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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행위를 통한 일상적 행위 뒤집기 보기

윤진섭

원초적 행위를 통한 일상적 행위 뒤집기 보기

                                                  윤 진 섭(미술평론가)
                                       
 
 세이빈(Seivin)은 미술을 전공한 작가가 아니다. 그는 치과의사다. 한국 이름이 장성민인 세이빈은 유년시절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모국어인 한국어를 한국인과 똑같이 구사한다. 대화를 나누어보면 구분이 안 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의 의식 속에 한국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좌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의 작품에는 한국인들끼리 통할 수 있는 정서가 흐르고 있다. 그가 회화를 중심으로 설치, 오브제, 퍼포먼스까지 구사하는 실험적인 의식을 지닌 작가지만, 그의 작품에는 기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스며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건축 공사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림막과 건축 자재들은 그의 작품과 퍼포먼스를 위한 중요한 소재이자 모티브이다.
 2019년에 세이빈은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십 여 차례의 퍼포먼스를 발표했다. 그의 퍼포먼스는 단순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그의 퍼포먼스의 특징이다. 세이빈은 혼자 노는 아이처럼 테이프를 가지고 공사현장에서 놀듯이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가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노는 것 같다. 공사장 주변에 널린 각목이나 쇠파이프, 판재에 즉석에서 테이프를 붙이는 등 자유분방한 행위를 한다. 놀이에는 어떤 목적도 없는 것이 특징인데, 세이빈의 퍼포먼스야 말로 목적이 없는 무목적적인 행위이다. 만일 세이빈이 미술을 전공한 작가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의 서두에서 그의 직업을 밝힌 이유이다. 세이빈은 그만큼 자유분방한 의식의 소유자이며, 상상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어떤 상황도 작품화할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이다. 
 세이빈의 퍼포먼스를 뭉뚱그려 설명하자면 혼자 하는 모노(Mono) 퍼포먼스이며, 현장적 성격이 짙고(site-specific), 즉흥성이 강하며, 구성이나 전개가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뭔가 있으려니 하고 잔뜩 기대를 한 관객들을 실망시키기 일쑤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세이빈 퍼포먼스의 장점이다. 그는 계단에 테이프를 이리저리 둘러서 추락 사고를 방지하는 일상적인 테이프 감기 행위를 천연덕스럽게 예술의 문맥 속으로 끌어들인다. 건축 중인 건물에 높게 설치된 비계에 올라가 사각형의 아시바 틀에 색색의 비닐 테이프를 감는 세이빈의 설치작업은 퍼포먼스의 연장이며 그 결과물이다. 
 2019년 12월 19일, 세이빈은 삼청동 대로변에 있는 4층짜리 건물에서 설치 겸 퍼포먼스 작품을 발표했다. 그 건물은 건축 중이었는데, 세이빈이 그 앞을 지나가다 보고 현장 책임자에게 허락을 얻어 딱 하루 동안만 전시를 하게 되었다. 세이빈은 비계에 올라가 빨강, 파랑, 노랑, 녹색, 핑크 등 다섯 가지 색깔의 비닐 테이프로 건물의 파사드 전체를 둘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칫 삭막해질 수 있는 건물의 모습을 아름다운 광경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세이빈의 작업은 그것이 설치가 됐든, 오브제가 됐든, 아니면 회화나 퍼포먼스가 됐든 큰 범주에서 보면 ‘일상’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업 행위를 미술사적 맥락에서 찾아보면 20세기 초엽에 다다(Dada)의 예술가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아파트에서 설치작업을 한 쿠르트 쉬비터스(Kurt Schwitters)나 일상 속에서 예술을 통해 유머를 즐겼던 플럭서스(Fluxus) 멤버들의 활동에 비견될 수 있다. 이들의 특징은 예술을 그다지 심각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데 있다. 그들의 행위를 보면 예술은 그냥 밥 먹는 동작과 별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의 행위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내가 보기에 그들의 행위는 선사시대의 동굴 속 거주자들의 행위를 닮았다. 우선 먹고, 자고, 사는 문제의 원초성에 주목했다. 즉, 군더더기를 빼고 본질에 육박해 들어간 것이다. 현대인의 삶이나 문제도 이것저것 군더더기를 제거하면 결국 먹고 사는 본질적인 문제에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쿠르트 쉬비터스 등의 다다이스트나 60년대의 플럭서스 멤버들이 자신의 예술행위를 통해 풍자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문제와 동열에 선다.  
