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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새로이 일주하다 전 / 회귀하는 타자들과 예술

이선영

회귀하는 타자들과 예술

상어, 새로이 일주하다 전 (2021.10.19~ 2022.02.27, 세화미술관)

  

이선영(미술평론가)


[상어, 새로이 일주하다 Shark, Bite the New World]는 전시부제에서 ‘왜 상어지?’라고 묻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과 떡볶이 가게 이름이기도 하고 중독성 높은 아기상어 노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상어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다. 중학교 때 처음 단체 관람한 영화가  [죠스](1975, 스티븐 스필버그)였는데, 70년대 말의 한국은 대부분 작고 흐릿한 흑백 텔레비전으로 세상을 봤을 때여서 시각적 충격은 컸다. 엄격하고 근엄하기만 했던 학교는 새하얀 카라에 검정 교복을 입은 수백명의 여학생들에게 피바다 영화를 무슨 생각으로 보여준 것일까. 그 시대는 지금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이 많았다. 이후 고추장만 봐도 소름끼칠 정도였지만, 당시에도 상어 영역에 인간이 침입해서 생긴 비극이라고 봤다. 인간보다는 자연 편이었던 나는 드디어 상어를 문명에 길들여 지지 않는 야생으로서의 예술과 비유된 전시를 보게 된다. 이번 전시는 2001년에 있었던 전시 부제를 반향한다. 그 당시 관람자였던 나는 상어라는 상징에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 새삼 상어라는 존재가 다가온 것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잊혀진 자연의 힘이 무의식으로부터 솟아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자연에서 기원한 인간은 짐짓 자신의 자율성과 우월성을 자신하지만, 일방적으로 이용당하고 착취되는 타자인 자연은 묵묵히 실재하면서 인간과 상호작용한다. 상어는 지금 여기와는 다른 곳에서 온 타자에 대한 은유다. 자연은 예술처럼 선도 악도 아니다. 오늘날 예술과 자연은 타자라는 공통분모로 엮여있다. 




강애란 전시전경(이하 모든 사진자료 출전은 세화미술관에 있음)



김해민 전시전경



서점이나 도서관처럼 연출한 강애란의 작품은 페미니즘 관련 서적 이미지들을 전면에 배치한다. 책은 소재주의를 넘어서 작가의 주장을 싣는다. 하지만 하굣길 설렘을 안겨 주던 학교 앞 그 수많은 책방은 다 어디로 갔는가. 도서관도 다른 ‘핫 플레이스’에 밀려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더디기만한 현실적 변화를 대신하는 페미니즘 담론의 무성함은 역설적이다. 작가는 이렇게 타자화된 소재나 주제를 전시라는 행위를 통해서 묶어낸다. 이해민은 비디오가 첨단 매체였던 시절부터 미디어아트를 했다. 24시간 접속이라는, 미디어가 편재하는 요즘 세상에서 그의 작품은 미디어의 물질적 차원을 돋보이게 한다. 미디어 자체가 기계라는 물질 덩어리이자 상품이고, 내용 또한 현실을 반영한다. 가령 영상이 투사되는 칵테일 잔은 물을 담는 그릇의 위상을 표현하며, 화면 안의 인물에 그림자를 만들어준 방은 허상이 허상을 낳는 시뮬라크르 문화의 현실적 좌표를 나타낸다. 일찍이 사진의 힘을 깨달은 강홍구의 경우, 작품 사진이 동시에 기록 사진이기도 하다. 그림처럼 크게 출력된 사진에 첨가된 물감의 흔적, 그리고 작품 앞에 적어놓은 풍경에 대한 계보학적 정보는 한국 사회에 대한 문화 비평적 맥락에 놓인다. 그의 작품에는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보다는 폭력적인 단층이 드러난다. 사진에 가필한 붓질은 상처처럼 벌어진 간극을 감출 수 없다. 풍경은 인덱스에 충실한 사진 매체의 힘을 빌려서 이제는 사라진 무명의 영토들을 되새긴다. 




강홍구 전시전경



양아치 전시전경



리덕수 전시전경



예술가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국외자의 입장으로 누군가 의식적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을 행하는 것이다. 양아치의 작품 [이더리움 신체는 노동하지 않는데, 56.5%가 올랐습니다]는 가상세계에서 금을 채굴하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작은 스크린에 계속 업데이트 되는 정보들은 컴퓨터라는 기계가 인간 대신에 자동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현대사회는 지시대상으로부터 자율화된 기호가 의미(이익)를 낳는 자기지시적 속성을 가지며, 이는 카지노 자본주의로 풍자된 현실을 낳는다. 옆에 놓인 무속적 기구들은 가상적 금캐기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물신숭배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암시한다. 원시적이든 현대적이든 물신숭배는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제도와 기구가 체계화된 현대에 진가를 발휘한다. 리덕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포스터 형식이라서 그런지 밝고 계몽적이다.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요즘의 시점에서 괴리감이 있다. 북한 포스터같은 형식이라서 더욱 그런데, 곰곰이 보면 남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판의 정치인들과 죽을 맞추는 철밥통들도 각종 주장과 정책을 뱉아내지만, 진정 공공적이거나 사회적인 실효성을 가지기보다는 자기지시적일 뿐이다. 이러한 큰 목소리는 위기의 시대에 더욱 공허하고 사악하게 울려 퍼진다. 당대의 지식이 총망라되는 백과사전들이 빼곡한 서가 한켠에서 들려오는 남/북한의 지식인으로 가정된 인물의 대화는 지배적 질서가 공인한 미심쩍은 지식들을 재현한다. 또는 풍자한다.


출전; 아트인컬처 202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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