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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 타자를 통해서 자기를 보다

고충환


정보경, 타자를 통해서 자기를 보다 



정보경은 주변인을 그린다. 지인과 일가를 그리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자신과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사람들을 그린다. 이처럼 주변인은 실제로 주변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일종의 주변인 의식 혹은 변방인 의식을 내재화한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타의에 의해서 주변으로 추방된 사람들이고, 자발적으로 변방에 머물기로 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타의에 의한 주변인 의식이 사회학적 의미를 얻고, 자발적인 변방인 의식은 삶에 대한 태도와 입장의 표명이 된다. 

그 사이로 심리학적 의미가 끼어든다. 시선과 응시의 치열한 투쟁이 매개된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읽는 자와 읽히는 자 간 서로 주체가 되려는 투쟁이 전개된다. 주체가 되려는 투쟁? 그러므로 어쩌면 욕망? 그러나 그 투쟁은 진즉에 실패가 예견된 투쟁이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욕망이다. 주체로서의 나는 동시에 잠재적인 객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와 모델의 관계는 안정적이기보다는 불안정하고, 항구적이기보다는 잠정적이다. 이 불안정하고 잠정적인 관계로부터 불안이 파생된다. 

그렇게 작가가 그린 그림 속 모델들은 불안정해 보이고 불편해 보인다. 공격적으로 보이고 도발적으로 보인다. 냉소적으로 보이고 불안해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렇다면 모델에 속한 것인가. 모델에게서 작가가 끄집어낸 것인가. 때론 모델 자신에게조차 낯선 자기_타자를 작가가 불러낸 것인가. 전통적으로 사람을 대상화한 그림이 초상화다. 초상화에는 그의 감각적 닮은꼴 그대로를 옮겨 그리는 재현적인 방법이 있고, 그의 내면을 불러내 그리는 표현적인 방법이 있다. 각 자연주의와 표현주의가 비교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작가는 표현(주의)적인 방법으로 모델의 내면을, 인격을, 자기_타자를 소환한 것인가. 

여기서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자. 예술은 자의식의 소산이다. 자의식이 예술을 만든다. 작가는 유독 자의식이 강한 편이고, 작가에게 자의식은 예술을 추진하는 동력이다. 여기서 자의식은 동시에 일정 정도 자기중심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보고, 사물 대상을 보고, 모델을 본다. 자기중심적인? 모델을 보고 모델을 그리는 대신, 모델에 투사된 자기를 그리는 것이다. 그렇게 불안정하고 불편하고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냉소적이고 불안해 보이는 시선은 정작 모델보다는 사실은 작가 자신의 시선이다. 때론 모델보다는 정작 작가 자신에게조차 낯선 자기_타자를, 무의식을, 잠재의식을, 그러므로 어쩌면 억압된 욕망을 불러낸 것이다. 그렇게 모델을 대상화해 그린 초상화는 작가의 그림에서 일종의 자화상이 된다. 

보통 모델을 대상화해 그린 인물화의 경우, 그만의 개성을 끄집어내려는, 그다운 인격을 불러내려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 경우를 우려하고 배제한다. 타자를 통해서 타자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투사된 자기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타자를 대상화한 모든 그림이 결국 자기를 그린, 자화상을 그린 그림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초상화로 하여금 자화상이 되게 하는 것, 그 자체는 초상화의 또 다른 용도와 차원을 열어 놓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앞서 작가는 자의식이 강하다고 했고, 자의식이 예술의 동력이라고도 했다. 여기에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그림이 있다. 한 손에 탯줄에 매달린 아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다른 한 손에 붓을 쥐고 있는 발가벗은 자기를 그린 그림이다. 그 제목이 <전사>다. 삶이냐 예술이냐, 그것이 문제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절체절명의 상황 논리에 대한 결의를 보는 것도 같다. 삶이 곧 예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예술지상주의와 예술에 대한 오마주의, 어쩌면 까마득하게 잊힌 선언과 재회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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