 세이빈의 예술행위는 인간 삶의 이 원초성, 그 중에서도 특히 주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가 건물의 공사 현장에서 설치작업을 겸한 퍼포먼스를 벌인 일이라든지, 심지어는 갤러리 공간에 제시된 작품일지라도 모티프 면에서는 이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삶의 이 원초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회화의 경우, 세이빈의 근작들은 ‘그린다’는 의미의 행위의 원초성을 통해 “회화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묻고 있다. 그의 그림들은 점, 선, 면 등 회화의 기본요소를 통한 ‘그리기’의 문제를 드로잉으로 풀어가는 과정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물감을 손에 묻혀 원형으로 반복해 문지르는 행위와 약간 되게 갠 물감을 캔버스에 얹고 납작한 주걱으로 죽죽 민 그림 등, 원초적 행위성이 강조된 작품들이다. 
 또한 세이빈의 근작들 중에는 나무판자의 끝 부분을 약간 남겨두고 물감을 로울러로 칠한 작품들도 있는데, 이것들도 마찬가지로 건축 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들이다. 즉, 세이빈은 건축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유리창에 부딪히지 않도록 손으로 거칠고 둥글게 페인트로 칠한 표시물, 쇠주걱으로 거칠게 죽죽 밀어 칠한 퍼티의 흔적, 그리고 각이 져서 로울러의 끝이 닿지 않는 방의 모서리 부분 등등 미세한 부분에 주목, 특유의 표현 기법을 얻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천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구멍을 반쯤 뚫은 뒤 선풍기를 틀어 천이 휘날리게 하는 설치작업도 있는데, 이는  공사현장의 가림막 천에 뚫어놓은 둥근 구멍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처럼 세이빈은 건축 현장 혹은 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국면들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가 작업을 하는 유형을 살펴보면, 물감을 칠하고 긁기, 판재를 비롯하여 천, 캔버스, 종이 박스 등에 구멍 뚫기, 테이프 붙이기, 로프나 끈으로 사물을 묶거나 반복해서 감기, 쇠파이프 속에 물감을 넣고 흘리기 등등 다양하다. 그리고 이 행위들의 공통점은 행위의 반복이다. 같은 유형의 행위들이 반복하는 데서 오는 이 행위의 원초성이야 말로 세이빈 작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이빈이 자신의 예술을 통해 보여주는 이 행위의 반복성은 삶과 직결된 인간 고유의 원초성과 관련돼 있다. 그러고 보면 먹고, 자고, 배설하고, 일하는 인간 행위의 반복성은 해가 뜨고 지며, 사계가 순환하는 자연의 주기적이며 일정한 반복성을 닮았다. 그 질서의 믿음 속에서 인간은 내일을 설계하고 희망을 갖는다. 그런데 작금 전 지구촌이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이 ‘팬데믹(pandemic)’한 상황은 뭔가 자연의 질서에 금이 가 고장이 났음을 암시한다. 
 세이빈이 주목하는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바로 이처럼, 어찌보면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인간의 원초적 행위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몸을 쉬게 하고 먹고 자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주거지에 관한 문제를 미술의 언어를 통해 발언하고자 한다. 비단 회화 뿐만 아니라 입체, 설치, 퍼포먼스 등 전방위적으로 벌이는 세이빈의 예술활동은 거침없는 상상력을 통해 나날이 그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처럼 보인다. 그의 의식은 거꾸로 생각하면 덫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전공이란 울타리에 갇혀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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