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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영 / 모래 그림에 스민 유기적 자연관 - 신작 시리즈 'BALANCE'와 'UNION' 읽기

김영호



김창영 / 모래 그림에 스민 유기적 자연관
- 신작 시리즈 'BALANCE'와 'UNION' 읽기

김영호(미술평론가)


늦여름의 어느 날 오후, 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 나는 그때 수많은 입자들이 창조와 파괴의 율동적인 맥박을 되풀이하면서 외계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에너지의 폭포를 보았던 것이다. 나는 또한 원소들의 원자와 내 신체의 원자들이 에너지의 우주적 춤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머리말, 1975)   

김창영의 모래 그림을 보면 최근 학계에서 왕성하게 소개되고 있는 양자 물리학의 성취를 떠올리게 된다. 양자 물리학은 모래와 바위와 물과 공기 따위의 자연 일체가 진동하는 분자(分子)와 원자(原子)로 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창조와 파괴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계속하는 입자(粒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흥미로운 것은 양자 물리학에서 물질에 관한 지식은 더이상 직접적인 감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지각의 영역 밖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물질은 독립된 실체가 아닌 전체의 여러 부분들 사이의 복잡한 그물망 관계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언제나 관찰자와 대상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는다. 양자 물리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들은 동양의 선불교에 흐르는 신비주의 세계관과 매우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서양의 양자론(量子論)과 극동의 연기론(緣起論)이 만나는 접점에서 합의된 논점은 우주란 유기적(有機的) 실체라는 것이다. 


From where to where 1712-E, Oil on Sand on Canvas, 2017 

우리는 해변에 앉아서 바다를 오랫동안 주시하거나 나무가 우거진 숲을 묵묵히 바라보았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빛에 의해 반사되는 물결의 리듬이나, 나뭇잎의 미세한 떨림에 자연을 운용하는 광대한 우주의 에너지를 체감하며 전율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경험은 대자연과 그 일부로서 존재하는 나 자신이 유기적인 그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직관적 확신에서 온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계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관찰자인 나 자신과 관찰 되어지는 대상 사이에 맺어진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사라지면 우주가 사라지는 유아론적(唯我論的) 관점은 우리의 사고 체계가 언제나 인식의 주체인 관찰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연유된 것이다.        

김창영의 경우 모래 그림은 1978년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얻은 개인적 경험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 해변에 광대하게 펼쳐진 백사장과 그 표면에 남겨진 무수한 발자국들은 작가에게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의 차원을 넘어서 있었다. 작가는 해변에 남겨진 익명의 발자국을 해운대 뒷산의 묘지들과 연계시킴으로써 미지의 세계에서 왔다가 미지의 세계로 홀연히 사라지는 인생 노정의 이야기를 추론적(推論的)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그가 작품의 소재로서 채택한 백사장은 존재와 부재의 상황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해변의 모래 위에 남겨진 무수한 발자국들에 관찰자인 자신을 개입시키고, 나아가 모래를 바른 캔버스에 극사실적 이미지로 발자국을 그려냄으로서 실재와 허상이 상충하는 다면적인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1980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이후 40여년 동안 김창영의 모래 그림은 한국과 일본의 평론가들에 의해 글로 정리되어 왔다. 평론가 이일은 「허상과 실체의 반어적 회화」라는 제명의 서문을 통해 김창영의 회화는 모래라는 특수한 물질의 표면과 그 위에 그려진 허상 이미지 사이의 역설적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김창영의 모래 그림이 역설적인 이유는 모래라는 실체(화면) 위에 모래의 허상(이미지)을 표현해 냄으로써 보는이의 시각 체험을 혼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中原佑介) 역시 1990년 「허실의 구조」라는 제명의 개인전 서문에서 김창영의 작품이 실체와 일루전이 혼재하는 세계로 확장시키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김창영의 그림이 착시(트롱프뢰유)의 영역 속에 있지만 단순한 눈속임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고 역설한다. 실물 모래를 화면에 도입하고 거기에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모래의 일루전을 그려 넣음으로서 현실 인식의 실체에 대한 직접적 감지와 일루전의 복합적 체험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창영의 그림은 일루전 자체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는 하이퍼 리얼리즘과도 차이점을 보인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실과 일루전의 혼재라는 논평은 이후 평론가 지바 시게오(千葉成夫)를 비롯한 다수의 일본 평론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돌이켜 보면 화력 40여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공모전에서의 수상을 계기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요코하마에 정주한지도 38년째로 접어들었다. 최근 필자와의 대담을 통해 모래 그림을 40년 이상 그리고 있는 소회(所懷)를 묻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 ‘백사장 모래 위에 찍힌 익명의 발자국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준다. 시간과 함께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는 발자국들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나에게 있어 모래 그림은 언제나 새로운 시도이며 저마다 고유한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40여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나의 모래 그림의 형식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변화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작가의 말은 자신이 모래 그림에 천착해 온 이유가 단순히 기법이나 형식의 차원을 넘어 연기의 법칙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존재의 무상성(無常性)을 탐구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었음을 대변하고 있다.  

