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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지점에서 예술을 다시 생각하다: 2022 대구아트스퀘어 대구권미술대학연합전

고충환




2022 대구아트스퀘어 대구권미술대학연합전
영도지점에서 예술을 다시 생각하다 


고충환 | 미술평론가



지난 2015년 대구권미술대학연합전이 처음으로 창립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19로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가 홍역을 치른 지난 몇 년간을 제외하고는 매해 12월 한 차례씩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각 대학 위주로 열리던 졸업전시회와는 별도 전시로 열리는, 어쩌면 졸업전시회를 보완하고 보충하는 전시로 열리는 것인데,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라고 생각한다. 대구권 6개 대학이 돌아가면서 주관하는 전시로서, 올해 전시는 경북대학교가 주관사를 맞았다. 매해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전시가 열리는데,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이 주축이 된 전시란 점에서, 형식실험의 치열함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다 놓은 전시란 점에서 전시 성격과 장소가 서로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매해 주제를 설정하는데 전시의 특성상 예술의 특수성과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것과 같은 특정 주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예비 작가들을 격려하고 시작을 알리는 신고식의 성격이 강한 편이다. <젊음의 향연>이란 올해의 주제 역시 그렇다. 원래 향연은 플라톤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광장 그러므로 아고라와 함께 인문학의 태생적 배경이 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주제를 논하던 것에서 비롯했다. 그러므로 그 의미를 이번 전시에 적용해보면, 대략 형식실험을 논하는 장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여기서 장은 피에르 부르디외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예술과 관련한 논제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현장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젊음의 향연>이란 주제는 <대구권미술대학연합전>이 향후 이런 예술과 관련한 유의미한 장으로, 경쟁력 있는 장으로 성장하고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함축하고 있다. 

큰 주제가 그렇고, 작은 주제 그러므로 부제에 세목을 담았는데, 전시가 지향하는 의미며 실천 논리를 위한 항목으로 보면 되겠다. O.Z. Be Better가 그것으로, 특히 O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기서 O는 말할 것도 없이 시작점 그러므로 제로 베이스를 강조한다는 의미가 있고, 여기에 주최 측은 참여자가 O에서 시작해 시종 성과와 과정과 결과를 같이 하는 하버드 프로젝트에서 그 당위성을 끌어오고 있다. 

O는 지역적 특수성과도 관련되는데, <영과회>가 그렇다. <영과회>는 대구 경북 지역작가들이 주축이 된 지역 최초 예술단체로서 1927년 창립전을 열었다. 이듬해인 1928년 제2회 전시에는 이인성, 김용준, 이갑기, 서동진, 박명조, 배명학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영과회>는 <향토회>의 주축이 되는데, 주지하다시피 <향토회>에서 유래한 향토주의는 카프에 바탕을 둔 현실주의 미학과 함께 당시 한국 근대미술을 견인했던 두 축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O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는, 마음의 다짐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여기에 현상학적 에포케와 영도지점을 덧붙이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현상학적 에포케 그러므로 잠정적인 판단중지는 진정한 현상에 대한 의문에서 유래했다. 감각적 현실은 진정한 현상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개념화되었고, 주체는 철저하게 타자화되었다. 거칠게 말해 주체는 이미 철저하게 타자화돼 있어서 나는 언제나 타자의 눈을 통해 보고 타자의 귀를 통해 들을 뿐, 나에게 나를 위한 그리고 나의 인식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래서 에포케 곧 잠정적인 판단중지가 요청된다. 나를 의식의 백지상태로 내려놓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내려놓는 잠정적인 장소가 영도지점이며 그 의미가 O와도 통한다. 

나아가 여기에는 지금까지의 예술을 O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제안이 있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제시가 있어서 실천 논리의 측면에서도 주목해볼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예술이란 언제나 재현 불가능한(그러므로 아마도 반복 불가능한) 일회적 사건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런지(그리고 그랬는지) 물어오는 당찬 도발도 있다. 그리고 MZ 세대의 새로운 시대정신과 감수성이, Be Better로 나타난 격려가 그 도발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년 전에도 글을 매개로 전시에 참여한 적이 있지만, 전시의 수준이 볼 때마다 향상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공되지 않은 형식실험과 직접적인 이념의 제시가 때로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젊은 작업이 발산하는 에너지에 비해 보면 지엽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러 언젠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자기화를 통해 원작을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백인 백색을 떠올릴 만큼 경향도 주제도 형식마저도 다 달랐는데, 그저 선배 작가들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심지며 근성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느낌이고, 그 자체가 다원주의와 종 다양성으로 나타난 현대미술의 생리와 덕목에도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지금 바로 개인전이나 기획전을 열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문제작과 수작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침체를 염려했지만, 오히려 자기 내면에 응축하는, 그리고 주제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시스템이 일을 한다는 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지만, 훌륭한 콘텐츠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이다. 국내외적으로도 그 경우가 없는 것인 만큼, 여기에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인 만큼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시스템이 점차 꼴을 갖춰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중에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새로이 도입되고 실현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부분을 포함해 시스템 문제를 언급해 보자면 먼저 예술 감독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예술 감독이 이미 선임된 경우라고 한다면, 이해관계를 조율한다는 최소한의 전제하에 전권이 주어져야 한다. 최소한의 조율마저도 예술 감독 주도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해당사자 간 사전 정지작업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전시 특성상 본격적인 주제전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 특수성을 반영한 주제를 개발 궁리해야 되고, 특히 전시작가 선정과정에 예술 감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작품이 작가의 창작물이라면, 전시는 예술 감독의 창작물이다. 이처럼 자기 작품을 위해 처음부터 콘텐츠(그러므로 작가)를 선정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간여하는 것은 결정적인 일이다. 콘텐츠가 들쑥날쑥하면 전시도 그렇고, 콘텐츠가 일관되면 전시 또한 그렇다. 그런 연후에라야 비로소 전시도 살고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야 단순한 졸업 전시를 보완하고 보충하는 차원을 넘어 별도의 유의미한 기획전이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중장기적으로는 아예 졸업 전시에 연계된 형태가 아니라, 전혀 별개의 그 자체 독립적인 기획 전시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실제 전시에도 보면 예비 작가가 무색한 작가들이 많았고, 예비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 만드는 작품도 적지 않았다. 이런 문제작과 수작을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일에 주력해야 하고, 특히 그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시행과정에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때로 이 전시를 계기로 개인전이나 기획전에 초대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필요하다면 판을 키워야 하고, 홍보 체계를 전문화해야 하고(이를테면 영문 채널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특히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이를테면 아예 처음부터 메세나 협회와의 협업을 생각해볼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시스템 자체를 매번 전시를 위한 일회성이 아닌 상시 체제로 가동 운영해야 한다. 매번 눈에 띄게 진척되고 있어서 고무적인 일이지만, 때로 결단도 필요한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게 <대구권미술대학연합전>이 지역을 넘어 순항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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