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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同化)와 이화(異化) : 엄익훈의 그림(자) 조각

윤진섭



동화(同化)와 이화(異化) : 엄익훈의 그림(자) 조각




윤진섭 (미술평론가)

 조각(彫刻)은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어떤 물체에 물리적인 힘을 가해 본래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예술의 한 형태다. 어원적으로 보면 새기는 행위 1) 이다. 그래서 조각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나무를 열심히 깎거나 돌을 다듬고 쫀다. 조각은 원형에 무엇을 덧붙일 수는 없다. 덧붙이는 것은 소조(塑造)이며, 이 둘을 합쳐 조소(彫塑)라고 한다. 

 이 기본적인 상식을 염두에 두고 조각가 엄익훈의 작업을 들여다 보면 훨씬 쉽게 이해가 간다. 엄익훈의 작업은 위의 분류 중 어디에 속하는가? 둘 다가 아닌가 한다. 그는 우선 4밀리미터(mm) 두께의 철판을 플라즈마 커팅(plasma cutting) 기법으로 잘게 자른다. 원하는 크기와 모양의 철편을 플라즈마 커팅 기계로 잘라 정밀하게 가공한 뒤 이들을 용접하여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엄익훈의 인체 이미지를 벽에 투사하는 그림(자) 작업은 따라서 정밀하게 설계된 추상조각의 결과물인 셈이다. 물론 정밀하게 설계됐다고 해서 어떤 구체적인 도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엄익훈은 어떤 정밀한 도면보다도 어쩌면 더 정교할지도 모를 예술가 특유의 직관에 의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완성시켜 나간다. 그것들은 <보드 타는 남자>(2021), <그림 그리는 아이>(2021), <설레임>(2021) 등등 여러 근작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구체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즉, 벽에 투사된 그림(자)의 모습만을 염두에 두면 분명 재현예술에 속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에 대한 해석일 뿐이며, 그것을 나은 동인(動因), 즉 원형에 주목해서 보면 엄연한 ‘추상조각’이라는 데 역설과 묘미가 있다. 그리고 실로 이 드라마틱한 반전이야말로 엄익훈의 조각이 지닌 최대의 장점이자 조각계의 유니크한 입지(立地)가 아닌가 생각한다. 말하자면 엄익훈은 자신이 고안해 낸 이 독자적인 기법으로 조각에서의 영지(領地)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다소 중세적인 어감을 지닌 이 ‘영지’라는 말처럼 엄익훈의 조각이 지닌 의미론적 해석을 명료하게 해 주는 단어도 없다. 그가 구사하고 있는 결과로서의 재현 이미지와 그것을 낳은 동인, 즉 ‘추상적인 양괴(mass)’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바, 역사적으로 볼 때 원래 이 둘 사이에는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재현에 의한 구상조각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 등장한 추상조각이라는 상호 불편한 관계가 그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엄익훈의 추상조각을 딱 한 지점에서 조명등의 불빛을 비쳤을 때 건너편 벽면에 재현 이미지가 짙은 그림(자)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보드 타는 남자, 그림 그리는 아이, 키스하는 남녀(<설레임>, 2021)의 모습 등등 재현 이미지들, 즉 ‘그림자이자 동시에 그림들인 그 이미지들 2) ’은 추상조각에서 발원한 것이지만 서로 동떨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와 신화와 같은 소재를 통한 작가적 상상력의 개입은 조명을 매개로 상호 이질적인 두 영역을 하나의 작품으로 통합시킨다.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체 크로키에 대한 엄익훈의 관심과 수련이 이처럼 유니크한 작업을 낳게 한 바탕이다. 그는 간단한 스케치를 바탕으로 이 정교한 작업을 추진해 나간다. 그의 추상조각을 서로 다른 방향과 각도에서 바라보면 일견 무질서해 보인다. 그러나 어느 한 지점에서 시선을 멈추고 벽면을 바라보면 그 무질서는 순간 완벽한 하나의 질서로 바뀌면서 신기하게도 결과로서의 그림(자)를 낳고 있는 것이다.     


1)  조각의 조(彫)와 각(刻)은 모두 ‘새기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2)  이것이 바로 ‘그림(자)’로 표기한 이유이다.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그림인 것. 엄익훈은 4-8센티 크기의 철편을 붙여가면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즉 그림(자)이다. 이 동시성이 매우 중요한 컨셉이다. 즉 조각과 회화의 접점에 엄익훈이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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