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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개입’에 의한 역설의 미학

윤진섭


‘최소한의 개입’에 의한 역설의 미학
- 천광엽의 <Omni-파동(波動)>의 의미-
             
윤진섭(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Ⅰ. 
 최근에 등장한 한국 미술계의 최대 이슈로는 단색화를 꼽을 수 있다. 그것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는 중이다. 허핑턴 포스트 최신호1) 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단색화, 한국의 미니멀 회화 운동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표현하면서 최근 들어서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단색화 현상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L.A 소재 블럼 앤 포 갤러리가 주최한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전]2)에 관한 한 리뷰 기사는 서구의 미술계가 한국의 단색화를 바라보는 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한국의 단색화 작품과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품이 개념적으로는 유사해 보이나 내용적으로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즉,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이 끊임없는 육체적 수행을 통해 정신적 접근을 꾀하는 반면, 미국의 미니멀리스트들은 관객과 작품 사이에서 파생되는 지각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서구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의 단색화 일반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령 8.15 해방과 한국동란 등 한국 근현대사를 이루는 굵직한 사건들을 경험한 단색화 작가들의 내면세계와 관련된다. 말하자면 현재 70-80대의 연령에 해당하는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 작품의 바탕에 흐르는 유교적 전통, 가령 ‘수신(修身)’의 내면화가 곧 단색화 특유의 정신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금욕적인 색의 사용은 표현의 절제는 물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표상되는 자기 부정과 결부된다.   


Ⅱ. 
 천광엽은 한국의 ‘후기 단색화(Post Dansaekhwa)’의 대표작가 중 한 사람이다. 2012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한 [한국의 단색화전]3)에 초대를 받은 그는 특유의 금욕적이며 절제된 미감에 의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화면을 창출한다.

 1958년생인 천광엽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맥락에서 볼 때 모더니즘 미술교육을 받은 세대에 속한다. 말하자면 현재 70-80대에 이른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 세대인 것이다. 그는 한국이 ‘산업입국’을 국시(國是)로 삼아 한창 경제 개발에 열을 올리던 70년대 말엽에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모더니즘 시기를 겪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근대화를 근간으로 한 산업진흥정책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연이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행은 그러한 목표를 가능케 했다. 이 시기 군부 통치로 인한 인권 탄압과 경제 번영이라는 양날의 칼은 남북 분단의 상황과 맞물려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각종 분열과 갈등을 낳는 요인이 되었다. 

 천광엽이 미술대학에 입학을 한 1970년대 후반의 화단 상황은 서구에서 유입된 모더니즘4)이 지배적인 주류로 부상되고 있었다. 이 운동을 추동한 세대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단색화 작가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미술대학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한편, 일부는 국제전 참여작가 선발권을 쥔 한국미술협회를 중심으로 화단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70년대의 단색화는 그런 상황에서 세력의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천광엽과 같은 후기 단색화 작가들의 미적 특질은 유교문화의 소산인 단색화 작가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오늘날 80대의 노경에 이른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검출되는 미적 특질이 정신성(spirit), 촉각성(tactility), 수행성(performance)이라고 한다면, 5) 천광엽과 같은 후기 단색화 작가들의 미적 특질은 매우 다양해서 공통적인 면모를 찾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후기 단색화 작가들 세대에 이르면 한국의 근대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적 윤리가 해체되며, 자유와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 이념과 가치가 교육을 통해 범사회적으로 확산돼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6)

 천광엽이 대학시절을 보낸 70년대 후반은 공업화로 인한 이농 현상 등 다양한 사회 변동이 나타난 시기였다. 이 무렵에는 서울의 급속한 인구 팽창과 함께 아파트의 건설, 백화점이나 연쇄점, 수퍼 마켓의 등장으로 인한 소비문화의 형성 등 모더니티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있었다. 따라서 후기 단색화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다양한 산업재료나 공업용 도료의 사용은 그 내용 면에서 단색화 작가들과 차별화를 이루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Ⅲ. 
 천광엽의 작업은 표면 질감에 대한 추구가 요체를 이룬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90년대 초반에 모습을 보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맨 처음 착안한 것은 점(dot)이었다. 점자를 연상시키는, 균질한 캔버스 표면에 때로는 균일하게, 때로는 불규칙한 형태로 자리 잡은 일정한 크기의 점들은 이차원 평면인 캔버스의 존재론적 조건에 부합한다. 그것들은 평평한 캔버스의 물리적 바탕 위에 밀착됨으로써 평면성을 강조하게 된다. 

