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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정신의 계승과 현대적 조명의 긴요성

윤진섭


수묵정신의 계승과 현대적 조명의 긴요성 

윤진섭(미술평론가) 
                                             

‘수묵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가? 수묵을 중심으로 국내외의 미술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살펴보자는 것이 본 전시의 취지이다. 

 수묵정신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동양 고유의 예술정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거기에는 연면한 역사와 고유의 정신이 담겨 있다. 서기 7-8세기 중국 당(唐) 시대에 본격화된 수묵화는 이후 약 1200년의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파돼 이제는 동양 고유의 예술로 자리 잡았다.   서양의 유화에 대비되는 동양의 고유한 회화 매체인 수묵화는 ‘물(水)’을 매제로 삼는다. 유화의 용제가 ‘기름((油)’인 것과 대비된다. ‘물과 기름의 관계’라는 말이 있듯이, 이는 서로 상극의 양태를 보인다. 융화되지 못하고 서로 겉도는 상태를 가리켜 ‘물과 기름의 관계’로 비유하듯이, 문화에서도 동양과 서양은 상호 간의 특수한 문화적 성질과 양태로 인해 때로는 서로 화합을 이루지 못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대립과 갈등에 근원을 두고 있는 이러한 배타주의가 인류의 화합에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자명하다. 따라서 SNS를 비롯한 발달된 통신수단에 의해 전 세계가 한 가족이 된 지구촌의 시대에 상호 이질적인 문화에 기인한 배타주의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함이 마땅하다. 

 기름을 용제로 삼는 유화는 대체로 ‘어둠(暗)’ 속에서 ‘밝음(明)’을 이끌어내는 회화의 형식이다. 반면, 물을 매재로 하는 수묵화에는 그러한 색의 위계가 없다. 색과 색의 결합에 의해 제3의 색을 만들어 내는 유화와는 달리, 수묵화는 먹(墨)과 물의 결합에 의해 세계를 해석한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물의 농도이다. 먹에 물이 얼마나 함유되느냐에 따라 먹색이 결정된다. 따라서 흔히 수묵화라고 할 때, 그 요체는 바로 이 먹과 물의 사용에 있는 것이다. 

 수묵화는 산수를 비롯한 자연 풍경의 표현이나 시서화(詩書畵) 등 선비가 갖춰야 할 인문 교양의 필수로 전승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포와 진도 예술의 핵심을 이루는 남종화는 그 대표격으로 한국 수묵화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개항이 본격화된 구한말 이후 이러한 역사와 전통이 크게 흔들려 그 입지가 매우 옹색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차제에 전라남도가 주최하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이러한 문화적 위기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여러 전시중 하나인 [수묵정신]전은 국내외의 작가 21명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수묵의 기법과 정신이 한국화(韓國畵) 외의 분야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는 전시다. 따라서 이 전시에는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들은 초대에서 배제되었다. 

 한국의 김근태, 김길후, 김택상, 김지아나, 안치인, 양규준, 윤한종, 이경호, 조문자, 최성열, 중국의 쥐안치(Ju Anqi), 우밍종(Wu Mingzhong), 양치엔(Yang Qian), 첸웬링(Cen WenLing), 미아오 시아춘(Miao Xiachun), 왕치엔(Wang Qian), 허센(He Sen), 대만의 치헝양(Chihung Yang), 사이프러스의 클리차 안토니오우(Klitsa Antoniou), 방글라데시의 비파샤 하야트(Bipasha Hayat), 독일의 토마스 엘러(Thomas Eller)의 작품에서 다양한 기법과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회화를 비롯하여 설치미술, 오브제 아트, 미디어아트 등등 현대미술(contemporary art)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양태는 이질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작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은 수묵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비록 먹과 물을 주된 재료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묵의 고유한 기법을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하는 예술적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서구인의 경우, 수묵작품을 참고로 하여 자신의 언어로 풀어보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사실 한국과 중국의 작가들은 수묵을 일상에서 접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수묵의 영향권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작가들 대부분은 서양의 문물에 의해 동양의 문화와 정신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근현대화의 과정을 통해 몸소 겪었다. 따라서 비록 수묵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수묵의 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 봤으리라 믿는다. 그 고민의 깊이가 이번 출품작 속에 짙게 배어있다.   

 자연과 선비의 정신을 먹과 물이라는 단순한 매체로 표현하기 위해 동양의 예술가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고유의 양식을 창안해 냈다. 준법(峻法)과 사군자(四君子) 등등은 서양에는 없는 동양 고유의 양식과 회화이다. 또한 파묵(破墨)이니 담묵(淡墨)과 같은 고유의 기법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되새김질해야 할 좋은 품목이다. 이들을 현재적 시점(時點)에서 해석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전남수묵비엔날레 <수묵정신>전 서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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