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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세계사적 대전환과 ‘수묵정신’의 확산

윤진섭



문명의 세계사적 대전환과 ‘수묵정신’의 확산

윤 진 섭(미술평론가)

 지구촌 전체를 정신적 패닉에 빠트린 코로나19의 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지구촌의 대재앙인 유행병(pandemic)이 무서운 것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특징인데, 어느 날 갑자기 지구촌을 덮친 코로나라고 하는 대재앙이 이를 무화시킨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와 광주비엔날레의 선례를 좇아 올해 9월에 열릴 예정이던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1년간 연기되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1년 동안 시간을 벌어 행사 준비에 더욱 충실을 기하고 수묵화에 관한 이론적 담론의 바탕을 단단히 구축할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묵(Sumuk)’에 대한 이론적 정립과 실천적 수행(遂行)을 위한 구체적이며 정교한 로드맵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전시를 촐괄하는 총감독의 몫이기 때문에 <수묵정신>전의 큐레이터인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그러나 ‘수묵정신’전의 기획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내용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먼저 수묵이 현재 한국의 미술계에서 보다 큰 비중을 갖고 논의돼야 할 필요성은 무엇인가? 가장 시급한 것은 수묵화, 나아가서는 한국화의 존재가 전에 비해 미미해져 가고 있는 현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국내의 미술대학에서 한국화과가 사라진 지 오래된 사실을 통해 엿볼 수 있듯이, 다른 미술장르에 비해 한국화가 유독 기피 대상이 된 이면에는 시대에 따라 변한 대중의 미감이 작용한 탓이 크다. 지난 70년대 이후 사회가 급격히 서구화되면서 한국화의 내용과 양식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인의 지배적인 주거양식으로 자리 잡은 아파트의 현대적인 실내 디자인에 한국화(동양화)가 어울리느냐고 물을 때, 이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가 어렵다.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해 이러한 현실은 한국화의 수요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그런 시대적 배경 아래 한국화의 작품가격 역시 70년대의 전성기에 비하면 현저히 미치지 못 한다. 한 마디로 사방에서 어려움이 몰려드는 형국에 처한 것이 한국화가 당면한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화의 원로 중신작가들을 중심으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자구책이 모색됐던 것은 이러한 현실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묵은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이제 그 의미와 가치를 되물어야 할 당위가 도출된다.   

 그렇다면 ‘수묵정신’전의 핵심 개념과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이 전시의 큐레이터로서 우선 전통적인 수묵화 카테고리의 작가들은 초대작가 명단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수묵화가들은 다른 큐레이터들이 기획하는 전시에 참여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수묵화를 전공하지 않은 작가들, 즉 서양화, 사진, 미디어 아트 등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작가들 중에서 수묵의 기법이나 정신을 탐구하는 국내외 작가들을 조사(resarch) 및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국내작가 11명, 해외작가 11명 등 총 22명의 작가들이 선정되었다. 아직 공개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작가명이나 작품세계를 거론할 수는 없으나, 이들의 작품세계를 관류하는 공통점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서양과는 다른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을 가리켜 역사적으로 형성된 삶의 양식과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할 때, 근본적인 면에서 동양과 서양이 다른 것은 자명하다. 그 자명한 것에 고유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따라서 정당한 것인 바, 이는 다름을 통해 보편의 지평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객관적 표명인 것이다. 따라서 ‘Sumuk’이란 용어의 정립은 그런 이유에서 타당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름에 걸맞는 예술의 실천적 행위이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적 타당성이다. 인류의 대제전인 비엔날레는 해당 국가와 지역의 우수한 문화적 역량과 자산을 해외에 알리고 상호 교류함으로써, 세계 문화와 예술의 보편적 지평 형성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피력해 왔다. 그리고 이 점에서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도 다르지 않다. 지금 ‘코로나19(Covid19)’를 계기로 영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구 제국주의시대의 부산물인 컬럼버스의 동상을 파괴하는 등 역사를 반성하려는 자발적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차제에 ‘수묵정신’이 이같은 세계사적 차원의 문명의 대 균열을 그동안 내가 누누이 강조해 온 문화의 평탄작업으로 이끄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서울문화투데이 20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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