 천광엽은 컴퓨터로 그려 타공한 시트지를 캔버스 표면에 부착, 이를 유성물감으로 칠하고 사포(砂布)로 갈아내는 반복 작업을 통해 초기작업에 나타난 점의 요철(凹凸) 효과를 드러냈다. 90년대 초반의 초기작업에서 그가 시도한 것은 모듈에 근거한 균질한 점의 배열이었으나, 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점자책에서 보는 것과 같은 산포(散布)된 점의 배열을 통해 기호화를 꾀하게 된다. 7)

 회화 평면이 지닌 ‘즉물적(literal)’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는 천광엽의 그림은 이처럼 점이 진화한 결과이다. 90년대 초반 이후 그는 촉각과 시각 사이를 왕래하면서 지각의 문제를 심도 있게 천착해 왔다. 그러한 그의 실험은 화면에서 요철을 이룬, 점이 야기하는 촉각과 시각 간의 혼돈된 지점, 즉 인간의 지각이 지닌 한계나 난점에 대한 실험이다. 그것은 또한 동시에 긴 회화(繪畫)의 역사를 이루는 이미지와 실재(實在)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물리적 사물로서의, 아주 미세하게 돌출되거나 함몰된 점들은 일정한 거리에서 보면 환영(illusion)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초기의 실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평면적으로 치닫게 된다. 캔버스 바탕을 넓은 붓으로 수차례 정도 정교하게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는 반복 작업을 거친 그의 화면은 특유의 몸성(몸性:Mom-sung)을 지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캔버스 평면 위에 형성된 물감의 층들(layers) 8) 은 유광의 경우 아른거리는 시각적 잔상 효과를 낳기도 한다. 

 
Ⅳ.
 빛이 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거친 것과 조밀한 것, 매끈거리는 것과 광택이 없는 것 등 다양한 질감에 대한 어사(語辭)는 천광엽의 그림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들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그림에 붙인 명제들처럼 그의 그림을 독해하는데 필요한 참조물 9)이 되어준다. 가령, <마음의 왜곡(Mind Distortion)>, <묵언(Speechless)>, <입항(Port of Entry)>과 같은 명제들은 작품의 실제 내용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건조한 느낌, 즉 생명없는 사물이 지닌 물성을 즉물적으로 표출하는 일은 천광엽이 자기 작업의 요체로 삼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연한 베이지색 위주의 초기 작업부터 적, 청, 녹, 회색, 핑크 계열의 연한 중성색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천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알루미늄 판 위에 우레탄 도료를 사용해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은 10) ‘최소한의 개입’을 모토로 삼는 천광엽 작업의 핵심을 보여준다. 이는 엄청난 시간을 들여 11)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고, 그럼으로써 작품이 하나의 객관화된 ‘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비로소 하나의 ‘사물(objet)’로 존재하게 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천광엽의 미니멀한 단색화 작품들은 컴퓨터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과정에 의해 탄생된다. 이는 90년대 초반의 ‘점(dot)’의 시기 이후에 형성된 일관된 제작 방식이다. 단지 변화가 있다면 초기의 작업에 나타난 붓질 회화가 2000년대 이후 스프레이 도포 방식으로 바뀌는 정도이다. 그러나 불포화성 수지를 비롯한 유광 미디엄을 사용하면서부터 작업 방식에서 ‘최소한의 개입’이라는 그의 모토가 점차 빛을 발하게 된다. 부드러운 점성을 지닌 불포화성 수지의 액체가 알루미늄 판 위로 서서히 퍼져나가 마치 피아노의 반질거리는 표면과 같은 느낌을 형성하고, 프로그래밍된 컴퓨터가 드로잉한 정교한 선들이 알루미늄판 위에서 격자 형태의 무늬를 이룰 때, 완성된 작품이 주는 느낌은 얼핏 차갑고 건조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은 따뜻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역설의 미학은 그의 작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Ⅴ.
  천광엽이 이번 전시에 붙인 타이틀은 <Omni-파동>12)이다. 아마도 오랜 사고와 작업의 수련 끝에 나온 이 타이틀만큼 그의 근작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이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업방식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천광엽의 근작은 유성물감을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캔버스에 부착된 점(dot)13)들을 사포(砂布)로 연마하는 고된 노동의 산물14)이다. 천광엽은 일련의 공정을 거쳐 캔버스에 옮겨진 점들을 사포로 연마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은 연속적인 기다림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가 사용하는 유성물감은 건조가 느리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붓으로 칠하고 말리는 반복적인 과정이 개입되는 가운데, 어느 정도 원하는 캔버스 표면의 두께가 나올 때까지 이 지루한 동작은 반복된다. 15)

