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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이대로는 안된다 – ⓵ 법명의 문제

김영호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이대로는 안된다 – ⓵ 법명의 문제   

김영호 (중앙대교수, 한국박물관학회 회장)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박물관'이란 문화ㆍ예술ㆍ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역사ㆍ고고(考古)ㆍ인류ㆍ민속ㆍ예술ㆍ동물ㆍ식물ㆍ광물ㆍ과학ㆍ기술ㆍ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관리ㆍ보존ㆍ조사ㆍ연구ㆍ전시ㆍ교육하는 시설을 말한다.
2. '미술관'이란 문화ㆍ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ㆍ조각ㆍ공예ㆍ건축ㆍ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관리ㆍ보존ㆍ조사ㆍ연구ㆍ전시ㆍ교육하는 시설을 말한다.



“2018년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기반시설총람‘에 따르면 한국의 박물관 수는 873개소로 거의 900개에 가깝다. (...) 우리나라 시·군·구 262개당 3.3개의 박물관이 있다는 말이 된다.”(전상민 칼럼 2019.02.01.)

위의 글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있는 어느 칼럼니스트가 쓴 것이다. 인터넷신문에 올린 이 글에서 그는 우리나라 박물관 수를 873개로 표기하고 있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2조(정의) 1항과 2항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따로 나누어 각각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발간되는 박물관 관련 대부분의 논문이나 보고서는 2018년 우리나라 박물관 수를 1124개소로 명기하고 있다. 이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2조(정의) 2항에서 미술관은 박물관에 속한 용어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박물관법은 문학 작품처럼 해석의 다의성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해석의 다의성을 지니고 있어 혼란을 야기하는 법이다. 법해석의 혼란은 분쟁을 야기하므로 질서의 유지라는 법취지에도 어긋나는 법이다. 질문을 해 보자. 박물관(Museum)과 미술관(Art Museum)은 이질적인 시설인가? 1909년 제실박물관에서 시작된 한국박물관사 100년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도 박물관과 미술관은 동일한 시설임을 밝히고 있다. 이 법 제2조(정의)에 표기된 박물관과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보면 동일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미술관 자료의 종류도 따지고 보면 박물관이 다루는 자료와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국립중앙박물관은 서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에 관한 자료를 다루며 ’미술부‘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법명과 정의에서 이 두 개의 기관을 구분함으로써 박물관과 미술관을 이질적인 기관으로 혼돈시키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칼럼이나 논문 그리고 보고서의 내용을 혼란시킬 뿐만 아니라 정부의 박물관 정책과 박물관 및 박물관학계의 활동을 교란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구분의 관행에 따른 폐해의 예는 헤아릴 수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다루는 미술품은 조선 후기까지 선을 긋게 하고 20세기 이후의 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 사업으로 선을 긋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왔다. 우리의 미술사학회는 근대미술사학회 현대미술사학회 등으로 갈라져 왔으며, 각각은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며 단절의 역사를 고착하고 전시와 교육에 이르는 활동에 담을 쌓게 해 온 것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모더니즘의 분화와 절대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반성으로 융합과 통섭에 기반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지식사회에 심화되던 1990년대에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야기하는 혼란이 정부조직과 박물관계의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무엇인가. 우선 박물관 관련 정부조직의 이원화를 들 수 있다. 이 법이 제정될 당시 우리나라의 박물관 관련 정부조직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따로 관리하는 이원적 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박물관 업무는 ’생활문화국 박물관과‘가, 미술관 업무는 ’예술진흥국 예술1과‘가 각각 담당하고 있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이러한 정부 조직의 이원화가 만들어낸 행정 관료주의적 작품이라 비판이 나온다. 박광무 박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박물관 행정과 미술관 행정이 정책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 결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현재는 ’문화예술정책실 문화기반과‘로 박물관과 미술관 정책업무가 통합되어 있다. 늦었지만 이제 ’조직‘에 우선하는 ’법제‘로서 법용어의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관련법의 혼란이 파생하는 둘째 문제는 박물관계의 분열과 대립이다. 우리나라처럼 박물관과 미술관 관련 단체가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1124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책임지고 있는 관장과 구성원들은 이중 삼중으로 협회에 가입해 회비와 회의 등 불필요한 경제적 부담과 시간과 노동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한국박물관협회에서 한국미술관협회가 분리되더니 다시 사립박물관협회와 사립미술관협회가 갈라지고, 다시 전국의 지역마다 분할되어 동일한 인력들이 유사한 업무를 중복해 맡고 있다. 이들 각각 단체들이 분화를 시도해 온 목적은 오직 정부의 지원금을 타내는 것에 있는 것처럼 세간에 비추어지면서 문화인으로서 박물관인들의 존엄성을 해치고 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관할해 온 정부의 입장은 소극적이다. 법이 제정된 1991년 이래 30여 차례의 개정작업이 진행되었지만 근본이 달라진 것은 없다. 문화기반시설총람에서 언제나 박물관과 미술관을 포함한 용어 즉 ‘박물관·미술관’으로 명기하고 있다. 가령 ’한국의 박물관·미술관 수는 1124개소‘ 라는 식이다. 달리 해석하면 아직도 정부는 홍보매체를 통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동일한 기관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법명의 오류와 정부 정책의 혼선 그리고 박물관 현장의 분열을 타개할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폐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명칭과 정의로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지금이 적기이다. 21세기 새천년에 접어든지도 20여년이 지났고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박물관계 역시 판을 새로 짜는 일이 시급하다. 명칭와 용어 개념의 재설정을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박물관의 미래를 위해 방기할 수 없는 사안이다.   

새로운 법의 제정은 마땅히 전문집단의 제안과 관련 학계의 의견을 반영하며 진행할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법의 제정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1. 새로운 법명을 <박물관법>으로 정하고 박물관의 하위 개념인 ’미술관‘에 대한 정의 항목과 그 중복되는 내용을 삭제한 내용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다르지 않은 기관임을 천명하는 일이다. 2. ‘박물관’ 용어의 영문번역은 마땅히 뮤지엄(Museum)으로 하고 통계와 서술의 필요에 따라 박물관의 개념을 관례를 존중해 세분해야 할 경우 그것을 ‘일반박물관(General Museum)’과 ‘미술박물관(Art Museum)’으로 명명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박물관학계에서는 최근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포괄한 상위 개념으로 영문인 ‘뮤지엄’을 사용하고 있다. 이유는 뮤지엄이라는 용어를 미술관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의 박물관’으로 사용함으로써, 미술관을 포함하지 않은 ‘좁은 의미의 박물관’과 구분하기 위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박물관’이라는 용어의 영문 번역에서 문제가 생긴다. ‘뮤지엄’과 ‘박물관’ 모두가 Museum으로 쓰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에 언급한 좁은 의미의 박물관을 ‘General Museum’으로 명명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박물관(Museum) = 일반박물관(General Museum) + 미술박물관(미술관, Art Museum) 등식을 세우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 박물관 학계는 한자권에서 100년이 넘게 사용되어 오고 있는 ‘박물관’이라는 용어를 고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 발간된 문헌의 용어를 수정 해석해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한국박물관학회 홈페이지 칼럼, 20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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