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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하 / 한국문화유산의 꽃

김영호



이서하 12회 개인전에 부쳐 

제12회 이서하 개인전 한국문화유산의 꽃
2019-07-10 ~ 2019-07-23
갤러리밈


김영호(중앙대 교수)

무릇 화가에게 주어진 소명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나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위한 것이다. 전자가 화가 자신에 대한 성찰에 목표를 두고 있다면 후자는 특정 타인이나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다. 근대(modern) 사상에서 비롯된 이러한 구분은 비단 미술계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의 학문단위를 순수미술(회화, 조각 등)과 실용미술(공예, 디자인 등)로 나누는 배경이 되었다. 벌써 15여 년 전의 일이지만 이서하가 예술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교육단위는 순수미술을 지향하는 조형예술학과였고 그녀는 ‘한지공예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실용이 아닌 나를 위한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셈이니 이서하의 작업은 물때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열정적인 것이었다.  
      
2005년 첫 개인전에 즈음해 이서하는 그동안의 성취를 내놓았다. 한지의 담백한 물성과 본능적 격정의 서정이 한데 어우러진 것으로, 보라색 톤의 공간에 나부와 새의 이미지를 산발적으로 배치해 상징적 의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평론가 김종근은 <자유와 비상을 향한 그녀의 꿈>이라는 제명의 서문을 통해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호소력을 주는 부분은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는 열정과 진지한 자신의 자전적 표현이다.”라 적고 있다. 소설가이자 여고 동창생인 권지예도 축사를 통해 “그녀의 보라색 톤의 그림을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밝히고 그 이유를 “삶의 심연과 허무와 존재론적인 고통”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 논평하고 있다. 이러한 글들은 작가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욕망과 사회적 속박이 서로 상충하면서 생겨나는 정신적 갈등을 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있음에 방점을 둔 것이었다.
              
첫 개인전 이후 이서하의 행보는 변화를 보였다. 화면에 오브제를 도입하고 사진 매체에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2009년에는 인사동 근방에 작은 갤러리를 열었고 자신의 이름을 딴 한지그림 연구소도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가 빛바랜 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상식, 평범, 규칙, 반복’을 견디지 못하는 천성에 연유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통한지 연구와 책자 발간사업 그리고 한지공예 교육활동에 전념하는 이른바 ‘나라를 위한 일’에 몰입하는 삶을 살았다. <코리아 헤럴드> 등의 언론과 <대한민국 국회헌정기념관> 등의 관변 단체는 매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수한 표창으로 그의 열정과 노고에 화답했다. 이러한 현실은 작가에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에게 주어진 소명의 하나인 자기 탐구와 형식 실험에 소홀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서하는 인생의 간지 한 바퀴를 돌아 환갑에 접어들었다. 이는 스스로에게 화가의 소명을 묻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엄격한 가풍의 집안에서 태어나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뒤늦게 화가의 길을 선택한 이래, 갤러리 경영자로서 전통한지 연구자로서 삶을 살아왔다. 우리나라 문화예술 정책의 수준에 비추어 그간 그녀에게 안겨진 노고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를 위하는 일이 곧 타인과 집단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이고 순수미술과 실용미술의 특성을 융합한 예술적 실천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개인전이 화가로서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하는 스타트라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러한 소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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