 천광엽은 이 힘든 노동을 즐긴다. 그것을 일러 그는 ‘엄숙한 과정’16)이라고 까지 부른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일종의 초월의 상태가 아닐까? 이것은 어쩌면 서양의 전위음악이나 전위무용의 창작원리가 된 ‘비결정성’17)과도 상통하는 것이며, 한국의 전통 축성술에서 볼 수 있는 석공의 자기초월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18)
 
 “(노동은) 고통이지만 충분히 즐길 만한 희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과가 주어지니까요. 저는 예술이 아름다운 이유는 결과를, 끝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끝을 안다면 굳이 왜 하겠습니까? 결과의 불확실성, 건조에 시간이 축적되는 오일 물감의 비완결성, 이런 거에 미치게 빠져 있습니다.” 19)
 
 여기서 불확실성, 비완결성, 비결정성, 자기초월성과 같은 포스트모던적 어사들이 리좀(rhizome)을 연상시키는 무지향성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천광엽의 작업은 그러한 세계를 지향하며 그의 말을 빌리면, “가보지 못한 어떤 미지의 공간이 담고 있는 비전을 추구”20)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몸성’을 느끼고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21)  

 천광엽의 그림은 회화를 회화이게끔 하는 존재론적 조건의 극단에 서 있다. 그것은 회화가 다름 아닌 이차원 평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적 행위의 산물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정의를 용인하면서 회화의 지평을 넓혀가려는 사고의 산물이다. 

 “그의 작업은 화면으로부터 일체의 이미지를 배제함으로써 오로지 화면의 내적 질서만을 추구하게 된 모더니즘의 본질에 접근함으로써 화면에서의 ‘순수성’을 획득한다. 그의 화면에서 보이는 중성성(neutrality)과 화면의 평면성, 물감의 물질성 등은 어떠한 이미지의 연상도 차단함으로써 회화의 순수한 지각적 체험을 유발시킨다.”22)

 위 글은 오래 전에 쓴 천광엽의 개인전 서문에서 한 구절을 옮긴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렸다. 삼라만상이 변하듯 그동안 천광엽의 작품세계도 많이 변했다. 이제 그는 그 자신의 깊어진 연륜 만큼이나 폭넓은 회화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그의  비옥한 회화적 지평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이제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아 있다.
 

