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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중 / 침묵의 언설 속에서

윤진섭



침묵의 언설 속에서 

윤진섭(미술평론가)

Ⅰ.
 김근중의 그림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의 일이니 연조도 꽤 오래 됐다. 일찍이 70년대에 한국화를 전공했으나 지금은 딱히 한국화라고도 할 수 없는, 동서양이 혼합된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김근중의 화풍은 특히 재료 면에서 볼 때 그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가령 유채와 아크릴 칼라를 쓰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양화 재료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화(동양화)를 전공한 그가 아크릴 칼라를 쓰는 것은 한국화(동양화)의 정체성 논의에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다소 완고한 견해를 가진 사람은 김근중이 한국(동양)의 정신을 잇지 못하고 있다거나, 좀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대만 유학에서 돌아온 김근중이 국내 화단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맞물려 이러한 문제들이 비단 한국화 분야뿐만이 아니라 화단 전체에 폭넓게 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는 다름 아닌 삶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런 논의들이 설득력 있게 스며들었다. 

 이 지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까닭은 김근중이야말로 80년대 후반 이후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화단의 중심에서 문제작가로 부상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집중됐는데, 가령 [’89 서울현대한국화전](서울시립미술관, 1989)을 비롯하여 [젊은 시각-내일에의 제안전](예술의 전당, 서울, 1990), [한국현대회화전](호암갤러리, 1991), [현대미술 40년의 얼굴전](호암갤러리, 서울, 1991) 등등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도서로는 1996년 시공사 발행의 <아르비방/ART VIVANT> 총서를 들 수 있는데, 총 55권까지 발행된 이 화집은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을 엄선하여 뽑은 것이다. 박석원, 심문섭, 이건용, 이강소, 구본창, 석난희, 고영훈, 이석주 등등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사를 수놓은 문제의 작품들이거니와, 김근중이 이 총서에 선정된 것은 그 자체 그의 왕성한 활동에 값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아르비방 화집에도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 책이 나올 무렵 김근중은 포스트모던적 경향의 실험에 깊이 빠져 있었다. 특히 80년대 초반 이후 한국화 분야에서 수묵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사실을 감안하면, 김근중이 자신의 작업을 통해 보여준 채색의 세계는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김근중 역시 80년대 후반에는 수묵화를 실험하기도 했다. 1987년 무렵의 <풍경>에서 1989년 경의 <오시화순(五時化順)> 연작으로 이행해 가면서 점차 추상화(抽象化)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드로잉의 성격이 뚜렷하게 두드러지면서 유희적인 필획과 마치 자연 속에서 노니는 듯한(遊於藝), 동양화의 규범과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듯 자유롭고 분방한 세계를 드러낸 것이다. 


Ⅱ.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김근중이 90년대 초반에 화단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마도 당시 그가 구사한 프레스코화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이 무렵이면 한국화단도 수묵화에서 채묵과 채색의 시기로 상당히 전이돼 있었다. 김근중은 채색화 중에서도 프레스코라고 하는, 당시 한국화 분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영역에 천착해 들어감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견지해 나가고 있었으며, 바로 이 점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 시기에 김근중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여러 원천으로부터 온 상징과 기호들은 물론 금속편이나 짚 등등 서로 이질적인 오브제들을 화면 위에 부착함으로써 한국화의 순혈주의적 순수성을 거부하는 동시에 동서양에 대한 구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펼쳐나갔다. 1990년대를 통해 제작한 <자연존재(Natural Being)>와 <원본자연도(原本自然圖)> 연작은 대만 유학시절(1983-6)에 고궁박물관에서 본 작품들의 영향과 고구려 고분벽화, 두 차례에 걸친 돈황석굴의 견학, 실크로드 여행 등등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김근중의 작품에는 다국적인 출처를 지닌 파편적인 상징들이나 기호들, 식물의 문양,창, 투구, 새, 별자리, 상자, 말굽, 부처의 머리, 숫자와 언어 등등이 편재돼 있었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화면 속에서 이질적이며 다양한 재료들이 충돌하면서 빚는 조화와 부조화, 협화와 불협화의 효과가 보는 자의 시선을 자극했다. 김근중은 돈황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프레스코 기법을 화면에 도입함으로써 마치 동굴벽화를 옮겨다 놓은 듯한 화면효과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것은 먹과 물의 관계에서 나오는 발묵, 파묵, 농묵, 담묵과 같은 수묵화의 기법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행위였다.  

