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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림 / 과잉된 질료의 연출

박영택

 드로잉, 회화, 사진 작업이 경계없이 섞여있다. 아니 그것들은 다만 매체를 달리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등장한다. 사진 속에 그림이 들어가고 그림은 사진을 반사한다. 사진 위로 회화가, 회화 안으로 사진이 미끄러지면서 마구 혼재하는 느낌이다. 이 혼돈의 느낌은 질료의 과잉과 피부의 녹아내림, 과도한 중력(힘)의 개입 등으로 부추켜진다. 이림의 사진이나 회화는 모종의 힘에 의해 녹아내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번에 선을 보인 추상표현주의풍의 그림 역시 그 에너지, 바람, 열기, 힘의 극대화에 관여한다. 그 힘은 가시적 대상, 세계의 윤곽을 녹이고 특정 형태의 고착성을 부단히 밀어내는 힘이자 모든 완강한 존재의 구분과 차이를 훼손한다. 이 미끌미끌하고 온통 끈적거리며 물컹거리는 액체성은 다분히 페미니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액체성은 모든 견고하고 딱딱하고 선명한 존재를 용해하고 지운다. 그래서 이림의 작업은 한결같이 녹아내리는 케이크나 초콜릿, 기름 혹은 끈적거리는 액체성이 회화, 사진의 표면을 뒤덮고 있다. 이 과잉된 질료성은 물질의 마티에르(물성)와 관련되기 보다는 다분히 여성적인 김수성이나 이림 개인의 감각에 견인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실제 모델의 피부에 질료를 바르거나(마치 주술적인 차원에서처럼) 바디페인팅처럼 분장을 하거나 온통 흐느적거리며 흘러내리는 회화의 표면을 제시하거나 질료들이 쓸고 스치고 지나간 자취를 안긴다. 그것은 본래의 피부위에 또 다른 피부의 성형과도 관계되고 은폐나 억압 혹은 촉각적인 질료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반영한다. 나는 그녀의 작업이 마지막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회화에서 질료의 강조란 그려진 이미지보다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에 대한 주목이자 회화자체의 조건(평면성)과 그림을 그리는 주체의 감각을 우선시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어쨌든 그림이란 단순한 재현의 체계가 아니라 세계에 반응하는 작가의 신체, 감각과 그것을 매개하는 질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질료(물감)는 작가 존재의 또 다른 분신이고 감각의 결정이자 화면에 사건을 발생시키는 결정적 요인일 것이다. 이림은 의도적으로 과잉된 질료, 그 촉각적이라 더듬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애무하고 싶은, 끈적거리고 흘러내리는 질료를 젊은 여자의 몸에 바르거나(화장이나 바디페인팅, 퍼포먼스)모델들이 서로의 육체를 관능적으로 애무하듯이 칠하는가 하면(다분히 동성애적인 분위기의 고양) 그 질료를 대신해 털로 이루어진 부엉이의 탈이란 오브제가 등장해 미끈한 피부와 대조적으로 충돌하거나 혹은 온통 흘러 내릴 듯 칠해진 페인팅 그리고 그 질료들이 더욱 빠르고 날카로운 속도와 힘으로 캔버스 표면을 질주하고 부분적으로 씻겨져 내린다.(추상현주의풍의 회화) 두 명이 여자모델이 등장하는 사진 작업은 다분히 페미니즘이나 애브젝트적인 분위기, 혹은 매튜 바니적인 분장과 연출 등을 연상시키는 편이었다면 그래서 그 익숙한 기시감이나 공식화된 개념 같은 것이 따라 붙는다는 느낌이었다면 근작에서 처음 선보인 추상표현주의는 이전과는 다른 온 몸으로 그려나가는 상황성이 엿보였다. 모델의 피부에 묻히거나 분장하는 차원 혹은 정교한 구상화, 극시실적인 뼈대위에 가설한 용암과도 같은 질료의 과잉된 연출을 지나 근작은 커다란 화면위에 직접 자기 몸을 질료화 하고 있다. 나로서는 그 지점이 흥미로운 편인데 왜냐하면 개념 짙은 이전 작업들에서 자기 몸의 순수한 반응, 날선 감각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조짐이 읽히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예기하고자 하는 회화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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