Ⅵ.
 2016년, 데이트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으로부터 다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올해는 2021년, 그동안 천광엽의 작품세계에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가장 현저하게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청색(blue)에 대한 관심이다. 천광엽은 2014년 무렵부터 약 1년간의 휴식을 취한 후 청색을 자신이 탐구해야 할 중심적인 색채로 설정했다. 전에는 베이지, 녹색, 적색 등 다른 유채색을 사용하면서도 이 청색만은 유독 미루어왔던 터였다. 왜냐하면, 청색은 다른 색들과는 달리 마치 심연처럼 깊이를 측정할 수 없고 끝 닿을 데 모르는 하늘처럼 투명하기 때문이다. 청색은 깊은 사유를 끌어내는 색이라는 사실도 청색에 집중하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의 신사실파 작가 이브 클랭(Yves Kline)의 International Kline’s Blue(IKB)처럼 형이상학이며, 순수하고 끊임없이 무(無)로 수렴되는 성질을 지닌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 천광엽은 무려 7년이나 청색에 집중하는 가운데 그 나름 도저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해방이다. 색채로부터의 해방, 온갖 규정된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천광엽에게 있어서 ‘자유’는 진정한 해방을 의미했다. 그 지난한 과정은 득도(得道)에 비유된다. 그 화두는 청색, 바로 그것이다. 천광엽은 본격적으로 청색을 다룬 7년 동안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육체적 고통을 견디며 온갖 방법론적인 실험을 다 했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숭고미이다. 그림이 거대해지면서 느끼는 정신적인 깊이와 숭고한 감정, 그것은 한편으로는 일종의 종교적 법열과 같은 정신적 체험과 함께 크나큰 해방감을 유발한다. 이는 향후 천광엽의 그림이 지향해나갈 지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천광엽은 그림을 인생에 대한 유비(analogy)이자 삶의 축도로 본다. 삶이 늘 예정된 경로를 밟아나가는 것이 아니듯, 그림 역시 예정된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숱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종국에는 “그림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의 세계에는 인간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어느 정도는 작가가 의식하지 않은 상태, 즉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림이 진행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림이 그림의 행로를 스스로 걸어간다는 사실은 논리적인 해명의 세계가 아니라 차라리 비논리적 직관의 세계가 아니던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천광엽은 타공 프로타주 드로잉에서 다양한 색의 물감을 떨어트리는(dripping) 드로잉으로 이행해 간 것은 아닐는지. 이때 드로잉이 지닌 날 것의 생생한 체험은 단색의 색채로 이루어진 평면 회화의 미감을 더욱 다채롭고 오묘한 상태로 이끈 요인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천광엽은 30여 년전 미국 유학의 초기에 품었던 생각, 즉 “회화란 무엇인가, 내지는 평면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다양한 회화적 실천과 깊은 사유로 응답을 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반복적인 일상의 상징으로 점(dot)을 택했다. 따라서 점 하나는 인간이 행하는 일상적 동작의 반복에 대응하며, 캔버스 평면에 무수히 존재하는 점들의 세계는 그러한 동작의 총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옴니(Omni)의 세계이다. ‘모든, 전체의(every, all)’을 의미하는 이 라틴어는 “모든 것을 포함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는 어떤 상태”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경지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 이 일의 잘 알려진 용어를 빌리면, ‘확산과 환원’의 순환이 보여주는 세계의 원환적 구조가 천광엽의 회화를 관통하는 원리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 그림 안에 담겨있다(More see, less talk)”고. 

 천광엽이 그림을 그리면서 바라는 바는 아주 소박하다. 그는 관객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무언의 영향을 받아 “인생에서 무엇인가 꽃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아침이면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듯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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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atalie Hegart, Huffington Post, “Dansaekhwa : The Korean Minimal Painting Movement Sweeping the Globe', 2016. 1. 22. 

2) Dansaekhwa and Minimalism, Blum & Poe gallery, Los Angeles, 2016. 1. 16-3. 12. 
   초대작가: 윤형근, 정상화, 하종현, 권영우, 박서보, 이우환(한국), 리차드 세라, 칼 앙드레, 로버트 만골드, 솔 르윗, 로버트 라이먼, 로버트 어윈, 아그네스 마틴(미국) 

3) 원제는 [Dansaekhwa : Korean Monochrome Painting]이며 필자가 기획을 했다. 

4) 이른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평면성 개념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스트 페인팅을 가리킨다. 

5) 윤진섭, 단색화의 예술(The Art of Dansaekhwa)전 서문, 국제갤러리, 2014.

6) 물론 이러한 민주주의 이념이 80대의 단색화 작가들이 청년기를 보낸 50년대에도 사회적 기층을 이루고 있었으나 여기서는 이들의 유년기 의식을 지배한 정신적 기조가  유교사상에 기초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같이 기술한 것이다. 또한 당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가 실제로 구현되고 있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7) 이러한 형태의 캔버스가 공식적으로 선보인 것은 1995년의 웅갤러리 초대전(6. 26-6. 7)에서 였다. 

8) 물론 여기서 이러한 물감의 층들이 단순히 물감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샌드 페이퍼로 물감을 갈아내고 다시 덧입히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시간과 노동의 육화(肉化)가 나타난다. 거기에는 단순히 물리적, 화학적 변화뿐만이 아니라 정신작용 또한 수반된다. 