 당시 김근중이 기울인 이러한 류(類)의 실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미술사적 평가를 위해서는 아마도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서의 문화가 빈번히 교차하는 동시대의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엄격한 전통의 구각을 깨고 새로운 호흡을 시도하고자 한 김근중의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Ⅲ.
 2001년에서 2004년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된 <자연존재-내면의 방> 연작은 화면이 ‘미니멀’해지면서 평면성이 더욱 두드러짐과 동시에 화면의 다양한 마티엘이 주는 맛에 깊이 빠져든 흔적을 보여준다. 이 시기는 그 반동으로 나타난, 대략 2005년에서 2014년까지 지속된 <Natural Being(꽃세상, 원본자연도)>과 판연히 비교된다. 즉, 단순미에서 복잡미로의 이행이 교차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근중의 작품은 구상과 추상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러한 교차는 크게 이 시기(2001-2014)와 뒤에서 언급하게 될 최근의 단색화적 경향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근중에게 있어서 모란과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김근중의 전체작업에서 모란을 소재로 한 그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김근중이 모란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시절 채색화 수업을 통해서였다. 그렇게 처음 접한 모란은 2005년의 어느 날 한 민화전에서 본 12폭 병풍의 모란도를 통해 다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김근중은 모란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영어 단어를 비롯하여 만화에서 사용하는 말풍선, 동양화의 고전 등등이 바탕 전면에 깔리거나 모란의 옆에 병기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변주를 이룬다. 색채가 현란한 가운데 모란꽃, 새 등 화면 전체를 화려하게 수놓은 대상들은 팝적 효과마저 발산하고 있다. 
                      
 “2천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화조화 연작은 90년대 초반 이후 김근중이 시도해 온 다양한 화풍 중에서 가장 첨예하게 민화를 수용하여 밀고 나간 결과다. 이번 전시는 2005년에 가진 개인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판단된다. 보다 화려해진 색채감에 영어 단어의 등장이 새롭게 눈에 띄고, 옛 민화의 이미지를 출력하여 그 위에 모란이나 파초 등을 그린 기법상의 새로운 시도가 그의 고뇌를 읽게 해 준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언설은 이 시대에 한국화 화단이 처한 고뇌와 초조를 스치듯이 보여줄 뿐, 시대적 조류에의 편승에서 벗어나 김근중의 전 회화적 역량이 실린 것이라곤 보기 어렵다.”

졸고, <당대의 현실과 작가의 과제>, 미술세계 2008
 
 이러한 지적은 김근중의 모란 그림이 지닌 팝적 당대성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지만 좀 더 무게있고 진중한 작업을 촉구한 것이다. 그 이후에 김근중은 팝적 가벼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보를 보였는데, 그러한 움직임은 2015-6년에 제작한 <꽃 이전>과 <존재 내 세계> 연작에 이르러 보다 추상화(抽象化)되고 해체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근중의 작업에서 단색화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무렵이었다. 이 시기에 이르면 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서 단색의 화면에 집중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군데군데 사포에 갈리고 남은 돌가루의 거친 물질감이 화면의 여기저기에 나타난 형국이었다. 노랑, 빨강, 청색, 베이지 등등 단색으로 이루어진 이 시기의 그림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김근중 단색화의 초기적 양상을 보여준다. 

 김근중은 2018년에 접어들어 현재 보는 것과 같은 단색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자연존재/Natural Being)> 연작은 캔버스에 검정색이 가미된 돌가루를 대여섯 차례 바른 뒤 다양한 원색의 안료를 발라 사포로 갈아내서 바탕을 조성하는 끈질긴 노동의 산물이다. 다른 유형의  작품은 거즈를 바른 뒤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 원색의 안료를 칠하고 갈아내고 다시 칠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수행한다. 김근중의 단색화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원색의 진주색(pearl)이 첨가되는데, 그 이유는 고색창연한 옛날 색깔을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작가는 말한다.    

 김근중의 단색화는 화면에서 조성된 마티엘 효과로 인해 퇴락한 벽을 연상시킨다. 반면에 거즈를 부착한 화면에서는 횡적으로 죽죽 간 주름의 흔적들이 도드라지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질감들은 펄이 섞인 원색과 함께 작가의 독특한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김근중의 단색화가 지닌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김근중 작품의 고유한 성질인 것이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김근중의 작품 전반을 살펴보다가 1999년에 제작한 <본성-소통/Natural Being)> 연작들을 보게 되었다. 기관의 해체를 비롯하여 분리, 중첩, 등등 인체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몸이란 무엇인가?”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러나 끝내 미발표작으로 오랫동안 사장되었다. 나는 이 작품들을 보면서 만일 당시에 발표가 이루어졌다면 지금 김근중의 작업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추후에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면밀히 살펴보았으면 하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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