이번 2020년 제주도 김창열미술관이 기획한 개인전은 작가에게 큰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공기관에서 처음으로 갖는 개인전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세상에 남겨놓고 싶은 작품’이라 말하는 신작(新作)들을 모아놓은 전시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20대와 30대는 미술계에 데뷔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며, 40대와 50대는 화랑 개인전을 통해 생계유지에 급급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60세가 넘고 나서 정한 생각이 이른바 세상에 남겨놓고 싶은 작품을 제작하는 일인데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심의 첫 실현이라 생각하고 있다.’ 모래 그림 40여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 선상에 선 작가의 작품세계는 새로운 기운이 맴돌고 있다. 이전의 작품이 화면을 덮고 있는 실체로서 모래와 허상적 모래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분석적(이원적) 어법으로 추론해 내는데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제 실체와 허상에 대한 융합적(일원적) 연구를 통해 직관적(直觀的) 가치를 수용하고 연기론적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김창영은 두 개의 신작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하나는 돌의 형상을 그려낸 <BALACE> 시리즈이며, 다른 하나는 단일 화면을 넘어 다면의 캔버스를 조합한 형식의 그림인 <UNION> 시리즈이다. (물론 그가 지금까지 견지해 오고 있는 발자국 그림 <FROM WHERE TO WHERE>과 유희적 손짓을 담아낸 모래 작업 <SAND PLAY> 시리즈도 빠트리지 않고 이번 개인전에 포함시켰다.) 이들 모두는 최근 3년 동안 제작된 것으로 처음 발표되는 작품들이다. 두 개의 시리즈는 각각 다른 제명을 갖고 있지만 작가가 그동안 고집해 온 표상 방식과 미학 원리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극사실적 묘사를 통해 존재하는 것들이 지닌 이중적 구조와 속성, 즉 실체와 허상에 대한 탐구의 노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작 시리즈는 이전과 달리 세상을 바라보는 확장된 미학 원리들과 의미를 품고 있다. 나는 이러한 그의 실험 노정이 동시대 학계의 사상적 흐름의 하나인 양자론과 연기론에 기반을 둔 유기적 세계관에 상통하는 바 있다고 생각한다.   


Balance 17074, Oil on Sand on Canvas, 308x195cm, 2017

우선 김창영의 신작 시리즈 <BALANCE>는 모래의 물성과 존재의 양태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작업과 일관성을 보인다. 하지만 저간의 모래 그림에 익숙해 져 있는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파격으로 다가온다. 언뜻 보기에 그림의 이미지는 돌처럼 보이지만 돌이 아니다. 무중력의 공간에 떠있는 듯 그려져 있는 돌들은 합리적 추론의 가능성을 상실시키고 있다. (작가는 물 먹인 모래로 뭉치를 만들어 경사진 패널 위에 배치하고 사진을 촬영한 후 그것을 캔버스에 옮겨 그려내었다. 실재 패널 위에 얹혀진 모래 뭉치는 물기가 마르면 부서져 다시 모래가 되는 한정된 시간 속에 놓여 있다.) 모래≠발자국, 실체≠환영 이라는 이원적 구분과 그 사이의 시각적 혼돈에 주목했던 이전의 작업과는 달리 <BALANCE>는 모래=돌, 실체=환영 이라는 일원적 세계로 융합된 상황이 펼쳐져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신비적 직관론을 소환해 대비시킬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시리즈를 통해 작가가 시도하는 바는 진동하는 분자와 원자(모래알)로 구성된 존재의 본질이 곧 무상성(無相性)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생성하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대자연의 이치이자, 인연에 따라 나타났다가 홀연히 흩어지는 연기의 법칙을 보여주고 있다. 좀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자면 양자론과 연기법에 지배를 받아 시간 속에서 늘 바뀌는 무상의 실체인 공(空)의 철학이 거기에 숨 쉬고 있다. 김창영의 모래 돌 그림이 신비적 직관론의 속성을 보이는 것은 가변적 순간을 견고한 모양의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자, 이 두 개의 속성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의 관점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Union 1909, Oil on Sand on Canvas, 206x307cm, 2019


이러한 양자론과 연기법이 융합된 미학 원리는 김창영의 <UNION> 시리즈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BALANCE>가 미학 원리를 뜻하는 용어라면 <UNION>는 그것의 실천적 방법을 지시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UNION> 시리즈의 방식은 화면을 여러 개의 단위로 나누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화면에 그려진 하나의 이미지는 분절된 캔버스의 구조 안에서 허상과 실체의 융합적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사각이라는 기존의 캔버스 형태를 부정하고 분할된 단위로 구성된 캔버스는 그림의 구조에 대해 주목하게 만든다. 프랭크 스텔라에 의해 다양하게 실험된 이 방식이 김창영의 그림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손의 노동으로 표현된 일루전의 세계가 여전히 캔버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화면의 구조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허상과 실체의 역설적 구조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보다 다차원적인 세계로 보는이를 안내하고 있다. 더욱이 손의 유희에 의해 벗겨진 캔버스의 모래층 바닥에 드러나는 컬러의 다양성은 <UNION> 시리즈가 관찰자이자 인식의 주체인 화가가 주도하는 회화 세계의 범주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사건임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김창영은 자신의 작품에 스스로를 주저하지 않고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시비를 분별하지 않고 사물의 존재 양태와 그 인연의 상황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직관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동양의 신비주의 사상가들은 궁극적 실재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설파한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첫 구절인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는 실재(도)란 우리의 언어나 개념의 근원이 되는 감각이나 지성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 적절하게 기술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에 의해 출발한 현대 물리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예를 들어 빛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것들은 때때로 입자(광자)로, 때로는 파동(에너지)으로 나타난다. 김창영의 모래 그림에 대한 비평은 이미지를 언어적 체험으로 번역해 낸다는 한계 속에서도 언제나 열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번 김창렬미술관 초대전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최근 학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현대 물리학과 유기적 자연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며 향후 추이가 기대된다.
(출처: 김창렬미술관 개인전 도록 서문, 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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