아트바젤이나 아모리쇼가 비교적 민간단체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비해 프랑스의 피악과 스페인의 아르코는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는 편이다.
  아트바젤은 1970년에 시작된 아트페어로 지금은 스위스의 바젤과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각각 6월과 12월에 열리는데 이 행사에는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VIP 콜렉터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아트바젤은 전세계적으로 참가를 희망하는 화랑들의 수가 아트바젤의 수용 규모를 훨씬 상회하기 때문에 주최측에서는 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 절차를 거쳐, 보다 품격과 연륜 있는 화랑들을 참가시키고자 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아트페어를 대표하는 아모리쇼는 십년 전 뉴욕에서 개최되었으며, 1913년 동명의 행사인 아모리쇼로부터 그 근거를 찾고 있다. 현재 아모리쇼는 아모리쇼 콘템포러리와 아모리쇼 모던으로 분리되어 개최되고 있다.
 이와 같은 아트페어의 성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심상용은 그의 논문 <글로벌 아트페어 비평적 읽기>(2008)에서 “하나의 상업적 장인 아트페어가 탈상업적이고 미적 권위를 획득해가는 과정에 주목할 것”을 당부한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란 “수많은 갤러리와 작가들이 아트바젤에 참가를 희망할 때, 전제적으로 동의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바로 그 권위”를 의미한다. 이 권위의 서열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곧 시장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경매사와 화랑 등 시장주체들 간의 경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아트바젤과 같은 글로벌 아트페어의 권위와 영향력은 세계의 거대한 콜렉터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능력에 있다. 국제적인 거물급 콜렉터의 눈에 들어야 나중에 국제적인 미술관의 콜렉션에 작품이 들어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같은 비서구 주변부 국가에서 글로벌 아트페어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재능을 인정받는 것과 진배없는 의미가 된다. 참가 주체가 갤러리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아트페어에 참석한 경력은 갤러리의 미적 감식안과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이력으로 남는다. 이처럼 하나의 상업적 장이 탈상업적이고 초월적인 가치를 획득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미술품의 유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영역, 창작행위에도 현재 미술시장의 구조적 특징이 반영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찾아가야만 한다. 
  전통적으로 예술의 가치평가에 있어 시장영역은 부차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적어도 1960-70년대에만 해도 미적 가치와 그 평가는 어느 정도 지적 기반을 갖춘 공공영역 안에서 이루어졌다(혹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가치평가는 빠르게 시장영역 안으로 이양돼 행해지고 있다. 오늘날 주목받는 스타작가가 되고, 경매시장의 블루칩 반열에 드는 것은 작품의 ‘미적평가’보다는 ‘국제적인 거물급 콜렉터’에게 선택되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아트페어는 이러한 새로운 글로벌 시장질서의 허브로서 매우 중대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전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오늘날 ‘시장성이 있다’라는 평보다 높은 가치를 가진 것은 없다. 그것은 이미 ‘경제적’인 것의 수준을 넘어섰으며 사회는 이 가치의 권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예술도 사회구조와 무관하지 않은 바, 아트페어의 시장성이 획득한 권위는 새삼스레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정을 비롯한 예술적 가치도 포섭하는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이 시대의 자본주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2년부터 국제적 성격의 아트페어인 KIAF(Korea International Art Fair)가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몇 해 전부터는 정부로부터 재정지원도 받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국제적 미술행사인 광주비엔날레와 동행하여 올해 처음 시작한 아트광주가 국제성을 표방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아트페어들과 비교할 때 국내아트페어는 미술시장 측면이나 성숙한 문화적 행사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 할 수 없다. 
  세계미술시장의 흐름이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새롭게 편성되고 있으며 이를 따르는 각국의 아트페어가 속속 생겨나는 현실에서 우리 미술계가 낙오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편성된 국제미술시장에서 변방에 위치해 있으며 홍콩, 상하이, 북경, 동경 등의 비서구권 미술시장들과도 경쟁 관계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미술계는 어떤 행보를 보여야 할까. 물론 시장 상품으로서의 좋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아트페어와 같은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조직력도 갖춰야 할 것이고,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과 국민적인 관심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장성’ 키우기를 미술계의 장기적 과제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미술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의 의미가 그것에만 있지 않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미술시장’의 발전을 넘어서는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지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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