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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리, 너에게 나의 의미를 보낸다

고충환




박두리, 너에게 나의 의미를 보낸다 




개구리알 같은. 손가락으로 밀어 감긴 눈을 홉 뜨는 것 같은, 혹은 렌즈를 갈아 끼우는 것 같은. 빛 혹은 불 혹은 태양을 마주한 달팽이 같은. 구름 같고 연기 같은. 우물 같은. 딱따구리 같은. 나뭇잎 같고 수초 같은. 손으로 쪽창을 여는 것 같은. 팔꿈치로 어깨를 툭 치는 것 같은. 입안에 잔뜩 바람을 넣어 볼 풍선을 만드는 것 같은. 엉금엉금 땅을 기는 것 같은. 맨발로 물웅덩이를 건너는 것 같은. 구석에 놓인 화분 혹은 잡동사니 혹은 구멍이 숭숭 뚫린 벽돌 같은. 뾰족한 끝에 링을 끼고 있는 원뿔 같은.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 같은. 

작가는 한때 대만 관두미술관 레지던시에 참가한 적이 있다. 말이 안 통했지만, 작가는 어차피 그림이 언어고 말이고 의미려니 했고, 그림을 매개로 소통을 하면 되지 싶었다. 그리고 인근 식당을 찾았다. 중국어 메뉴판을 이미지 번역을 하자 모바일 번역기에서 약한 우물을 폭파하다 라는 번역이 튀어나왔다. 약한 우물을 폭파하다? 다행히도 바디랭귀지가 있어서 식사를 하는데 문제는 없었을 것이지만, 이 웃픈 경험이 평소 작가가 생각하던 의미와 소통 문제와 맞물리면서 이 그림을 그리게 했다. 

대략 10호가 채 안 되는 50여 개의 소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이 그림들은 얼핏 상호 간 논리적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이 그림들이 한자리에 놓이게 된 근거가, 이유가 궁금하다. 의미란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다. 여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의미를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어쩌면 의미는 열려 있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닫힌 의미 그러므로 결정적인 의미로 전달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통감한다. 약한 우물을 폭파한다는(그 의미 자체도 오리무중인) 상황 논리로 누가 어떤 음식을 떠올릴 수가 있겠는가. 

바로 의미가 파열되는 지점, 의미가 파열음을 내는 지점에 열린 의미의 빈 공간을 채워줄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숨은 의미로 인해 비로소 채워진 의미, 온전한 의미, 결정적인 의미, 닫힌 의미를 매개로 그 결이 다른 논리적 개연성을 획득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작가는 목하 의미를 형식실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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