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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뮤지엄

김영호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뮤지엄 

김영호(중앙대교수, 미술사가)


바야흐로 재앙의 시대다. 21세기에 들어와 계절을 불문하고 대륙에서 찾아오는 황사와 미세먼지는 삶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를 쓰고 일터로 향하는 모습은 도시와 농촌의 일상이 되었다. 연기론의 이치인가. 재앙의 시대는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있다. 산업과 공해의 차원을 넘어 생태와 질병의 문제로 재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라는 잡아함경의 말씀이 떠오른다. 

재앙의 시대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다. 언론계에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라는 이슈를 내놓았다. 그 내용을 보면 ‘원격의 시대’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특성을 원격 시스템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이러한 이슈는 결국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런 주장이 아니다. 과학계에서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내놓고 인공지능과 로보테크놀러지에 의해 다가올 종말의 위기를 예언하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인간의 문명사는 재앙을 먹고 성장해온 역사라 할 수 있다. 재앙의 위기를 극복해 온 역사가 문명사라는 말이다. 질병은 대표적인 예다. 성경에 등장하는 나병(문둥병)이 중세의 시작이다. 1300년대 중엽 당시 유럽 인구 3분의 1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흑사병)은 르네상스를 탄생시킨 원인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와 그 일행이 대륙을 넘어 퍼트린 매독은 계몽주의를 태동시키는 배경이 되었으며, 1918년 2천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한 스페인독감은 혁명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1981년 미국에서 발병되어 3천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에이즈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와 연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후 발병 주기가 짧아 지면서 21세기를 장식해 온 에볼라,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따위는 작금의 코로나-19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의 본격적인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전지구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재앙이 인류에게 안겨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관, 즉 세상을 바라보는 혁명적 관점이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스크나 소독제나 백신과 같은 방어적 기제가 아니다. 새로운 세계관은 자연과 생명과 생태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재앙의 원인과 이치를 아는 것이다. 그 공부의 시작점은 서구의 기계주의적 과학과 사상을 이끌었던 이성과 합리의 지배이념을 반성하고 상대성과 연기에 기반한 유기체적 자연관을 이해하는 것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뮤지엄은 어떤 과제를 갖고 있는 것일까? 변화하는 세계관에 대해 성찰하고 능동적으로 끌어안는 것이다. 미학자 이브 미쇼는 이미 오래전 뮤지엄을 ‘전통적 뮤지엄’과 ‘오늘의 뮤지엄’으로 구분했다. 전통적 뮤지엄은 축성의 공간이자 지식의 산실이며 나아가 지배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권력 기관으로 정리된다. 이러한 뮤지엄은 루브르나 테이트모던 그리고 구겐하임과 같은 주요 뮤지엄들을 포함하고 있다. 구미 국가의 뮤지엄 이론과 경영체계를 수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뮤지엄들도 이브 미쇼가 말하는 전통적 뮤지엄의 범주에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뮤지엄이 해야 할 일은 전통적 뮤지엄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1세기 지식사회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수용하는 것이다. 최근 지구촌의 지식사회를 견인하는 이슈의 하나가 양자물리학이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이론’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에 따르면 양자물리학의 이론은 동양사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 많다. 우주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으며 그 원자는 존재의 근간이고 그것의 본성은 텅 비어있다는 것이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이를 동양의 공사상이나 연기론 그리고 무위와 무아의 개념을 빌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요지는 자연과 우주는 관찰자에 따라 모습과 가치와 성질이 다르게 규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이며, 따라서 존재와 본질은 불확정적인 성질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양자물리학과 동양사상이 한데 어우러진 주장에서 뮤지엄의 미래를 견인할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한다. 관찰자인 관람객에 대한 연구에서, 학습자의 경험에 기반한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장르를 넘나드는 융합적 전시의 기법에 이르기까지, 이 새로운 세계관은 뮤지엄 사업을 이끌 하나의 지표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는 이 새로운 세계관이 우리들의 삶에서 야기되는 번뇌의 무게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한국박물관학회 홈페이지 칼럼, 20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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