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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발 / 도치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관계적 서사 혹은 합체들

윤진섭



도치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관계적 서사 혹은 합체들


                              
윤진섭 미술평론가

 모르긴 해도 한국만큼 성(性) 이야기를 펼치기 힘든 나라는 없을 것이다.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이 성에 대해 오히려 더 관대하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유학(儒學)을 받아들여 성리학을 윤리의 근간으로 삼은 조선의 후예인 한국인들은 지금도 윤리와 성 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른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이중적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것을 고발하고 시와 소설을 통해 비판하다가 순교한 사람이 고(故) 마광수 교수다. 

 미술계에서 그에 견줄 수 있는 사람을 꼽자면 단연 이혁발을 들 수 있다. 이미 2003년에 이혁발은 자신의 저서 ‘섹시미미’를 통해 거침없이 성담론을 펼쳐나갔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적 인간 ‘얌자(Shemale/ladyboy)’를 통해 성적 자유론을 개진한 것이다. ‘지구상에 70억 명의 인구가 있다면 70억 개의 성이 있다.”고 이혁발은 말한다. 각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성적 차이로 인한 간극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페티시를 비롯하여 다양한 성적 취향이나 자극에 대해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들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이혁발은 힘주어 말한다. 이혁발이 만든 ’몰랑몰랑 육감도’는 말하자면 대(對) 사회적 포문을 연 포고문과도 같은 것으로써 사회와의 결연한 싸움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라. 한국 사회의 신풍속도인, 모텔마다 이중삼중의 가림막을 설치한 이유의 배경에는 바로 앞서 언급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허위의식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내로남불’의 사자성어 뒤에도 역시 왜곡된 허위의식이 꿈틀대고 있다. 

 이혁발이 펼치는 성적 담론에는 바로 이처럼 독버섯처럼 창궐하고 있는 건강치 못한 한국의 성적 양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그는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회화, 사진, 오브제, 설치 등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성의 문제를 시급한 주제로 삼는 한편, 그처럼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기제로 주술과 신화 등등 삶의 근원을 이루는 문화의 원형성에 주목한다. 그 근간에 ‘몸’이 있다. 이혁발은 말한다. “몸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고, 몸의 감각과 주변의 온갖 사물이 일치하는 상태가 존재의 근원이다. 인간은 세계와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내 존재’로서 자신을 자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몸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다.”고. 

 따라서 이혁발에게 있어서 ‘몸’은 주제이자 곧 소재이기도 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특유의 몸담론을 펼쳐왔다. 경북갤러리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 개막날에도 그는 한 편의 퍼포먼스를 발표했다. 평상복 차림의 이혁발은 전시장 한가운데 서서 서서히 옷을 벗어나갔다. 맨 먼저 신발을 벗어 한 짝씩 앞에 놓고 다음에는 양말을 벗어 그 옆에 나란히 놓는다. 그런 식으로 그는 옷을 하나하나 벗어 나갔다. 신발과 옷들은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원을 형성했는데, 옷을 벗는 사이마다 마치 기(氣) 체조를 연상시키는 극한적 동작들을 취했다. 이 퍼포먼스는 고도로 절제됨과 동시에 단순한 신체 동작을 기본으로 하는 이혁발 퍼포먼스의 핵심을 보여주었다. 최근 몇 년 간 이혁발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관객의 마음에 바로 육박해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주로 발표해 왔는데, 인간의 근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이러한 방식은 한국 퍼포먼스계에서 매우 드문 것이어서 퍼포먼스에 관한 이혁발의 내공이 매우 깊음을 보여준다.    
  
 주로 식물의 모양에서 추출한 것같은 기묘한 형태의 동식물 이미지를 화면에 가득 펼치는 이혁발의 드로잉 작품들은 성적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과거 학창시절이나 작업 초기에 그린 캔버스 위에 최근에 그린 현란한 이미지들은 과거와 현재가 한 화면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독특한 작업이다. 이번에 특히 주목한 작품은 자화상(<신이 되고픈 인간>,1995)을 그린 20호 크기의 작품이다. 일종의 ‘얌자’적 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작가의 손이 들어가 있는 여성기를 가슴 부위에, 여성의 유방을 자신의 성기 부위에 배치한 것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도치된 관계를 보여주는 이혁발의 대표작이며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였다. 

<퍼블릭 아트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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