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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 존재의 원형을 찾아서

고충환



김혜련, 존재의 원형을 찾아서 




한국성, 한국적 이미지, 한국적 미의식의 원형은 무엇인가. 적어도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소재에서 찾아질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의식보다 깊은 무의식으로 잠자고 있는 잠재의식 그러므로 원형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칼 융은 이처럼 의식보다 깊은 층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집단무의식이라고 불렀고, 그러므로 꿈의 원료가 되고 신화의 재료가 되는 반복 상징을 원형이라고 했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꿈(상상력을 매개로 한 억압된 욕망의 우회적인 실현)과 신화(서사의 기술) 그리고 상징(해석)은 예술과 관련이 깊다. 그러므로 어쩌면 예술 곧 미의식의 원형은 동시에 어느 정도 존재의 원형이기도 할 것이다. 


김혜련은 그렇게 어쩌면 잃어버린 상징을 소환하고, 잊힌 원형을 호출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고, 아마도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일이고, 그러므로 어쩌면 작가의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바꿔 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대략을 보면 <예술과 암호_빗살무늬>(2018), <예술과 암호_황남대총>(2018), <예술과 암호_고구려의 기와 문양>(2019), <예술과 암호_고조선>(2020), 그리고 근작에서의 <예술과 암호_고인돌의 그림들>(2021)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한국의 고대 유물을, 선사시대와 고대 역사를 두루 섭렵하고 아우른다. 


작가에 의하면, 한반도에는 무려 30,000여 기나 되는, 아마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고인돌 유적이 전해진다고 한다. 가히 거석문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전국에 흩어져 있거나 숨어 있는 상징(작가의 용어로는 암호)을 찾아서 방방곡곡을 헤맨다. 남원 대곡리 암각화, 고령 장기리 암각화, 영천 보성리 고인돌 암각화, 그리고 영일 칠포리 암각화와 같은. 여기서 고인돌은 말할 것도 없이 고대 무덤이고, 암각화 역시 꼭 죽음이 아니라 해도 죽음(주검)을 기념하는 것과 같은 제의와 관련이 깊다. 단순한 미의식만으로 새겨진 그림이 아니라는 말이다. 언어의, 상징의, 암호의 한 형식이다. 작가는 그렇게 암호를 매만지면서, 해석하고 각색하면서 고대인과 만나는 것이며, 그러므로 어쩌면 자신이 유래한 존재의 원형 혹은 원형적 존재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처럼 고대인이 발신해온 암호를 어떻게 해석하고 각색하는가. 고인돌도 그렇거니와 암각화에서 암호는 돌 위에 아로새겨져 있다. 무채색이다. 그래서 작가는 골판지에 먹으로 그렸다. 그렇다면 돌의 질감이며 아로새겨진 새김질은 또한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그래서 골판지에 칼로 긋고, 부분적으로 종이를 뜯어내고, 마치 칼질을 하듯 붓질로 새김질을 대신했다. 그렇게 화면은 암각화의 최소한의 원형을 유지한 채, 내지르는 붓질과 튀기거나 마구 흘러내리면서 맺힌 먹물 자국으로 낭자한 것이 흡사 기운생동의 육화된 형식을 보는 것 같다. 작가는 고고학자가 아니므로 돌에 새겨진 암호를 의미보다는 감각으로 해독하는 것이다. 육화된 형식 그러므로 몸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문제는 고대인이 전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그 메시지에 실려 온 고대인의 혼이다. 암각화에는 의미보다 먼저 고대인의 혼이, 흔적이, 번민이, 숭고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바로 그렇게 의미보다 먼저 아로새겨진, 그러므로 의미 이전부터 있었던, 한갓 의미로 환원되지는 않는, 다시, 그러므로 어쩌면 의미를 표면으로 밀어 올렸을 혼을 무슨 귀신이라도 부르듯(그러므로 초혼) 되불러오는 것이다. 


보통 상징과 암호를 취할 때는 자칫 기호와 패턴으로 빠지거나 도상학적으로 흐르기 쉬운데, 작가는 그 염려를 뒤로한 채 암각화에 암호로 아로새겨진 고대인의 혼을 되불러오는 일에 성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자기가 유래했을 원형적 인간, 까마득하게 잊힌 자신과 대면하는 일에 성공하고 있다. 그림을 매개로 잠재적인 자기를 불러내는 일에, 자신의 육화된 분신과 대면하는 일에 성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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