9) 개인전을 통한 발표에 자신의 작업을 집중해 온 천광엽에게 있어서 각 개인전에 붙이는 타이틀은 그의 작업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참조물이다. 그는 자신의 개인전에 <D.O.T.S>(갤러리 사계, 1993), <CASUAL MINIMUM>(WOONG GALLERY, 1995), <SPEECHLESS>(gallery IHN, 2001>, <homage to Rothko>(gallery IHN, 2008), <minimum continuum>(신세계백화점 서울점 Art Wall Gallery,2009> 등등의 타이틀을 붙였다. 이번 전시회에 붙인 <Omni-파동>은 그것의 연장이다.

10) 이의 대표적인 경우로는 그가 2008년경 제작한 <homage to Rothko>를 들 수 있다.

11) 천광엽의 작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정신적 집중력과 힘겨운 육체적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제가 생각하는 작업에 있어서 노동의 과정은 매우 엄숙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것이 고통이지만 충분히 즐길만한 희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과가 주어지니까요.” -천광엽,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에서, 2016. 2. 15(이하 인용된 이메일 내용은 같은 날짜의 것임.) 

12) 천광엽은 음악광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아주 성능이 좋은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에게 있어서 ‘초월’이라는 관념은 바로 이 음악 감상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Omni’란 단어의 뜻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지향하지 않는’ 어떤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어쩌면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어떤 것을 가리켜 도라 이름은 곧 도가 아닌’(도가도 비상도) 상태와 일맥상통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일찍이 그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음을 그린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그가 음악을 들으면서 터득한 소리의 무지향성, 즉 스피커의 기능 중 음이 어느 한 방향이 아닌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13) 이때의 점들은 지름이 약 3밀리미터 정도의 작은 크기로 컴퓨터 데이터에 의해 처리된 점의 이미지를 엷은 플라스틱 시트지에 옮겨 기계적 커팅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14)“샌딩하는 작업은 아주 섬세하게 해야 하며 서너 시간은 기본이다. 또 기계가 할 수 없어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표면의 상태를 살펴가면서 해야 하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팔목 뒤꿈치와 어깨에 생기는 통증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잦다.”(천광엽,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에서) 

15) 천광엽의 작업에서 보이는 이 반복적인 행위의 특징은 곧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촉각성을 획득하는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의 특징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초월의 상태(정신성)에 닿을 수 있다.

16) 그는 이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 캔버스를 눕혀 놓고 샌드 페이퍼로 섬세하게 몇 단계까지 연마하는 과정을 통해 물감층의 내부, 즉 캔버스에 부착된 점들의 표정이 드러나게 한다. 이때 그는 자신도 그 과정의 끝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17) 영어의  ‘indeterminancy'를 가리키는 것으로 가령 동전을 던져 스텝을 결정하거나 악보를 쓴 전위무용가 머스 커닝햄과 존 케이지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18)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검출되는 이 자기초월성의 특징은 작업의 끝을 알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전기 단색화 작가들은 대개의 경우 마음 속에서 끝내고 싶어하는 지점이 바로 작업이 끝나는 순간이다. 이는 서구의 미니멀리스트들의 작업방식과는 매우 대조적인 특징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윤진섭 1970년대 한국 단색화의 태동과 전개,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 서진수 편저, 마로니에북스, 2015, 81-88쪽. 천광엽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작업과정에서 어떤 끝 비쥬얼이 나올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대략적인 예측만 할 뿐 그리고 그 예측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요....(중략)....그리고 그 행위가 주는 결과로 예측 또는 동참할 수 있는 지점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몸성(저는 이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작업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은 ‘몸성의 초월(beyond Mom-sung)이겠지요.”
   -천광엽,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에서. 

19) 천광엽,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에서.

20) 천광엽,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 중에서.

21) 그와 비슷하게 몸성을 언급한 전기 단색화 작가들로는 이동엽과 최병소를 들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마음의 풍경>(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단색화전](2012) 도록을 참고할 것.

22) 윤진섭, 현존과 지각-천광엽의 CASUAL MINIMUN 연작에 대하여, Woong Gallery, 1995, 카탈로그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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